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은 영국보다 700년 먼저 산업혁명 이룰 뻔했다”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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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21   |  발행일 2019-12-21 제16면   |  수정 2019-12-23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1
클라이브 폰팅 지음/ 왕수민 옮김/ 민음사/ 856쪽/ 3만5천원
‘녹색세계사’로 유명한 영국저자 대표작
서양 중심의 역사에 반기 들며 의문 제기
“4대문명서 이집트 빼야” 등 새 시각 보여
‘활자인쇄’‘한글 창제’한반도사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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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본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에서는 서양 중심의 세계사 서술에 의문을 품는다. 책은 중국과 이슬람 등의 역사에 주목하는데, 특히 중국의 송나라는 산업혁명의 직전 단계까지 갔을 정도로 번영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18세기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기 모습과 11세기 초 중국 송나라의 번영기 모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은 지금 읽어도 코끝이 찡해지는 슬프고도 멋진 글이다.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닌 기준으로 우리의 현실을 해석하려고 하는 시도는 오로지 우리들을 더욱 더 미지의 존재로, 부자유스럽고 더욱 더 고독한 존재로 만들 뿐입니다.”

‘고독’을 통찰한 콜롬비아 출신의 위대한 작가는 자신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한 부분을 서구 유럽의 시선으로 해석돼 온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는데 할애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었다.

우리가 배워 온 역사에 과연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있을까. 세계사 공부를 할 때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등의 개념이 역사의 중대한 사건, 중요한 기준으로 보고 달달 외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서양의 시선에서 본 역사였다. 이 오랜 역사에 서양만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우리는 서양 중심의 세계사에만 몰두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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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서양 중심의 역사 서술에 반기를 든 새로운 시각의 역사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책들은 ‘절대·객관’인 마냥 학습돼 온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고 비판한다.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 역시 바로 그런 의문 하에서 쓰여진 책이다.

책은 방대한 인간 문명사를 지구 환경의 관점에서 정리한 ‘녹색 세계사’로 유명한 영국의 역사가 클라이브 폰팅의 또다른 대표작이다. 책에 대해 저자는 “세계 모든 지역에 존재한 인간 공동체의 이야기를 시간 순서에 따라 서술하고자 노력했다”고 전한다.

전체 1권, 2권으로 나눠져 있으며, 1권에는 선사시대에서 중세까지의 세계사를 담고 있다. 인류의 진화와 전세계로의 확산, 인류의 유목 생활과 채집 생활, 농경의 시작과 초기 제국이 탄생하는 과정 등을 다룬다. 책은 특히 자기들만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문명을 이룬 아메리카와 태평양, 그리고 번영했던 중국과 이슬람에 주목한다.

저자는 기존의 여러 역사적 상식에 근거를 들어 이의를 제기한다.

우리가 배운 세계 4대 문명(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허)에서 이집트는 빼야 한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또 10세기 무렵에 유라시아 전역을 통틀어 가장 발달한 지역은 단연 중국이었다는 주장도 한다. 책에 따르면, 960년에 건국된 ‘송’은 경쟁 왕조들을 잇따라 공격해 2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오늘날 프랑스 면적의 일곱 배에 달하는 지역을 통일했으며, 송이 유럽보다 먼저 ‘상업혁명’과 ‘산업혁명’을 달성할 뻔했다. 1076년 송의 철 생산량만 봐도 1076년에 들어 12만5천t(산업혁명 전야로 일컬어지는 1788년에 잉글랜드의 철 생산량이 약 7만6천t)에 달했다는 것이다.

방대한 세계사 속에서 한반도 역사가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책은 “조선 초기 역사상 중대한 의미를 갖는 두 가지 발전이 한반도 내부에서 일어난다. 첫번째는 가동 활자 인쇄술이 세계 모든 곳을 제치고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이용됐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한글 창제”라고 강조한다.

1권만 8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다행히 문체가 어렵지 않고 담백해 잘 읽히는 편이다. 우선 서론부터 무척 흥미롭다. 서론에는 ‘거부’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기존의 역사 서술 방식을 거부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 세계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에는 심한 결함과 편견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 책의 근본 논지다. 그러한 결함은 뿌리 깊은 유럽 중심주의에서 비롯된다. 유럽 중심주의는 ‘서구 문명’을 세계사의 주된 동력이라고 보며, 서구 문명 안에 인간 사회와 인간 사고의 모든 훌륭하고 진보적인 것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서구 이외의 전통과 사회가 가진 역할과 중요성이 간과되고 무시되곤 한다. 그것은 곧 이 세상 사람 대다수의 경험을 간과하고 무시하는 일이 된다. 이 책은 인간의 역사를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에서 서술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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