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일보-

1. 경계 밖으로 내몰린 존재들

2천 년대 한국소설에서 공동체 혹은 사회의 관심 밖에 위치한 무력한 개인의 고립을 서사화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처럼 보인다. 그것은 누구나 예외 없이 사회적 관계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족쇄에 묶여있고, 자율성에 근거한 행위 가능성이 체계적으로 소멸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현실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무력감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비루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소설 내 인물들의 출현은, 많은 경우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경기침체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곧, 고용 및 경제적 불안과 그로부터 발원한 일상적 삶의 위기를 그 배경으로 꼽는다. 1)

실로 ‘97년 체제’로 규정된 외환위기 이후의 삶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제적 생존’과 무차별적인 과시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회적 생존’과 질병과 죽음을 넘어서 오래 살고자 하는 ‘생물학적 생존’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조해진의 두 소설 ‘빛의 호위’와 ‘산책자의 행복’3)에 그려지는 인물들의 모습도 우선은 그러한 사정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그런데 소설의 인물들이 현실의 압력으로부터 그 고통 너머로 이동할 수 있는 힘 혹은 계기가 일종의 메시아니즘적인 구원자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해진 소설은 문제적이다. 더구나 그 구원자가 한때의 작은 인연이었을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누군가의 삶을 생의 의지로 기꺼이 나아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발터 벤야민의 소위 ‘미약한(weak) 메시아주의(messianism)’는 구원의 실현이 위대한 메시아라는 강한 인물이 아니라, 사소하고 미약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역사 안에서 전개된다고 믿는다. 벤야민이 카프카 소설의 인물들이 그러하듯, 약하고 볼품없는 인물들에서 구원의 희망이 있다고 본 것처럼, 우리는 조해진 소설에서 그러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4)

2. 고독과 불안의 감각을 견뎌내기

조해진 소설 ‘산책자의 행복’에서, 대학의 철학과에서 20여 년 동안 강사로 일했던 소설의 초점인물 홍미영은 대학의 구조조정의 여파로 하루아침에 밑바닥 삶으로 내쳐지는 신세가 된다. 철학과가 다른 비인기 학과와 합쳐져 인문학부로 통합되고, 철학과의 교양과목이 폐강되면서 대학에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대학이 그 본래의 책무와 무관하게 기업이 요구하는 기능인력 양성소가 된 지 오래고, 자연스레 학생들의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계열 학과는 통폐합되는데, 그 과정에서 비전임교수들, 강사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대학 밖으로 쫓겨나는 일은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들보다 더 열악한 노동조건과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하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는 일이 적지 않고, 대체로 우리는 그러한 일들에 분노하기는 하지만,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동안 그래도 경제적 여유는 있었을 것이고, 강사라는 직업은 자신의 선택이고, 전임이 되지 못한 건 어쩌면 실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도 없지는 않아서, 소설의 인물 홍미영처럼 학교 밖으로 내쫓기는 대학 강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중 하나라고도 여기는 것이다. 칸트의 경우 존엄성은 모든 인간이 가지는 공통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5)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사회에서 그 어떤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든지 간에, 존엄성의 요구에 종속되어 있으며,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빼앗길 수 없는 내적 가치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6)

홍미영 역시 별 다른 방법이 없기는 했겠으나 아무런 저항 없이 그것을 수락 혹은 체념한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지 못해 파산을 하고, 기초수급자가 되어 영구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형편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된다. 그녀는 그것을, “하나의 세계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입과 거주지를 국가에 의탁해야 하는 세계, 수치심은 사치가 되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최후의 보루조차 될 수 없는 세계, 그녀 앞에 새로 펼쳐진 세계는 그런 곳이다.

그렇다하여 생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홍미영은 임대아파트가 있는 M시에서 자정부터 새벽 여섯 시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명한다. 편의점에 들르는 손님들로부터 가끔씩 혹시 ‘홍미영 교수님’ 아니냐는 질문을 받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녀는 지금 ‘교수님’이 아니니까. 매 학기 강의가 끝날 때마다, “생존은 스스로 해결하되 세상이 인정하고 우대해 주는 직업에 연연해하지 말라”고, “눈 가린 말들처럼 정해진 트랙을 달릴 필요 없다”고 강조했던 그녀는 지금, “아내와는 사별하고 장성한 아들은 미국에서 결혼하여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는 편의점 사장의 그늘아래 아늑한 침대와 자족적인 식탁을 남몰래 탐하곤”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런 탓에 그녀가 종강 무렵 학생들에게 했던 저 말들은 이제 존재와 신념을 모두 부정하는 ‘배교자의 언어’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소설에서 라오슈(老師)-홍미영이 불안정한 신분이나마 대학 강사에서 도시의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의 위치로 전락한 데는 우선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강제한 바, 학문의 영역마저도 실용적 가치, 다시 말해 생산성-이윤을 창출할 수 있느냐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데서 비롯한다. 그러나 소설은 그러한 자본의 구조나 속성을 문제 삼기보다는 소설 내 인물이 그동안 관념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그녀가 대학 강사라는 지식인이면서 현장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대학에서 쫓겨나는 일에 대해 어떤 억울함이나 부당함을 토로하지 않고 그것을 수락하는 무력한 인물로 그려진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는 관념이나 추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생존은 스스로 해결하되 세상이 인정하고 우대해 주는 직업에 연연해하지 말라고, 그러하니 눈 가린 말들처럼 정해진 트랙을 달릴 필요 없다고 강조했던), 자본의 논리에 의해 선택의 여지없이 밑바닥 삶으로 떨어진 이후에야 그 관념의 허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메이린’에게, 사는 게 원래 이토록 무서운 거냐고 묻는다. 미치도록 살고 싶다고 흐느낀다.

‘메이린’은 한국에 유학 와서 라오슈(老師)-홍미영에게 강의를 들었던 중국학생이다. 독일에서 유학 중인 메이린은 홍미영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낸다. 메이린은 홍미영과는 달리 자발적 선택에 의해 독일로 유학을 왔지만 그녀 역시 홍미영과 비슷한 종류의 불안의식을 갖고 있다. 그것은 “해변에 버려진 종이상자처럼 파도가 밀려 올 때마다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메이린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방인으로서 진정한 유대관계의 부재에서 오는 고독과 불안의 감각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산책 중에 만난 청년 노숙자 ‘루카스’는 이민자 출신이지만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러나 그가 했던 일들은 ‘일시적’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일상이 일시적인 것으로 밖에는 허락되지 않는 자본의 논리는 이제 편의점 알바로 연명하는 한국의 홍미영이나 독일의 루카스나 다를 게 없다는 것인데, 이는 자본의 논리가 어느 일국 체제 내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관철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다리 위에서 난간에 기대앉은 채 플라톤의 ‘향연’을 읽는 노숙자 청년 루카스와, 새벽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통기한이 지나 판매할 수 없는 삼각 김밥 하나를 꺼내 먹는 오랫동안 대학의 철학과 강사였던 홍미영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다.

소설에서 주요 인물인 홍미영과 메이린을 이어주는 끈은 ‘이선’이라는 인물이다. 이선, 고작 스물세 살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메이린의 한국인 친구 이선. 메이린이 한때의 스승이었을 뿐인 홍미영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쓰는 까닭은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구나.”하고 말하던 홍미영에 대한 어떤 염려 탓이라 할 수 있다. ‘이선’이 그러했듯 어느 날 홀연히 홍미영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의 강박을 메이린은 갖고 있으니까. 그녀가 편지에 쓰고 있지 않은가. “또 하나의 부재를 감당하게 될까봐, 온몸을 내던져 부딪칠 장벽도 없이 그 어쩔 수 없는 부재에 잠식될까봐 저는 무서웠습니다. 그러니 저는 라오슈가 아니라 제게 닥칠지 모를 가상의 고통을 걱정한 것입니다.”하고. 그러니 다시, 메이린이 홍미영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쓰는 까닭은 그 자신의 불안한 삶을 견디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겠다. 누군가, 기억할 만한 이가 아무도 없는 삶이란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무엇인가. 홍미영의 절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벽 여섯 시에 편의점 사장과 교대한 후 그녀는 길을 걷다가 목줄이 풀린 개 한 마리가 자신을 ?아오는 것을 느끼고 필사적 힘으로 도망을 간다. 골목이 끝나고 아파트 단지 입구가 보였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면 경비실이 있을 것이고 경비실엔 개를 쫓아줄 누군가가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먼 곳에서 조명을 밝히고 있는 경비실을 목격했으면서도 그녀는 앞만 보며 달렸고 이내 아파트 단지 입구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가 아니었다. 독거노인과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가 사는 임대아파트가 아니었다. 그녀는 또 다시 거절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가 눈앞에서 셔터를 내리는 걸 또다시 지켜볼 수는 없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소설이 긍정적인 삶의 향방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지만, 그녀가 지금-여기의 비루한 삶을 견디며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절규하는 것으로 우리는 소설이 지금-여기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하는 것임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독일의 젊은 노숙자 루카스가 읽고 있는 ‘향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태초의 인간은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가 한 몸이었다죠. ‘향연’의 어느 페이지에서 읽은 기억이 났습니다. 새삼 그들이 부러워졌습니다. 태초의 인간들에게는 인종도 국가도 종교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들에게는 그저 끝없는 사랑만 있었겠지요. 손만 뻗으면 제 몸에 붙은 연인을 만질 수 있는 사랑의 그 짧은 거리, 단순하고도 감각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메이린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의 전언이 보다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으니까.

3. 소외와 불안한 삶을 비추는 빛

조해진 소설 ‘빛의 호위’는 우선, 황폐한 환경과 그 속에서 생존의 욕망마저 사그라져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불안한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답 하건데, 그것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빛의 호위’는 화자가, 취재 차 ‘권은’이라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를 만나고 난 후 그녀가 오래 전, 그러니까 그가 초등학교 졸업반 무렵인가 같은 반 아이였음을 기억해 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오래 전 ‘나’는 ‘권은’이라는 여자아이가 연락도 없이 나흘이나 결석을 하자 담임의 부탁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반장이어서 그랬을 뿐이었으나, 아무튼 녹슬고 찌그러진 현관문은 깜깜한 방과 곧바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 방에서 빛을 발하는 건 둥글고 투명한 스노우볼 뿐이었음을 상기한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그 작고 추운 방에서 열세 살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 아비밖엔 가족이라 할 게 없는 상황에 있다. 그 까닭까지 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가족의 해체현상은 드물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소설의 인물 권은은 법 혹은 사회적 책임의 테두리 바깥으로 밀려나 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적으로 무화된 존재의 은유로 기능한다.

‘산책자의 행복’에서 ‘홍미영’의 가족이란 늙고 병든 어미뿐이었듯이 ‘빛의 호위’의 ‘권은’에겐 짧게는 한두 달에서 길게는 반년까지 집을 비운다는 아비뿐이다. 그마져도 그녀의 아비는 도박장 근처 쓰레기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문이 떠 돌만큼 그녀는 세계 밖으로 내버려진 존재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권은의 춥고 남루한 방을 방문한 이후 나는 권은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자주 빠져들곤 한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 후로 몇 번 더 권은의 방을 찾아 간다. 그러나 ‘나’도 대책 없는 열세 살짜리 아이였을 뿐이어서 권은에게 갖다 줄 수 있는 있는 거라곤 만화책이나 스노우볼에 들어가는 건전지처럼 사소한 것뿐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안방 장롱에서 우연히 후지사의 필름 카메라를 발견했을 때 일말의 주저도 없이 그걸 품에 안고 무작정 권은의 방으로 달려갔던 건, 나의 눈에는 그 수입 카메라가 중고품으로 팔 수 있는 돈뭉치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은’은 내 기대와 달리 그 카메라를 팔지 않는다. 그녀에겐 카메라가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였으니까. 그녀는 카메라에 담을 만한 더 많은 풍경을 찾기 위해 조금씩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학교도 다시 다닌다.

권은이 블로그에 내게 남긴 쓴 글에서, “반장,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반장, 네가 준 카메라가 날 이미 살린 적이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라고 하지 않는가. 바로 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작고 희미한 의식이 불안하고 고독한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아니겠는가 하고 작가는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이성의 원칙에 기반을 둔 서구 근대화 과정을 이끈 주요 매체가 활자였다면 이제 새로운 현실 인식의 매체로 등장한 카메라는 조절 가능한 눈의 시각이 무의식 영역을 확장시킨다. 필름이 수행하는 것은 이전의 활자와는 달리 더 이상 의미독해 내지 그것의 추구가 아니라 감각의 심화다. 7) 그렇게 볼 때 이 소설에서 내가 권은에게 건네주었던 것이 다름 아닌 ‘카메라’라는 것은 매우 뛰어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권은은 내가 건네주었던 카메라를 통해 춥고 어두운 세계로부터 밝고 따뜻한 세계로 이동할 수 있었으니까.

권은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헬게 한센’의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에 대해 듣게 된다. 권은이 주로 분쟁지역을 다니며 사진을 찍게 된 것도 그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에 나오는 ‘알마 마이어’라는 여성에 관한 소설 속 이야기가 권은의 견딤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알마 마이어’는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던 구호품 트럭이 피격되었을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헬게 한센’은 이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한다. “구호품 트럭의 피격으로 사망한 ‘노먼 마이어’와 하나 뿐인 아들을 잃은 그의 어머니 ‘알마 마이어’를 통해 역사의 폭력에 맞서는 개인의 가치 있는 용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생존자고, 생존자는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그러나 정작 ‘알마 마이어’는 오랫동안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까닭은 “사람들이 노먼을 시대의 양심이니 유대인의 마지막 희망이니 하는 수식어로 포장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알려 했다면 알았을 것을 모른 척 해놓고 나중에야 자신은 몰랐으므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그것은 증언의 기만성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그러하다. 대다수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방관자들의 수동성을 인권침해에 대한 지지와 동조로 간주한다. 그러나 가해자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 터이지만 방관자들이 수동적인 이유는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8)

그런데 소설에서 ‘알마 마이어’가 견뎌야했던 역사적 폭력의 참혹함을 이해할 게 필요하다. 무엇보다 벨기에에서 유대인에 대한 탄압- 게토에 갇히거나 수용소로 끌려가야 하는 상황을 피해 그때 그녀의 연인이자 같은 오케스트라에서 호른을 연주하던 ‘장’이 브뤼셀 외곽에 위치한 사촌 형의 식료품점 지하 창고에 그녀의 은신처를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장’이 그녀를 위해 2주에 한 번씩 물과 빵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지하 창고를 찾아온다. 춥고 어둡고 남루한 열세 살의 ‘권은’에게 겨우 만화책이나 스노우 볼에 들어가는 건전지처럼 사소한 것들을 가져다주던 소설의 화자 ‘나’와 겹치지 않는가. 그 시절의 ‘권은’을 견디게 해 주던 것은 오직 ‘나’의 작지만 따뜻한 마음뿐이다. 아, 하나 더 있다. 아버지의 것으로 짐작되는 후지사의 필름 카메라.

권은은 그것을 사람을 살리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고마워하고 있다. ‘장’이 가져다주는 부족한 물과 빵 바구니 밑바닥에는 그가 작곡한 악보 한 장씩을 깔아놓는 걸 잊지 않는다. ‘알마 마이어’는, “장이 작곡한 그 악보들은 식료품점 지하 창고에서 날마다 죽음만 생각하던 내게는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하는 빛이었어요. 그러니 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 악보들이 날 살렸다고 말이에요”라고 말한다. 권은이 나에게, 반장이 나를 살게 해 준 힘이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그들을 살게 했던 힘, 그들을 견딜 수 있게 했던 작은 힘들이 바로 ‘빛의 호위’ 아니겠는가.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서의 빛의 호위.

4.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군가의 몫을 빼앗고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는 자본의 논리가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은 철저하게 무력할 뿐이다. ‘산책자의 행복’에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을 연명해야 하는 대학 철학과 강사였던 홍미영이,「빛의 호위」에서는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의 삶과 다를 게 없는 권은이 그런 인물이다. 그러니 조해진의 소설들은 일차적으로 세상의 고통과 마주하는 무력한 개인의 삶을 그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데, 무력한 개인이 그 불안과 고통을 견디는 방식으로서의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질문하는 것, 그러니까 문학이란 여전히 세계와 개인 사이의 불화를 다루되, 지금-여기의 삶보다는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의 근거를 잃거나 놓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읽을 수 있겠다.

다른 하나는, 소설 내 인물들이 감당해야 했던 역사적 폭력의 상흔이 두 소설 모두에 편재한다는 점이다. ‘산책자의 행복’에서 홍미영의 늙고 병든 어미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경남 산청에서의 민간인학살 희생자다. ‘빛의 호위’에서는 유대인 여성인 ‘알마 마이어’가 인종청소의 희생자다. 그러니까 조해진의 소설들은 역사적 폭력과 자본의 폭거 앞에서 종내 무력하기만 한 개인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당면한 고통과 불안을 어떤 방식으로 견뎌내고 있는가를 심문하고 있다 하겠다. 그것은 앞에서 밝힌 것처럼,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감각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산책자의 행복’에서 홍미영과 메이린, ‘빛의 호위’에서 권은과 나, 그리고 알마 마이어와 장의 관계가 그러하다.

그런데 조해진 소설에서 그처럼 메시아니즘적인 구원자의 존재는 아름답다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그것이 인물들이 겪는 어떤 고통과 불안의 감각과 관련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관련하여, 우리가 겪은 실패는 상상력의 실패, 공감의 실패라고 말하기도 하고, 9) 당신은 당신의 친구가 의식(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10) 당신의 마음 이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고 극단적 회의를 갖기도 한다. 그러니까 요체는, 조해진의 소설에서 구원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아름답다는 뜻은 소설을 읽는 독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가능한 해석일 터이므로 그것은 다시 카타르시스의 문제가 된다. 기본적으로 카타르시스는 타인의 삶을 간접 체험함으로서 느끼는 감정이다. 이 카타르시스는 한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야기 속의 상황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곧 안도와 함께 편안한 느낌이 들 때 완성된다. 이렇듯 허구의 현실로 빠져들어 자신의 현실을 잃어버리는(망각) 효과를 동화(同化)라 부른다. 이 동화의 긍정적 효과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는 데 있다. 일상적 불안과 경제적 공포가 지속되는 위험사회에서 잠시의 위안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위안은 그 자체로 나무랄 것은 아니다. 위안의 긍정적인 효과가 견디기 힘든 현실에서 잠시 마음을 빼 내어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누군가에게는 격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홍미영은 살고 싶다고 절규하고, 권은은 누군가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고 회상하고, 알마 아이어 역시 죽음에의 공포를 견딜 수 있었던 힘으로 그의 연인의 따뜻한 마음을 상기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그 구원이 개인적인 선의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소설에서의 개인적 구원은 인물의 상황을 구조의 차원에서 변화시키는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자칫 인물이 처한 상황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게 되는 잘못을 낳게 될 지도 모른다. ‘산책자의 행복’에서 ‘홍미영’은 대학 밖으로 내쫓겼지만 그것을 다만 “한 세계가 끝났다”고만 진술할 뿐 자본과 대학사회의 폭력 구조에 대해 아무런 항의조차 단념한다. 비슷한 고통을 감당하고 있을 무수한 타인과의 연결 혹은 연대는 애초에 부재한다. 그러하니 살고 싶다는 절규만으로 그가 어떻게 살아남기는 할 수 있을지 우리는 그 행방을 자신할 수 없다. 메이린의 단속적으로 전해지는 편지만으로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빛의 호위’에서는 ‘나’ 가 건네준 카메라를 통해 권은이 프리랜서 사진작가가 되어 어느 만큼은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나, 프리랜서 사진작가라는 그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는 위치와 함께 분쟁지역 취재를 하러 갔다가 큰 부상을 입고 호송되는 지경에 이른다. 인종청소의 위험 속에서 살아남은 알마 마이어는 팔레스타인들에게 주기 위해 구호품을 싣고 가던 트럭이 로켓 공격을 받아 그의 아들이 죽고 만다. 고독과 소외와 고통의 강을 잠시 견디거나 혹은 그것으로부터 건너기는 했으나(구원),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의 선의와 연민과 관심과 사랑의 힘으로부터 발원하기는 했으나, 다시 돌아본 인물들의 현재의 위치는 여전히 그대로인 셈이다. 무엇으로부터 구원이 가능한 것인가는 따라서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이다. 나름의 모색이 제한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것은 슬프게도 소설 내 인물들의 탓도 아니고 작가의 탓도 아니며, 독자의 탓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고군분투했으니까.

결국 문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자본권력의 시대, 공포를 배태한 자율성 곧 자유가 개인화되듯 공포가 사사화(privatization)되는 시대에 문학 역시 사적이고 개인화된 태도를 취하는 것에 있을 터이다. 다만 조해진 소설이 최근에 발표되고 있는 일련의 페미니즘 소설의 정형화된 문법처럼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도로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성차의 개입 없이, 아니 오히려 남성과 여성의 연대와 혹은 여성과 여성의 감정적 연루의 방식으로 개인이 처한 불안의 감각을 해쳐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점은, 시대적 강박에 얽매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 지속가능성에 주목할 만하다.

<각주>=======================================================

1)정수남, ‘공포, 개인화 그리고 축소된 주체’, “정신문화연구” 제33권 4호, 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331쪽.

2)김홍중, ‘진정성의 기원과 구조’, “한국사회학” 제43집 5호, 한국사회학회, 2010, 22쪽.

3)이 두 단편은 조해진 소설집 “빛의 호위”(창비, 2017)에 수록되어 있고, 이 글은 이 두 작품만을 다룬다.

4)윤교찬, ‘사도 바울과 벤야민의 메시아 주의, 그리고 아감벤의 동시대성’, “영어영문학21” 21세기영어영문학회, 제28권 1호, 126쪽.

5)마이클 로젠, “존엄성”, 공진성·송석주 옮김, 아포리아, 2016, 49쪽.

6)알랭 드 보통, “불안”, 정영목 옮김, 은행나무, 2011, 144쪽.

7)김영옥, 같은 글, 347쪽.

8)스탤리 코언,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조효제 옮김, 창비, 2015, 310쪽.

9)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재원 옮김, 이후, 2011, 25쪽.

10)토마스 네이글,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영기 옮김, 궁리, 2014, 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