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일궈온 논두렁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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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1.24. 오후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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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윈난성 위안양 다랑논길이 기획이 걷기 좋은 길을 추천하라는 것인데, 중국 서부에서는 좀 난처한 점이 있다. 일단 이 지역은 너무 넓다. 윈난만 해도 광활하고 지대가 높고 계곡은 깊다. 보통 원하는 장소까지 이동하려면 차를 타고 며칠씩 가야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동차나 열차 같은 교통수단을 사용한다. 아주 가끔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을 보았다. 멀리 상하이나 베이징에서 온 도시 사람들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에서 걸어 다니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차도 없고 오토바이도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체면을 중시하는 전통 사회인 중국 서부에서는 걸어 다니는 여행자를 딱하게 여긴다. 그래서 히치하이킹은 말할 것도 없고 걷다보면 주민들이 알아서 차를 대고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그냥 걷는다’고 하면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 나는 윈난성 위안양(元陽)현 신제(新街)진에서 마을버스인 빵차(面包車·식빵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를 타고 둬이춘(多依村)으로 향했다. 비포장도로를 타고 이 미니밴은 끊임없이 헐떡이며 가쁜 고개를 넘어간다.

©이상엽 위안양현 신제에 있는 다랑논.


거대한 풍경 앞 요지경

지금 이 차가 향하고 있는 곳에서는 중국 윈난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랑논(일명 라이스테라스)을 볼 수 있다. 마침 이곳을 찾은 때는 논농사를 위해 물을 대놓았기에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나. 하여간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단잠이 들었다.

한참 후 차가 멈추고 내리라 한다. 아침 6시. 아직도 밖은 깜깜하지만 주변을 둘러보고는 깜짝 놀랐다. 자동차 수십 대가 길을 메우고 저마다 최신형 고가 카메라를 멘 사람들로 붐빈다.

나도 카메라 장비를 둘러메고 벼랑가 사람들 옆에 위태롭게 섰다. 그러고는 이윽고 숨이 멎을 뻔했다. 와! 인간이 만든 거대한 풍경에 압도됐다. 아직 일출 전인데도 어렴풋하게나마 이곳이 왜 그 유명한 필리핀 바기오의 다랑논과 비교되는지 알 수 있었다. 상하이에서 왔다는 진씨는 “곧 이곳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될 겁니다. 그 전에 꼭 한번 와서 사진을 찍고 싶었죠.” 비단 진씨뿐 아니라 중국 전역의 사진 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 듯했다.

여기저기서 감탄과 두런거리는 소리들을 들으며 다랑논과 함께 바라본 일출 30분. 돌아보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그 많던 출사객들은 일출 사진만 찍고는 사라진 것이다. 그 황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도대체 이 먼 곳까지 어렵게 와서 풍경의 껍데기만 보고 간단 말인가? 홀로 투덜거리며 저 멀리 성냥갑만 하게 보이는 집들이 있는 마을로 걸어 들어갔다.

©이상엽 위안양현 신제에 있는 다랑논.


둬이춘은 하니족(哈尼族)의 마을이다. 중국 소수민족인 하니족은 청람색을 선호하며, 부녀자들은 가슴 장식과 귀고리를 특히 좋아한다. 농경민족으로 논농사와 차를 재배하며 사는데 워낙 고산지대에서 모여 살기에 기계농사하고는 거리가 멀다.

마을길을 걷다보면 거리에서 늘어져 자거나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돼지들을 만날 수 있다. 길옆 하니족 가옥구조는 3층이다. 1층에는 돼지가 살고, 2층에 사람이 산다. 다락방 같은 3층은 창고로 활용한다. 한자의 집 가(家)는 이런 가옥구조에서 발생되지 않았을까 한다.

돼지와 함께하는 걷기

윈난 지역의 고산에 사는 사람들의 단백질원은 돼지다.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는 선육 상태로 조리하지 않고 훈제를 한 햄의 형태로 가공해 먹는다. 흔히 ‘윈난 햄’이라 불리는 돼지고기는 염장을 한 후 집안 화덕 위 천장에 매달아놓고 수년을 숙성시킨다. 집안의 곰팡이가 고기에 붙어 아미노산을 분해한다. 하니족 집안에 딸이 태어나면 돼지 한마디를 통째로 훈제해 보관한다. 20년쯤 지나 결혼할 때쯤 창고에서 꺼내 잔치에 활용하는 것이다.

걷다보니 길은 시멘트로 포장돼 있다. 걷기는 한결 편하지만 뭔가 어색하다. 전에는 그냥 흙길이었는데, 비만 오면 진창이 되어 마을 주민이 현의 도움을 받아 포장한 것이란다. 사실 여행자가 이 오지의 정취를 누리자고 주민들에게 불편을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길을 걷다보면 황토로 마감한 담장이며 공터에 버티고 홀로 늙어가는 벚나무가 정겹기 그지없다.

©이상엽 둬이춘 거리에서 늘어져 자는 돼지. 돼지는 고산 지역 사람들의 단백질원이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출신인 노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나는 걷는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걷는 것은 행동이고 도약이며 움직임이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풍경, 흘러가는 구름, 변덕스러운 바람, 구덩이투성이인 길, 가볍게 흔들리는 밀밭, 자줏빛 체리, 잘려나간 건초 또는 꽃이 핀 미모사의 냄새, 이런 것들에서 끝없이 자극을 받으며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정신이 분산되기도 하며 계속되는 행군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생각은 이미지와 감각과 향기를 빨아들여 모아서 따로 추려놓았다가, 후에 보금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것들을 분류하고 각각에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멋지고 디테일한 문장이다. 그런데 나는 미주알고주알 글을 쓰는 위인이 못 된다. 부러울 뿐이다.

논두렁을 걸으며 만나는 비현실적 풍광

마을 골목길을 걸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논두렁을 걸어볼 일이다. 마치 잠자리 날개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논두렁은 우리네 농촌에 비해 규모가 커서 놀랐다. 논과 논 사이 비탈은 꽤 높은데 낮은 곳은 1m 정도이고 높은 곳은 2m가 넘는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모두 돌을 쌓아 만든 것이다. 모두 인력에 의해 저 거대한 다랑논을 천년 가까이 만들어온 것이다. 멀리서 그 풍광을 감상하는 이들에게는 아름다움일지 몰라도 그들에게 이 다랑논은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세계자연유산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이 일군 ‘문화유산’이 맞다.

©이상엽 둬이춘 마을길에 황토로 마감한 담장과 홀로 늙어가는 나무가 정겹다.


논두렁을 걸으면 무수한 풍광들과 만나는데 그것이 참으로 비현실적이다. 논에 댄 물에 비친 사물은 방향과 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하려면 봄과 가을 두 번은 하는 게 좋다. 윈난은 보통 3모작이 가능하지만 이곳처럼 지대가 높으면 2모작이다. 어느 때 와도 좋겠지만 이왕 눈에 담고픈 풍경이라면 모내기하기 전에 오는 것이 더 좋다.

한참을 걷다보니 배도 고프다. 어찌해야 한다? 다시 빵차를 타고 신제진까지 돌아가야 식당이 있다. 관광지와 거리가 먼 이곳 마을에는 민박이나 식당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일몰 때까지 걸으면서 풍광을 보려면 요기는 해야 한다. 무작정 다시 마을로 들어갔다. 청바지를 입은 낯선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하는 왕현달 노인(75)은 “전기도 지난해에 들어왔어. 덕분에 텔레비전도 보고, 한국 드라마도 봤지”라고 한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청년을 보기란 힘들다. 모두 도회지로 돈 벌러 나갔기 때문이다. 노인들과 여성이 지키고 있는 이 마을의 한 달 평균 수입은 우리 돈으로 채 5만원이 되지 않는다. 농약을 살 돈도 없으니 눈물 나는 ‘유기농 쌀’ 농사를 짓는 셈이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이 있느냐”라고 물으니, 하얀 쌀밥에 예외 없이 윈난 햄을 넣어 만든 채소볶음을 금방 내온다. 맛있게 먹고 값을 치르려 하니 손사래를 친다. 어찌 미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한 장 찍어주겠다고 한다. 과연 돌아가서 이곳까지 사진을 보내줄 수 있을지 나도 모르지만 그것이 이들의 호의에 내가 보답할 수 있는 전부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물과 먹을거리를 꼭 싸와야 할 일이다.

윈난 농촌에서 떠올린 얼굴

나는 올해로 15년째 중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에서는 이국적인 위구르인과 만났고, 칭장 고원에서는 라마승을 만났다. 하지만 윈난의 농촌에서는 리얼리티를 만난다. 우리네 수십 년 전 농촌을 데자뷔처럼 이곳에서 만난다.

오늘날 자유무역협정(FTA)이 횡행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중국의 9억 농민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9억명 중 2억명은 이미 민공(民工)이라는 이름의 도시 일용직이 되었다. 그리고 1억5000만명이 도시로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저곡가에 시달리는 윈난 농민의 딸 얼굴에서 공순이로, 가정부로 올라온 서울역 앞 우리네 누이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지금 내 나라 농민도 죽겠는데 웬 중국 농민 걱정이냐?”라고 할 듯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느리게 걷고 생각을 하다보면 득도는 아니라도 이 가난한 논두렁에서 살아가는 동시대 인민들의 속마음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이상엽/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작가. 치열한 삶의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뛰어들지만, 홀로 오지를 떠도는 일을 좋아한다. 〈파미르에서 윈난까지〉 〈레닌이 있는 풍경〉 등을 펴냈다.

위안양 다랑논길 가는 길

윈난성 쿤밍역 앞에 난야오 터미널에서 위안양행 버스가 있다. 야간 침대버스를 이용하면 이튿날 아침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주변의 소수민족 마을인 첸푸장, 칭커우, 성춘 등으로 가는 빵차가 있다. 위안양은 행정기관 등이 모여 있는 읍내 난사(南沙)를 말하지만 여행자들이 이야기하는 위안양은 이곳에서 산 위로 25㎞쯤 더 올라간 신제(新街)를 말한다.

이 지역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다랑논(梯田·티톈)이다. 그 규모와 압도적인 풍광에서 여행자들은 넋을 잃고 만다. 멀리서 보면 계단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 계단 하나가 2m가 넘는다. 모내기를 위해 논에 물을 가둬놓는 2월과 3월 석양은 참 장관이다. 위안양 신제에서 가까운 칭커우, 멍핀, 성춘, 다이춘 등이 가볼 만하다. 특히 소수민족의 마을 중에서도 표고버섯 모양의 초가집인 모구팡은 하니족 마을 첸푸장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규모가 있는 마을들을 돌다보면 오전에 토속장을 만난다. 다양한 먹을거리와 지역 특산물이 거래된다.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만으로도 들러볼 만하다.

신제 버스터미널 근처에 많은 숙박업소들이 있다. 고급 호텔은 없다. 표준 방은 150위안(약 2만7000원) 내외, 도미토리의 침상 하나는 60위안(약 1만1000원) 내외이다. 모내기철에는 전국 각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밀려오는 여행객들로 깔끔한 방을 잡기 힘들다. 관련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최적의 여행 시기는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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