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용의 CEO열전] ⑧ 아이폰·아이맥 만든 산업 디자인 업계의 전설 '조너선 아이브', 이제 애플 떠나 새 행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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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용 기자
입력 2019-07-0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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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너선 아이브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2019), 러브프롬 대표(2020)

  • 아이폰, 아이팟, 아이맥 디자인한 전설적인 산업 디자이너... 잡스와 함께 위기의 애플 구한 1등공신

  • 마크 뉴슨과 함게 디자인 회사 러브프롬으로 독립, 산업 디자인 업계 관심 집중

아이폰, 아이팟, 아이맥 등 애플의 대표적 제품을 디자인한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 최고디자인책임자(CDO, 부사장)가 애플을 떠난다. 그는 2020년부터 '러브프롬'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세우고 애플과 협력해나갈 계획이다.
 

조너선 아이브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부사장), 러브프롬 대표.[사진=애플 제공]

 
아이브는 1991년 애플에 합류해 아이맥 G3, 아이팟, 아이폰 등 애플의 주요 제품을 설계하며 두각을 드러낸 전설적인 산업 디자이너다. 과거 산업 디자인은 생산 과정에서 뽑혀나온 내부 기기를 토대로 외부 디자인을 완성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졌다. 반면 애플은 이러한 관례를 깨고 아이브가 만든 세련된 디자인에 맞춰 내부 기기를 설계했다.
 
아이브의 핵심 디자인 철학은 '미니멀리즘'이다. 없앨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없애는 간결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타사의 산업 디자이너들이 제품에 어떻게든 하나의 기능이라도 더 넣기 위해 고민할 때 아이브는 어떻게든 불필요한 기능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브의 감각적인 디자인은 지난 20년 동안 애플 제품이 이용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제품이 될 수 있게한 원동력이었다. 아이브가 디자인한 제품이 시중에 출시되면 다른 회사들은 그의 디자인 스타일을 베끼기 급급했다. 모든 애플 제품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는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라는 문구가 아이브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아이브는 세계 최고 기업의 고위 임원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일하는 예술가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애플 사옥에는 아이브만을 위한 디자인룸이 따로 있다. '글래스 큐브(Glass Cube)'라고 불리는 이 디자인룸에서 아이브가 일할때면 그의 영감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CEO를 포함해 누구도 접근하거나 연락할 수 없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조너선 아이브가 지난 20년 동안 디자인한 애플 제품을 모아둔 디자인북이다.[사진=애플 제공]


◆잡스가 아이디어 내고 아이브가 다듬고, 둘의 협력으로 연이은 성공가도
 
아이브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부터 애플에서 일한 것은 아니다. 두 명의 동업자와 함께 '탠저린 디자인'이라는 회사를 차려 승승장구했다. 많은 기업의 제품을 설계하며 산업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디자인을 하는 시간보다 기업 담당자를 만나 자신의 디자인 방향을 설명하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에 실망하고 자신의 디자인 감각을 받아줄 기업을 찾아나섰다.
 
1991년 아이브는 지인을 통해 애플의 신규 제품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1992년에는 애플에 정식 입사했다. 이후 아이브는 세계 최초의 PDA인 뉴턴 메시지 패드, 애플 20주년 맥 등을 디자인하며 두각를 드러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애플 산업 디자인팀 리더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애플은 신규 제품과 프로젝트의 거듭된 실패로 회사가 큰 위기에 처해 있었고, 많은 인력이 이탈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브 역시 애플을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 CEO로 돌아오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스티브 잡스는 과거 자신이 아이맥 제품을 설계하면서 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방열팬을 제거하는 등 미니멀리즘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처음 잡스는 외부에서 디자인 관련 인력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디자인 방향성과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부 인력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아이브는 자신과 산업 디자인팀의 역량을 잡스에게 보여주기 위해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라는 책자를 만들었고, 이내 잡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책자의 제목은 애플 산업 디자인팀의 표어가 됐다.
 
잡스의 지휘 아래 아이브가 처음 선보인 제품이 일체형 데스크톱 '아이맥 G3'다. 기존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반투명 플라스틱 재질과 곡선 디자인을 갖춘 아이맥 G3는 1998년 한 해 동안 80만대가 팔리며 애플 부활의 신호탄이 됐다. 아이브는 아이맥 G3에 다양한 색상 모델을 추가한다는 판단으로 판매량을 견인했다.
 
이후 아이브는 잡스의 분신처럼 일했다. 잡스가 전체 디자인 콘셉트를 제시하면, 아이브가 이에 맞춰 결과물을 내놨다. 아이팟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잡스가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자, 아이브는 당연시 여겨지던 배터리 교체를 과감하게 제거했다. 이를 통해 배터리 덮개와 내벽을 없앨 수 있었고, 더 작고 깔끔한 디자인의 제품이 완성됐다.
 

아이팟. 아이브의 미니멀리즘을 집대성한 디자인이라고 평가받는다.[사진=애플 제공]

 
마냥 '예스맨'은 아니었다. 잡스의 아이디어라도 자신의 디자인 철학에 반하면 바로 퇴짜를 놨다. 잡스는 다양한 색상의 아이팟을 시장에 출시하길 원했지만, 아이브는 간결하게 흰색 한 종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아이브에게 다양한 색상이란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촌스러움을 더하는 요소였다. 결국 아이브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아이팟은 흰색 단일 모델로 출시됐다. (향후 다양한 색상이 추가되긴 했다.)
 
아이팟, 아이팟 터치,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맥, 맥북 등 애플의 모든 제품이 이렇게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에 맞춰 설계되었다. 그 결과물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MP3 플레이어 아이팟과 누적 판매량 15억대가 넘는 아이폰 그리고 오늘날 세계 최고의 기업 애플이다.
 
때문에 한때 아이브가 건강이 악화된 잡스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초거대기업 애플을 이끌 경영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제품 유통, 부품 조달 등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를 담당하던 팀 쿡이 잡스의 후계자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죽기 직전 애플 임원들에게 제품 디자인에 관련된 모든 것은 아이브에게 맡기라는 유훈까지 남겼다. 잡스가 아이브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iOS 디자인을 담당하던 스콧 포스톨이 해고된 후 아이브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iOS와 같은 소프트웨어 디자인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아이브가 디자인한 iOS7부터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는 미니멀리즘 경향을 띄기 시작했다. 이 경향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이후 애플 떠날 준비... 새 디자인 회사에 업계 이목 집중
 
아이브가 왜 애플을 떠나기로 결심했는지 알 수는 없다. 팀 쿡과의 불화, 타사 합류, 새로운 도전 등 다양한 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애플의 핵심 제품인 아이폰 디자인을 자신의 후임인 마크 뉴슨에게 맡기는 등 2015년 이후 결별을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한 것만은 사실이다. 결정타는 2017년 다이슨의 창립자인 제임스 다이슨의 뒤를 이어 영국 왕립예술대학 총장에 지명된 것이었다. 아이브는 애플 부사장으로서 역할보다 대학 총장 및 자문 역할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애플 업무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애플의 신사옥인 애플 파크 디자인 관련 작업에만 참가하고 제품 디자인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아이브는 올해 말까지만 애플에서 근무하고 2020년부터는 마크 뉴슨과 함께 디자인 회사 러브프롬을 차려 독립한다. 애플의 들어오기 전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향후 애플 제품 디자인을 맡는 등 애플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이브와 러브프롬이 향후 산업 디자인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업계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조너선 아이브는 누구?

-1967년 2월 영국 출생(53세)
-뉴캐슬과학기술대학(현 노썸브리아 대학) 산업 디자인 학사(1989)
-로버츠위버그룹(RWC) 산업디자이너(1989)
-텐저린 디자인 공동대표(1990)
-애플 산업 디자이너(1992)
-애플 산업 디자인 팀장(1994)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2019)
-대영제국 2등급 훈장(KBE)(2012)
-영국 왕립예술대학 총장(2017~2022)
-러브프롬 대표(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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