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귀여운 사진·영상 넘치고
신종 직업 ‘고양이 탐정’도 등장
축제·출판·웹툰 콘텐트로 인기
2년 전 “고양이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며 아버지 별장을 고양이 낙원으로 개조한 박서영 대표는 한꺼번에 100명 이상 몰린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다. “성수기엔 500명쯤 오세요. 손님들은 고양이들이 다가와 안기는 모습을 보고 쓰다듬는 것만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가시죠.”
반려묘도 증가 추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2017)에 따르면 전국의 반려묘는 243만 마리로 추정되는데, 개에 비해 개체수는 적지만 증가율이 높다. 최근 서울시 발표에선 2014년에 비해 개를 키우는 가구 비율은 4.0%포인트 감소한 반면 고양이는 3.6%포인트 증가했다. 양육 만족도 면에서도 개보다 고양이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애묘 산업도 빠르게 성장중이다. 옥션에 따르면 2018년 반려견 용품 판매는 전년 대비 11% 증가한 데 비해 반려묘 용품은 24% 증가하며 전체 반려동물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다. 2017년부터 국제캣산업박람회와 케이캣페어 등 고양이 전문 박람회가 성행 중이다.
연관 산업 성장 … 고양이 보험도 등장
실종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양이 탐정’도 신종 직업으로 등장했다. 최근 JTBC2 예능 프로그램 ‘호구의 차트’ 조사에서 ‘불안한 미래를 책임질 떠오르는 신종직업’ 6위가 고양이 탐정이었다. 적외선 카메라·내시경 카메라 등 각종 장비를 동원한 전문적인 수사를 한다. 국내엔 20명 정도 있지만 일본은 이미 기업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양이를 지역 콘텐트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지난해 4월 선유도역 부근 선유마을에선 첫 ‘고양이 축제’가 열렸다. 고양이 전문잡화점 ‘선유도고양이’를 중심으로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비 일체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했다. 6~8월엔 고양이를 주제로 한 ‘선유 야옹이마켓’을 꾸준히 열었다. 인근 공단지역에 정착한 젊은 예술가와 상인들이 과거 이 지역이 ‘괭이산(고양이산)’이라 불렸던 사실에 착안해 ‘고양이 마을’로 포지셔닝하려는 노력이다.
대학로에는 ‘고양이길’이 생겼다. 이화동 벽화거리를 따라 고양이전문서점 ‘슈뢰딩거’를 시작으로 고양이 일러스트 작가가 운영하는 ‘고양상점’, 고양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갤러리카페 ‘이화중심’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예술가들의 뮤즈로도 떴다. 자신의 고양이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 의인화하는 17년차 ‘고양이 집사’ 이슴슴 작가는 “함께 지낸 시간만큼 주고받은 많은 느낌을 살려 작업한다”고 했다. ‘고양상점’을 운영하는 일러스트 작가 낭낭은 ‘랜선집사’다. “부모님 때문에 못기르고 있다. 길냥이 밥을 주다가 후원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반응이 좋아 고양이만 그리게 됐다”고 했다. 고양이 작가들끼리 그룹전도 종종 열린다.
2018년엔 고양이 영화제가 열렸고, 지난해엔 고양이가 주인공인 영화도 2편 나왔다. 배우 선우선이 자신의 12마리 고양이와 함께 떠난 여행 영화 ‘오늘도 위위’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높은 평점을 받았다. ‘뽀짜툰’ ‘상상고양이’ 등 고양이 웹툰도 요일별로 포진하고 있다.
방송도 점령했다. 드라마와 CF에 양념처럼 등장하다가 당당히 주인공이 됐다. 2018년 시작된 EBS ‘고양이를 부탁해’는 고양이의 다양한 문제행동을 치유하며 시즌4까지 순항 중이다. 최초의 고양이 예능 ‘냐옹은 페이크다’도 5일 tvN에서 첫 방송된다.
고양이 영상 시청만으로 힐링
인디애나주립대학 미디어 스쿨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유튜브에 올라온 고양이 동영상 200만 건이 총 26조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전체 동영상 중 고양이 영상에 붙는 댓글이 가장 많았다. 제시카 미릭 교수는 고양이 영상을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냈다. 7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고양이 영상을 본 후 걱정·짜증·슬픔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주로 1인 가구가 반려묘를 기른다는 사실이다. ‘체리캣’ 장황용 대표는 “혼자 사는 여성분이 가장 많이 찾고, 한 마리만 키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이 일일이 돌봐줘야 하는 개에 비해 고양이는 케어를 많이 하지 않아도 힐링을 주니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2019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반려견이 있는 가구는 주택 형태나 가구원 수와 관계없이 비슷한 분포를 보이는 반면, 반려묘는 1인 가구와 월세 가구에서 높은 비율로 기르고 있다.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고양이가 가족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조지선 박사도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대상을 찾는 게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인데, 그런 유대감을 사람에게서 느낄 수 없을 때 동물과의 관계에서 위로받게 된다”고 했다.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일본의 동물생태학자 야마네 아키히로 교수도 저서 『고양이 생태의 비밀』에서 사회적 변화를 지적했다. 경제성장기를 지탱하던 ‘충성’의 가치가 흔들리면서 개인주의화한 현대인들이 충직한 개보다 자유롭고 도도한 고양이의 모습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조지선 박사도 개와는 다른 색다른 관계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했다. “‘집사’라는 아이덴티티가 트렌드를 넘어 규범이 됐다. 영화 ‘캣츠’의 ‘고양이와 친해지려면 리스펙트 하라’는 대사처럼, 사람들은 자신에게 ‘집사’의 지위를 부여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기의 역량을 드러낸다. 나는 충성만 원하는 게 아니라 남을 존중하고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얘기”라는 것이다.
미학자 진중권은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2017)에서 숭고한 미적 존재인 고양이를 찬양하며 그에 걸맞는 집사가 되기 위해 ‘고양이성’을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랑을 바라나 굳이 구걸하지 않고, 속으로 따뜻해도 겉으로 까칠하며, 아무리 친해져도 끝내 알 수 없는 구석을 남기며, 사회 안에 살면서도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고양이성’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자는 얘기다.
유주현 기자, 김여진 인턴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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