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활력' 불어넣은 이봉창 의사,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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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1.08. 오전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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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국가보훈처가 ‘제88주년 이봉창의사 의거 기념식’을 개최한다.

국가보훈처는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제88주년 이봉창의사 의거 기념식'을 연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이봉창 의사(1901년 8월10일~1932년 10월10일)는 서울에서 출생했다. 그는 1931년 1월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 한인애국단 김구 단장을 만나 일왕 폭살 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거사를 준비했다.

1년여의 준비를 마친 이 의사는 1931년 12월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후 출국해 12월 말 도쿄에 도착했다. 그는 일왕 히로히토가 1932년 1월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날을 거사일로 정해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이 의사는 거사일인 1932년 1월8일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일왕이 나타나자 그를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폭탄은 일본 궁내대신이 탄 마차 옆에서 폭발해 일장기 기수와 근위병이 탄 말 2필 만을 거꾸러뜨리는데 그쳤다.

일왕 폭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월30일 도쿄 대심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0월10일 오전 9시2분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 의사의 의거는 1930년대 한국 독립운동사를 장식하는 의열 투쟁의 선봉으로,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운동의 활력소가 됐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4월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공원 의거가 일어났다.

한편 이 의사의 유해는 지난 1946년 김구 선생에 의해 국내로 봉환돼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이 의사의 공훈을 기려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정소영 기자 wjsry21em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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