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변 살인사건' 재구성 <1>그들은 어쩌다 살인범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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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1.08. 오전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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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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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낙동강 갈대숲서 여성 시신 발견…미제사건 남겨져
2년 뒤 공무원 사칭 혐의 연행…가혹행위로 '허위자백'
[편집자주]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를 맡았던 '부산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재심이 결정되면서 당시 경찰 수사관들의 가혹행위 등 진실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특히 재심 개시를 결정한 재판부에서 경찰의 가혹행위 등 직무상 범죄를 인정하고, 이례적으로 재심 청구인인 최인철씨(59)와 장동익씨(61)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면서 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당시의 수사기록과 법무부 대검찰청 과거사위원회 조사, 재심 개시 결정 공판과정에서 드러난 증거와 증언 등을 토대로 사건의 전모를 재구성한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장동익씨(61·왼쪽 네번째)와 최인철씨(58·왼쪽 다섯번째)가 지난 6일 부산 연제구 부산고법 301호에서 열린 재심 재판을 마친 후 가족들과 플래카드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2020.1.6 /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부산=뉴스1) 박채오 기자 = 지난 1990년 1월4일 부산 북구 엄궁동 낙동강변 인근 갈대숲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으로 발견된 여성은 오른쪽 두개골이 함몰됐으며, 상의와 속옷은 목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고 하의는 반쯤 벗겨진 상태였다.

사건 현장에서 지문 등 범인을 특정할만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당시 피해 여성과 같이 있던 남성의 진술만 기록된 채 미제로 남겨졌다.

이 피해 여성과 남성은 낙동강변에 차를 세우고 데이트 중이었다. 이때 괴한 두 사람이 이들을 덮쳤다. 커플 중 남성은 묶인 채 납치됐고 여성은 강간·살해 당한 뒤 시신이 유기됐다.

피해 남성은 "두 사람이 차량 문을 열고 공격해왔다. 차량에 있던 접착 테이프로 나를 묶은 뒤 강물로 던졌다. 강물에서 테이프가 풀렸고, 범인 중 한 사람과 격투 끝에 도주했다"고 진술했다.

범인에 대해서는 "한 사람은 키가 크고, 나머지 한 사람은 키가 작았다. 두 사람 모두 부산 말씨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 즉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실마리가 잡힌 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1년10개월이 지나서 공무원 사칭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최인철씨(58)로부터다.

지난 1991년 11월8일 오후 3시, 부산 사하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김 양식장 작업을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던 최씨를 찾아왔다. 공무원 사칭 혐의로 신고가 접수됐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이틀 전인 11월6일, 무면허 운전교육을 하던 한 남성이 자연보호 활동을 하던 최씨를 공무원으로 오인하고 3만원을 건넨 것이 화근이었다. 그 남성이 최씨의 차량번호를 외워둔 뒤 공무원 사칭으로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최씨에게 "경찰서까지 임의동행하자"고 말한 뒤 사하경찰서로 연행했다. 이후 현장에 같이 있었던 장동익씨(61)도 경찰서로 연행됐다. 최씨와 장씨는 경찰 수사에서 공무원 사칭을 포함해 1991년 8월부터 11월 사이에 발행한 강도사건 18건을 추가로 '자백'했다.

경찰은 19건의 사건에 대해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대부분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사건들이고 보강 증거가 필요하다"며 단 두 사건만 재판에 넘겼다.

두 사람이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것은 검찰의 지적 이후 새로운 강도사건이 추가되면서다.

1991년 11월11일 오후 부산 중부경찰서 소속의 한 순경이 최씨와 장씨로부터 강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순경의 진술이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해 남성 진술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순경은 "지난 1989년 12월 새벽, 부산 사하구 신평동 인근 강변대로에 세워놓은 자신의 차량 안에서 데이트를 하다 강도를 당했다. 한 명은 체격이 크고 험상궂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체격이 작고 야윈 얼굴이었다. 둘 다 경상도 말씨를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해남성이 말했던 범행 수법도 비슷했다. 순경은 "이들이 식칼로 유리를 파손한 뒤 차문을 열고 침입했다. 이후 돈을 갈취한 뒤 나를 트렁크에 밀어넣고 운전한 후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당시 수집된 피해 여성의 손수건에서 나온 정액 혈액형과 최씨의 혈액형이 일치했다.

경찰은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최씨를 특정하고 수사를 다시 시작했다. 이후 최씨로부터 "장씨와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를 근거로 두 사람은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 두 사람은 경찰의 물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무기징역이 확정돼 21년 이상 복역하다가 지난 2013년 모범수로 특별감형돼 석방됐다.

che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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