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오른 방어회와 한라산 소주 한 잔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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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12.22. 오후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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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주&] ‘제주이민자’ 송호균의 제주살이

방어 이야기


모슬포 방어 축제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맨손으로 방어 잡기 체험을 하고 있다.


모슬포 최남단 방어 축제 인기
낚아 올리는 재미에 집중한 행사
산란 앞둔 12월~2월에 제맛


그 유명한 제주도 방어가 그야말로 제철을 맞았다. 시린 겨울, 한껏 기름이 오른 방어회와 한라산 소주 한 잔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방어 산지로 유명한 모슬포에서는 12월3일까지 ‘최남단 방어 축제’가 열렸다.

회유성 어종인 방어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남쪽으로 이동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그 마지막 월동지가 마라도라고 한다. 마라도와 가까운 모슬포에서 방어잡이가 활발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방어의 주된 먹이는 자리돔이다. 그래서 모슬포 어민들은 방어를 잡을 때 자리돔을 미끼로 쓴단다. 방어를 잡으려면 미리 자리돔부터 떼로 잡아야 한다니.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축제에서는 가두리 방어 낚시 체험, 아빠와 함께하는 각재기(전갱이) 낚시, 맨손으로 방어 잡기 등 즐길거리가 가득했다. 그중에서 단연 인기가 많은 행사는 맨손으로 방어 잡기였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사람들은 가슴까지 오는 바지 장화 ‘웨이더’를 입고 커다란 수조 속으로 뛰어들었다. 소정의 참가비를 내면 한번에 20명씩 체험할 수 있는데, 어제는 한 참가자가 혼자 방어 7마리를 잡는 기염을 터뜨렸다고 한다. 축제 역사상 깨지지 않는 기록이 13마리다. 통상 방어나 고등어 같은 등 푸른 생선은 성질이 급하고 유영 속도도 빨라 맨손으로 잡기가 쉽지 않은데,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사람들은 팔뚝보다 약간 큰 크기의 방어를 잘도 잡았다.

방어 축제에선 방어회나 구이뿐 아니라 통돼지 바비큐 등 풍성한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방어 낚시 체험장 앞에도 줄이 늘어섰다. 살아 있는 방어가 매달린 낚싯대를 진행 요원이 건네주니 곧바로 손맛을 느낄 수 있었다. 고기가 ‘낚이는 과정’은 과감히 생략하고, 오직 ‘낚아 올리는 재미’에 집중한 행사다. 10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어른 허벅지만 한 크기의 방어를 끌어올리자 카메라를 든 부모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잡은 고기는 가져가면 된다. 즉석에서 손질도 해준다.

모슬포 출신 지인 소개로 행사장 인근의 ‘하모수산식당’을 찾았다. 어른 2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방어회 한 접시와 매운탕이 5만원이니 가성비가 좋았다. 방어는 수온이 더 떨어지고 산란을 앞둔 12~2월이 가장 맛있다. 모슬포에선 ‘부두식당’이 방어 맛집으로 통한다. 서귀포 매일올래시장에도 예약하면 m급에 해당하는 대방어를 2~3인용으로 포장해 갈 수 있는 횟집이 많다. 제주시 쪽이라면 연동의 ‘마라도횟집’이 유명하다.

어느새 제주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어진 4살짜리 큰아이도 방어를 안다. 물가에 살아서인지 자연스럽게 어류나 산호 등의 해양생태계에 관심을 많이 보인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니 각종 도감이나 다큐멘터리 등을 함께 보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지금 아이의 꿈은 ‘쏠배감펭’이 되는 거다. “나는 쏠배감펭이 될게. 아빠는 참돔, 엄마는 만타가오리, 아가 동생은 상어”란다. 당연하게도, 올 여름에 우리 부부는 성산에 있는 제주 유일의 아쿠아리움 연간 회원권을 끊었다. 벌써 20번을 방문했으니 본전은 뽑고도 남았다. 특히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서 주말 나들이 필수 코스가 됐다.

방어회는 수온이 떨어지는 12월~2월 사이가 가장 맛있다.
방어와 부시리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겉으로는 똑같이 생겼지만 턱관절이 뾰족한 게 방어고 약간 둥근 쪽이 부시리다. 도감 사진을 짚으며 “뾰족한 게 방어, 안 뾰족한 게 부시리”라고 말할 줄 아는 4살짜리라. 그뿐인가. 귀상어와 능성어를 알아보고, 용치놀래기와 두줄베도라치의 차이를 알며, 감성돔의 등지느러미가 멋지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는 차근차근 ‘마린보이’의 길을 걷고 있다. 근사한 일이다. 돌이켜 보니, 제대로 된 제주 방어를 처음 먹어본 건 아내 덕분이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결혼 전 제주 여행길에서 아내 손에 이끌려 방어 횟집을 찾았다. 참치 뱃살만큼이나 풍미 좋은 생선회가 이렇게 푸짐하고 가격까지 착하다니.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아이를 둘이나 낳고, 그 아이들을 다른 곳도 아닌 제주에서 키우고 있다. 기분이 묘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입 안의 방어회는 기름지고 달았다.

글·사진 송호균 제주도민이 된 육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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