[폴리뉴스=윤청신 기자]

가수 이미자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며 12월 28일 저녁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다.

1941년생으로 올해 나이 일흔 아홉살인 이미자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서 아버지 이점성과 어머니 유상례 사이에서 2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미자가 2살이 되던 1943년에 아버지가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1945년에는 힘든 생활고 때문에 어머니 유상례에 의해 외할머니 댁에서 형제들과 떨어져 외롭게 자랐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지던 이미자는 1957년에 방송하던 노래자랑 프로그램 KBS의 《노래의 꽃다발》에 출연해 1위를 하였으며 1958년 이미자는 HLKZ TV 방송이 개최한 아마추어 노래 콩쿨인 예능 로타리에 출전해 1등으로 입상하였고 당시 유명한 작곡가 나화랑(본명: 조광환, 1983년 작고)에게 스카우트되어 《열아홉 순정》(반야월/나화랑)으로 가수로 공식 데뷔했다.


1960년 어려운 시절에 함께 알고 지내던 연주자 정진흡과 첫 번째 결혼을 했으며 데뷔 전부터 애절하고 구성진 목소리로 주목받은 이미자는 1964년에는 영화 주제가 《동백아가씨》(한산도/백영호)를 스카라 극장 근처 목욕탕 건물 2층에서 방음 장치 다해놓고 얼음물에 발을 담가가며 임신 9개월인 상태에서 불러 국내가요사상 최초로 가요프로그램에서 35주 동안 1위를 기록, 25만 장이란 엄청난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집과 전화 그리고 자동차를 장만할만큼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당시 대한민국 음반업계가 불황을 겪던 그 해, 《동백 아가씨》 는 말 그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왜색조라는 이유로 방송금지령을 선고받았고 설상가상으로 남편 정씨와 이혼하게 되었다. 이미자는 1965년에 평생의 콤비가 되는 작곡가 박춘석과 만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동백 아가씨〉 를 비롯해 이미자의 히트곡 대부분은 발표된지 몇 년만에 왜색이나 경제발전에 저해되는 비탄조의 노래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곡으로 판정되어버렸다.

히트할 때마다 줄줄이 금지곡 낙인을 받자 그녀는 노래를 그만두려고 했을만큼 충격을 받았다. 기회있을 때마다 해금을 요청했고 결국 1987년에서야 금지곡 족쇄에서 풀려났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던 이미자는 1967년부터 영화 주제가로 발표된 《그리움은 가슴마다》(정두수/박춘석), 《아네모네》(영화 《아네모네 사랑》 주제가)("/") 《여자의 일생》(한산도/백영호) 등 서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며 대한민국의 대표가수의 맥을 이어가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이미자와 함께 대한민국 가요계를 평정하던 패티 김과 함께 196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이미자를 따라다니는 애칭 (엘레지(悲歌)의 여왕)은 1967년에 박춘석이 작곡한 이미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 주제가〈엘레지의 여왕〉(이운석/박춘석) 을 히트시키면서 얻었다.

지난 1995년엔 화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흔히 그녀가 노래하는 장르를 트로트로 분류하고 트로트의 여왕이라고 부르지만 본인은 자신의 노래들이 트로트보다는 전통가요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까지도 뛰어난 가창력과 대중을 사로잡는 무대로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5년에는 가수 장사익과 《이미자-장사익 특집 콘서트》를 개최하였고 이 프로그램은 KBS1에서 방영되어 20.1%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2017년에는 가수 인생 58주년을 맞아 KBS1 《이미자 빅쇼》를 개최하였고 이 역시 시청률 14.1%라는 좋은 성적을 이루어냈다.

2019년 5월 2일에는 은퇴를 선언을 했으나 28일 MBN과의 인터뷰에서 은퇴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첫째 딸은 1981년에 고봉산 작곡가의 곡인 《항구》로 데뷔해 《어차피 떠난 사람》을 리메이크 히트시킨 엄마의 뒤를 따라가는 가수 정재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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