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12월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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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2-12   |  발행일 2013-12-12 제26면   |  수정 2013-12-12
올해 마무리하는 시점
나무처럼 다 비워내고
자신의 내면 들여다봐
고마운 분에게 카드로
사랑 전해도 좋을 듯
[여성칼럼] 12월을 보내며

가을은 멀어지고 겨울이 가까이 와있습니다. 저만큼 가고 있는 가을의 꼬리를 붙잡고 싶어집니다. 아마 12월을 보내려니 아쉬움이 남아서인가 봅니다.

국내외로 많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들을 역사 속으로 묻어버리고 12월도 저물어가겠지요. 저는 노루꼬리만큼 남은 가을을 덕수궁 안에서 잠시 붙잡아 보았습니다. 덕수궁 정원에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잎들이 수북이 깔려있었습니다. 노란 빛이 어두침침한 하늘을 되비춰주고 있었습니다. 은행잎들이 제각각 빚어내는 빛은 아름다웠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다른 모습이듯 말입니다. 제가 은행잎에 취해 나무처럼 한참을 노란 카펫 위에 서있었습니다.

겨울은 영혼의 달이고 텅 비어 투명한 달이고 밑바닥까지 다 보이는 달입니다. 잎을 다 떨어뜨린 나무처럼 모두 비워내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겨울은 너무 투명해서 가난한 이에게는 고통스러운 계절입니다. 짐승들에게도 시련의 계절입니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차가운 바람까지 불어오니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이제 곧 북쪽에서 동장군이 밀려오겠지요.

젊은 시절에는 앞만 보고 가느라 옆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주변도 돌아보고 뒷골목 풍경에도 눈이 갑니다. 저는 동네 뒷골목을 걸어 세탁소며 마트며 우체국에도 종종 갑니다. 그때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허리가 기역자로 구부러진 할머니들이 유모차나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입니다. 그 할머니들은 폐지를 주워 모아 싣고 갑니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는 저 할머니들이 더위에 어떻게 지내시나, 밥은 제때 드시나, 맘 편히 누울 방 한 칸은 있으신가, 아픈 몸을 지탱할 약은 드시는가, 뭐 이런 생각을 하며 그 할머니의 곁을 지나갑니다. 겨울이 되니 저 할머니들 어떻게 지내시나, 연탄은 들여 놓으셨나, 전기장판은 있으신가 하고 또 염려가 됩니다.

이 시대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문제 중 하나가 노인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은퇴하면서 저소득층으로 나앉게 돼 삶의 질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노년의 삶은 죽음을 앞둔 슬픈 삶이 아니라 죽음을 순리로 받아들이며 기쁨의 삶이 되도록 해야 하지만,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한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2018년 경에는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미래의 우리의 평균 수명은 3~5년 정도 연장되어 90~100세를 바라본다고 합니다. 백세시대가 도래함으로써 고령인은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그 원인이 의학에 발달에 있든, 생활수준의 향상에 있든, 출산율 저하에 따른 것이든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수명이 늘어난 반면 삶의 질은 떨어져 인생의 마지막에 질고로 고통당하는 세월이 더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덕수궁미술관에서 최근 열린 근현대미술전에서 저는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을 보았습니다. 청람색 바탕에 네모난 구멍이 많이 그려진 작품입니다. 창문 같기도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방에 들어앉은 것 같기도 한 그림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네모 칸 속에 한 사람씩 들어 앉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지,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쉬움이 많고 생각이 많은 12월이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먼저 구세군자선냄비를 찾아 나서는 일이고, 전나무 가지에 소복이 눈 쌓인 카드 몇 장을 사서 고마운 분들에게, 궁금했던 친구에게 카드를 보내는 일입니다.
박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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