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만 먹고 버려 대가리만 둥둥
몸부림에 선원 병원 실려가기도
몸통살 차지고 아가미 지방 일품
“방어는 잡히면 팔아야 하니까
사촌 격인 부시리를 더 좋아해”
문다. 이 말에 방어잡이의 핵심이 들어 있다. 모슬포에서는 방어를 낚는다. 그물질이 아니니 방어가 낚싯바늘을 물어야 한다. 이 시기가 되면, 모슬포에서 방어로 먹고사는 이들의 인사는 이렇다. “좀 물어?”
“최근에 엔진을 갈았소. 힘 좋지예.”제주 말은 뒤를 ‘예’라고 올린다. 작은 선실에 걸터앉아 강 선장이 담배를 피워 문다. 오늘 고기의 운수를 보는 걸까. 브이 패스가 깜빡인다. 얼마 전 흥진호 사건으로 유명(?)해진 그 장비다. 어선의 현재 위치 등이 실시간으로 경찰에 전송된다. 출어는 까다로운 일이다. 바다는 여전히 위험하고, 게다가 남북 대치는 그 절차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취재진도 모두 해양경찰서 출장소에 가서 출어신고를 했다. 강 선장이 무전기를 들어 동료를 호출한다. 대답이 없다. 별 얘기는 아닐 것이다. 오늘 좀 ‘무는지’ 물어볼 참이었을 터.
“드쇼.”
그가 툭 뭔가를 던진다. 점방에서 산 크림빵에 바나나우유다. 아침식사다. 그는 빵 대신 연신 캔커피에 줄담배다. 바다는 잔잔한 편인데 속이 울렁거린다. 우리에게 멀미가 심하게 오면 배를 돌려야 한다. 어지간하길 바랄 뿐이다. 배가 밀고 가는 바다는 마치 콜타르나 식은 쇳물처럼 묵직한 검은색이다. 같은 물이되, 밀도가 다르다. 저 밑에 방어가 있다.
원래 방어낚시는 미끼를 낚는 일부터 시작한다. 자리돔이 제격이다. 이놈 몸뚱어리에 바늘을 끼워 던지면 수직으로 파고드는 성격이 있다. 깊은 바다에서 먹이냄새를 맡는 방어를 유인하기에는 그만이다.
“짜리(자리돔)도 좋지만, 각재기(쥐치)나 고도리도 좋고. 방어는 예민해서 산 것만 먹는 터라.” 옆으로 휙휙 방어잡이 배들이 지나간다.
“오늘은 많이들 쉽니다. 모슬포 방어 배가 일흔 척 정도 되는데. 며칠 새 안 물어서 출어 포기요.” 기름 반 드럼은 나가는데, 면세유인데도 10만원은 한다. 여기에 선원 쓰면 임금도 줘야 한다. 그래서 방어 기미가 적으면 출어를 안 하는 거다.
“오늘 낚시는 트롤링이고예. 거, 중앙일보가 도와줘야 합니다.” 배에 선원이 없다. 우리가 선원 보조다. 오른쪽으로 가파도를 끼고 가까이 마라도가 검은 몸집을 드러낸다. 수심계는 30~50m 이상을 오르내린다. 마라도 쪽으로 더 가면 100m 가까이 된다. 깊은 바다다. 검고 무섭다. 작은 배가 흔들리고 졸지에 선원 보조가 된 나는 비틀거린다. 마땅히 붙들 난간도 없고, 앉을 자리는 더욱 없다. 선장이 시범을 보인 후 내게 트롤링 장비를 건넨다. 가짜 미끼를 달아 바다에 던진 후 배를 선회하면서 방어를 유인, 낚는 방법이다. 일반 낚시가 안 되니 선택한 고육책이다. 작업용 장갑을 낀 손에 외줄낚시가 그대로 걸려 있다. 가짜 미끼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길고 깊게 낚싯줄을 당겼다 놓길 반복해야 한다.
턱, 슈슈슉, 낚싯줄이 급격하게 릴에서 풀려나간다. 뭔가 물었다. 힘이 세다. 선장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가 같이 당겨준다.
“방어는 잡히면 팔아야 하니까. 그렇기도 하고 뭐랄까, 여기 사람들은 부시리를 좋아합니다.” 부시리와 방어는 미세하게 다르게 생겼다. 보통 부시리의 옆구리의 노란색 줄이 더 선명하고, 몸통은 좀 납작한 편이다. 방어는 대개 참치처럼 거대한 포탄 같은 두께를 보일 때가 많다.
방어는 무리지어 회유한다. 그래서 강원도 앞바다의 정치망에 걸리는 양이 많다. 강원도에서 잡히는 방어가 제주도보다 많다.
바람이 거세지고 점점 추워진다. 선장의 구수한 옛날 얘기가 이어진다. 트롤링 줄을 풀었다 당겼다 하며 방어를 유인하면서.
“방어가 아주 빠릅니다. 시속 40㎞야. 휙 하고 지나간다고. 먹성도 좋고. 10㎏ 정도 나가는 특대방어를 잡아서 배를 가르면 참치처럼 새빨갛다고. 살이 붉으면 빠르다는 뜻이오.” 방어가 몰려오면 돌고래떼도 덤빈다. 방어를 쫓아오는 것이다.
“돌고래가 방어를 먹으려고 뱃창(배 위)에도 올라올 때도 있어. 바다에 방어 대가리가 둥둥 떠다녀. 몸통만 먹고 돌고래가 버린 거지. 무섭다고.”
방어는 겨울이 제철인 건 다 아는 사실이다. 모슬포에서는 11월에 방어축제를 한다. 여기에 약간의 함정이 있다. 모슬포 앞바다가 추워지려면 12월을 거의 넘겨야 한다. 1, 2월이 제철이라는 얘기다. 축제가 빠른 건, 분위기 띄우기다. 진짜 꾼들은 12월 중순 이후를 노린다. 축제의 흥청한 분위기가 좋으면 11월에 가고, 방어의 맛으로 보자면 좀 더 늦추는 게 낫다. 지금 수온 21도. 아직 가을의 수온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바다의 겨울은, 더 늦게 오는 법이다.
다시 입질이 온다. 재빨리 당긴다. 텅, 하고 묵직한 몸체를가 배에 끌려 올라온다. 제법 큰 방어가 몸부림친다. 6㎏ 정도 되는 놈이다.
“방어가 무섭습니다. 몸부림을 치면 선원이 맞고 병원에 실려 갈 때도 있다고.” 원래 모슬포는 방어를 잡아 왔지만, 대개 서울 등 대도시로 보냈다. 십여 년 전부터 방어를 맛보려는 관광객이 몰려오면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모슬포로서는 기회를 만났다. 조용하던 부두에 횟집이 크게 늘었다. 카페도 두엇 있을 정도다.
“이걸 드셔야 진짜 꾼이오.”
맑은 탕을 내는데, 특이한 건더기가 가득하다. 내장탕이다. 방어가 워낙 크니까 내장도 크고 진하다. 위는 거의 아귀처럼 두껍고 씹는 맛이 있다. 창자도 꾹꾹 씹힌다. 간도 일품이다. 그냥 탕은 회를 시키면 딸려 나오지만, 내장탕은 1인당 1만2000원을 내야 한다. 양이 한정되어서다.
방어 크기 구분은 지역마다 사람마다 각색이다. 보통 6㎏ 이상이면 대방어라고 한다. 8~10㎏이 넘으면 특대방어다. 그렇다고 방어가 클수록 맛있느냐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제철에는 소방어나 중방어도 기름이 잘 오르고 개체의 특성상 잘 먹고 자란 놈이면 맛이 좋다는 거다. 대방어라고 해도 기름기 적고 맛도 얕을 수 있다.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라는 별칭이 있는 인물. 음식 칼럼을 오랫동안 써 왔다. 딱딱한 음식 글에 숨을 불어넣는 게 장기다. 청담동에서 요리사 커리어를 쌓았고, 지금은 서교동과 광화문에서 일한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로 서양 요리를 만드는 일을 국내 최초로 시도한 일로 업계에서 유명하다. 이 지면에서 상식을 비틀고 관습을 뒤집는 제철 재료와 음식이야기를 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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