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돌리나 했더니…한국 경제 '중동 리스크' 암운 [美·이란 일촉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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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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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80달러 넘을 땐… 성장률 2.4% 달성 위기감 / 정부, 긴급장관회의 이어 7일 확대경제금융회의 / 코스피 21.39P 내린 2155.07 마감 / 증시 호전 ‘1월 효과’ 전망 어긋나 / 달러·채권·금 등 안전자산 가격 올라 / 두바이유 2.39달러 오른 67.83달러 / 전면전 땐 호르무즈해협 봉쇄 예고 / 원유 수입 막힐 땐 GDP 전반 타격 / 합동점검반 확대 편성… 적극 대응

6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에 금시세가 고지돼 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금융시장에 큰 변수가 등장하며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 가격도 다시 들썩이고 있다. 이제원 기자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하면서 세계경제가 대형 악재에 직면하게 됐다. 최근 미·중 무역갈등의 그림자가 옅어지며 올해 반등을 기대하던 한국경제도 작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6일 증시는 큰 폭으로 하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가파르게 올랐다. 원유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에 정부는 이날 오후 긴급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중동사태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1.39포인트(0.98%) 내린 2155.07에 장을 마감했다. 코스닥은 전 거래일보다 14.60포인트(2.18%) 내린 655.33에 장을 마쳤다. 연초가 되면서 국내 증시가 호전될 것이라는 ‘1월 효과’ 전망과 달리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우려가 커지면서 증시가 안갯속에 빠진 것이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란을 지지하는 시아파 민병대 등의 강경 대응은 시기마다 국내 주식시장에 부담을 줄 여지가 크다”며 “국제유가는 강세를 이어가면서 기업들의 비용 증가 및 소비 둔화를 자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코스피는 애초 예상 등락 범위(1900∼2250) 하단을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며 “만약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이 발생한다면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주가지수의 하락 폭이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 가격도 상승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5.0원 오른 1172.1원에 거래를 마쳤다.

달러 이외에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손꼽히는 채권과 유가 등 현물 가격도 올랐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5년물은 연 1.348%로 1.2bp(bp=0.01%포인트) 하락했다. 1년물과 20년물도 각각 연 1.523%, 1.568%로 0.3bp 남짓 하락했다. 채권은 수요가 몰려 가격이 올라갈수록 연 금리가 낮아지는 구조다.

금 현물 가격은 전날보다 2.3% 오른 온스당 1588.13달러에 형성됐다. 이는 2013년 4월 이후 최고치다. 금 선물도 시카고상품거래소(CMX)에서 2.5% 오른 1590.90달러에 거래됐다.

국제유가인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87달러(3.06%) 오른 63.05달러를 가리켰다. 두바이유도 2.39달러(3.65%) 오른 67.83달러에 거래됐다. 미국 싱크탱크인 유라시아그룹은 “이라크 남부 유전으로 충돌이 확산하거나 이란의 민간 선박 공격이 심해지면 국제유가가 8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 산업계는 중동 지역 전운에 따라 유가 상승 등 추가 파급효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수입 원유 비중은 사우디아라비아가 28.2%로 가장 많았다. 이어 쿠웨이트 14.1%, 미국 12.7%, 이라크 10.9%, 아랍에미리트(UAE) 7.8% 순이다. 이란산 원유는 지난해 4월부터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배럴당 80달러가 넘으면 전체 국내총생산(GDP)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만일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 중 30%가 오가는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는 등 중동상황이 더 악화하면 한국 수출은 회복세는커녕 다시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동 상황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는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긴급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중동 상황과 관련해 금융시장 리스크 요인, 석유수급, 수출 등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과 해외건설 현장동향 및 안전조치, 호르무즈해협 인근 항행 우리 선박 안전조치 등을 점검하고, 향후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국제 금융시장의 경우 지정학적 불안으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화되며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국제유가도 미국·이란 간 긴장으로 일부 상승압력을 받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가동하는 한편, 7일 오전 개최하는 확대 거시경제금융회의 중심으로 합동점검반을 확대 편성해 상황 변화에 대응하기로 했다. 8일 제1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 관련 상황을 안건으로 상정해 추가 논의를 이어가고, 관계장관회의를 수시로 열기로 했다.

정부는 석유·가스 수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대체 도입선 확보 등을 통해 수급 안정에 필요한 추가 물량을 조속히 확보하기로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란의 경제규모가 작지 않아 그 자체로도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며 “우리 경제는 노동비용 문제 등으로 기업 수익성이 악화한 상황에서 에너지 비용까지 문제가 생기게 되면서 상당히 어려운 국면이 나타날 수 있고 환율이나 금리 등에 불안정성을 만들어낼 위험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산자부·정유업계 긴급회의

미국·이란 간 관계 악화로 중동 지역 전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내 석유·천연가스 수급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정유업계 등과 함께 긴급회의를 열고 점검한 결과 이 사태가 국내 석유·가스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향후 불확실성이 커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산업부는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위기 발생 시 비축유 방출 등과 같은 비상대응 체계 신속 작동을 위한 대비에 들어가기로 했다.

산업부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주영준 에너지자원실장 주재로 석유·가스 수급 및 가격 동향 점검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국가스공사와 정유업계는 미국 공격으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사망하면서 고조된 중동 지역 정세와 관련해 직접적인 공급 차질은 현재로서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지 원유의 국내 도입도 아직은 별다른 차질이 없는 상태다.

회의 참석자들은 그러나 “당장은 큰 영향이 없겠지만, 향후 국제 석유·가스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주 실장도 “아직은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미국과 이란 간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국제 원유·가스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영준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이 최근 중동정세와 관련하여 석유·가스 수급 및 가격동향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부는 국내 원유·가스의 중동산 비중이 원유 70.3%, 액화천연가스(LNG) 38.1%(2019년 1∼11월 기준)에 달하는 만큼 유사시 신속 대응을 준비하겠다고 설명했다. 우선 석유수급상황실을 재가동해 원유 수입, 유조선 동향 등 수급 상황 및 국제유가,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매일 모니터링한다. 석유수급상황실은 유가 가격이 크게 변동되면 설치하는 시설이다. 지난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시설에 드론 공격이 일어나자 설치했다가 4개월여 만에 재가동한다.

아울러 석유·가스 수급 위기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정부가 마련해놓은 비상대응체계가 신속히 작동할 수 있도록 점검을 강화하기로 했다. 비상대응체계는 자체 위기평가회의 개최, 비축유 방출, 석유 수요 절감 조치 등을 단계적으로 검토해 시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 9650만 배럴의 비축유를 가지고 있다. 민간 재고까지 합치면 비축유는 2억 배럴가량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해 4월부터 이어진 중동의 정세 불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 연장선 상에서 국내 석유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김범수·이도형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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