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구충제 항암 효과 없다는데 '사람 구충제'까지 먹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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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들 사이에서 동물 구충제 '펜벤다졸'에 이어, 화학구조가 비슷한 사람 구충제 '메벤다졸' '알벤다졸'까지 인기다. 약이 동나면서 1000원대이던 약값이 웃돈을 얹어 수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암 커뮤니티에선 구충제 복용기와 복용법, 구입처 등 정보가 교환되고 있다.

◇개·사람 구충제 항암 효과 근거 없어

국내 이상 열풍은 미국의 말기 폐암 환자 조 티펜스(62·남)가 펜벤다졸을 먹고 완치됐다는 영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 뒤 나타났다. 폐암뿐 아니라 난소·신장·직장암 등 여러 암환자들이 구충제를 복용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는 "먹어도 되냐고 정말 많은 환자가 묻는다"면서 "몰래 드시는 분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식품의약품안전처·대한암학회·대한의사회는 펜벤다졸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가 없어 효과와 안전성에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럼에도 상품 가치가 없어 제약사들이 개발하지 않는다는 주장부터 정부 주도 개발이 필요하다는 국민청원까지 나왔다.

구충제의 항암 효과는 사실일까.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된 논문이 대표적인데, 펜벤다졸이 세포의 형태와 분열에 관여하는 미세소관의 합성을 방해해 암세포 증식을 어느 정도 억제한다고 밝혔다. 사람이 아닌 동물 실험 결과다. 이 학술지의 영향력 지수는 4점대로 높지 않다. 40점대 세계적인 '네이처' 출판사가 만드는 학술지라, 네이처 게재라고 잘못 알려졌다.

사람 구충제의 효과도 근거가 없다. 국립암센터 명승권 교수는 "메벤다졸의 항암 효과를 살피는 5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지만 효과 없음 또는 미미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대호 교수는 "항암제로 쓰려면 효과가 있는 정도론 안 되고, 효과가 매우 좋으면서 부작용이 적어야 한다"며 "기생충을 죽이는 약이라 체내 흡수율이 낮은데, 흡수를 높이려 많이 먹으면 간 독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간 독성이면 황달과 피로감, 식욕부진 등이 나타난다.

◇항암제 동시 복용, 상호 작용 위험

구충제처럼 미세소관을 억제하는 항암제는 이미 30여 년 전 개발됐다. 파클리탁셀 등은 정상세포까지 손상시키는 1세대 독성항암제인데, 요즘은 1세대 항암제보다 2세대 표적항암제나 3세대 면역항암제가 많이 쓰인다. 실제로 이번 이슈가 된 조 티펜스도 미국 전 대통령 지미 카터의 흑색종과 뇌종양을 완치시킨 면역항암제를 1년간 복용했다.

명승권 교수는 "그의 의무기록을 보면 2016년 8월 소세포 폐암을 진단 받고 10월부터 면역항암제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 12월 방사선 치료도 받았다"면서 "구충제를 2017년 1월 셋째주부터 먹었다는데 1월 말 PET-CT에선 암이 많이 사라졌고 4월 완전히 좋아졌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구충제 효과인가"라고 반문했다.

명 교수는 "산에서 암이 나았다는 환자들도 표준 치료가 효과를 보인 경우가 많다"며 "세포나 동물실험에서 효과가 있어도 사람에게도 효과를 보이고 안전성을 입증할 확률은 1만분의 1~2로 낮다"고 말했다.

항암제와 구충제를 동시에 복용하면 약물 간 상호작용으로 체내 약물 농도가 높거나 낮아져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약물 부작용으로 지금보다 회복이 더 어려운 상태에 이를 수 있고, 이런 경우 보상도 안된다"면서 "개인의 표현 자유를 빙자해 잘못된 정보로 유포해 한시가 아까운 암환자들을 자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 이주연 헬스조선 기자 bi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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