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공감 획득에 실패한 대한항공 오너 가족의 사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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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6.19. 오후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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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은 조직이나 오너 일가나 ‘사과(謝過)‘를 참 잘못하는 기업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때도 그랬지만 사과가 문제 수습에 도움을 주기보다 사태를 악화시키거나 희화화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사과하는 것을 좋아할 개인이나 조직은 없다. 가능하면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과 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간단하다. 사과할 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고매하신 교황님도 악수를 하다 짜증을 내서 신도에게 사과를 하는 마당에 사람이 실수를 할 수 있고 조직이 크다보면 이런저런 사과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처럼 개인이나 조직이 사과를 해야 할 사안이 발생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제대로 해야 한다. 제대로 사과를 한다는 것은 사과를 통해 발생된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한다는 의미라기보다 잘못을 인정해 뉘우치고 있고 앞으로 유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할 테니 용서해달라고 간청하고 사과를 받는 사람으로부터 그 진정성을 이해 받는 것이라고 하겠다.

대한항공 고(故) 조양호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공동 명의로 지난 12월 30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딱 네 문장으로 된 짤막한 사과문은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가족 간에 이해가 이루어졌으며 앞으로 화합해서 잘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이번 사과문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오히려 앞으로 사과를 해야 할 개인이나 조직이 이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을 준다. 무엇이 문제인지 위기관리 차원에서 살펴본다.

[사과문]
지난 크리스마스에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집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조원태 회장은 어머니인 이명희 고문께 곧바로 깊이 사과를 하였고 이명희 고문은 이를 진심으로 수용하였습니다. 저희 모자는 앞으로도 가족 간의 화합을 통해 고 조양호 회장님의 유훈을 지켜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 12. 30
정석기업 고문 이명희
한진그룹 회장 조원태


무엇보다 사과의 ‘대상’과 ‘메시지’에 문제가 있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다. 이번 사과문이 국민이나 언론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국민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보다 명확히 밝히는 것부터 시작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적절했을 것이다. 사과문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이라고 한다면, 당장 이런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심려는 무슨..마음속으로 대한항공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데...!’ 아들인 조원태 회장이 사과했고 어머니인 이명희 씨가 이를 수용했다는 것 역시 일반 국민 입장에서 보면 별 관심사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대한항공 오너 일가 가족 내부의 문제일 뿐이다. ‘가족 간 화합을 통해 고 조양호 회장의 유훈을 지켜 나가겠다’는 것도 오히려 비판만 자초하고 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아지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세습 경영을 하느냐는 지적을 받게 되어있다. 가족간에 사과할 거라면 대외적으로 발표할 필요도 없는 일이고, 언론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과라면 이들이 대한항공 오너 가족으로부터 듣고 싶은 메시지를 사과문에 담았어야한다. 핵심이 빠져있다.

사과문의 구성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사과문 발표의 주체는 이명희, 조원태 두 사람인데 문장을 보면 마치 제3자가 발표하는 듯한 문장과 당사자의 입장을 밝히는 문장이 혼용되어있다. 문장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도 없다. 이 사과문이 주는 메시지는 대한항공 오너 가족 간에 분란이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시끄럽지 않게 자체적으로 잘 정리되었으니 그만 관심을 가져달라는 정도가 되겠다. 이번 사과문 발표로 언론과 국민들은 이명희, 조원태 두 사람의 뜻대로 이 사태를 받아들이기보다 향후 대한항공 경영권 귀추와 관련해 더 큰 관심을 갖고 추이를 지켜보게 될 것이며 조그만 논란에도 이번 사태를 연계시키게 될 것이다.

대한항공은 우리 국민이 키워준 국민기업이다. 요즘 아시아나 항공도 어려운 판에 대한항공 마쳐 힘들어진다면 오너 가족 일가를 떠나 국가적으로 여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수년간 대한항공은 가족 일가의 여러 도덕적 해이 행태로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대한항공은 지금 풍전등화의 처지에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언론이 지적하고 있는 것 처럼 경영권 다툼을 할 때가 아니다. 새해를 맞아 조직 안팎으로 종전과 확연히 달라진 대한항공의 모습을 보여 다시금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유재웅. 을지대학교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신문방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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