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주우러 간 새 화재…대구 세 모자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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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2.30. 오후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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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형제 화상 입고 중환자실로…홀어머니 "습기 많은 방 말리려다"
이웃들 "세 식구 무척 어렵게 살아"
30일 오전 5시40분쯤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불이 나 1층 가정집 대부분이 불에 탔다. 빠져나가지 못한 채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던 형제는 출동한 소방관이 창문을 깨고 구했지만 화상 연기흡입 등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대구 중부소방서 제공


어려운 형편 속에서 근근히 살아가던 대구 남구 한 가정에서 어머니가 켜놨던 양초가 화재로 번지면서 아들 형제가 변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30일 오전 5시 40분쯤 대명동의 한 다가구주택 1층 가정집에서 불이 나 A(30) 씨와 B씨(27) 형제가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어머니 C(53) 씨는 이른 새벽 폐지를 주우러 나가 화를 면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찾은 화재 현장은 현관 손잡이부터 새까맣게 타 있었다. 입구에는 타들어간 신발과 이불 등 각종 세간 살림이 널브러져 있어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짐작케 했다. 집 안은 불에 탄 흔적으로 어둡고 매캐했지만 평상시에도 창문에 햇빛이 하나도 들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고 했다.

주민들은 평소 이들이 폐지를 줍는 등 무척 어렵게 살았을 뿐 왕래는 거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D(66) 씨는 "불이 나자 형제가 문을 못 열어 살려달라고 창문을 두드리고 소리 지르는 것을 들었다"며 "다행히 출동한 소방관이 창문을 깨서 이들을 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환자실에서 두 아들의 상태를 확인한 어머니 C(53) 씨가 긴급생계비를 지원받고자 병원에서 대구 남구청으로 가고 있다. C씨는 "병원 관계자가 구청에서 긴급생계비 지원신청을 하라고 일러줬다"고 했다. 이주형 기자


이날 병원에서 만난 C씨는 중환자실 앞에서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었다. 그는 "방에 습기가 가득해 양초를 켜놓고 집을 나섰는데, 이것이 화재로 번져 내 아들들을 아프게 할 줄 몰랐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20여 년 전 남편이 집을 나간 뒤 홀로 두 아들을 키워 왔다. C씨는 "식당을 전전하며 닥치는데로 일했지만 어느 날 찾아온 간경화 증세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결국 4년 전부터는 일을 그만두고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렸다"며 "지난해 12월부터 갑상선기능저하증도 앓게 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악착같이 폐지를 주웠다"고 했다.

장성한 두 아들이 결혼할 때를 대비해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날도 폐지를 주우러 오전 4시20분쯤 집을 나서면서 촛불을 켜놓은 게 화근이 됐다.

현재 C씨의 두 아들은 양손 2도 화상과 연기 흡입 등으로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큰아들은 지난주까지 단기 아르바이트로 창고에서 짐을 날랐고, 작은아들은 자동차부품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며 "아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는 게 소원이었는데 집이 다 타버렸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가슴을 내리쳤다.

한편, 이날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은 소방차 25대와 소방관 60여 명을 출동시켜 25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같은 건물 주민 14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지만 다행히 다른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주형 기자 coo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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