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프리뷰]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과거의 영광에 기댄 ‘추억팔이’ 오락 대작

제목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Terminator: Dark Fate)

제작연도 2019

제작국 미국, 중국

러닝타임 128분

장르 SF, 액션

감독 팀 밀러

출연 맥켄지 데이비스, 아놀드 슈왈제네거, 린다 해밀턴, 나탈리아 레예스,

개봉 2019년 10월 3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결국 상영시간 내내 부담스러울 정도로 현란하고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을 연이어 쏟아내는 현대 할리우드 대작의 전형이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앞서 총 5편의 영화가 나왔다. 기괴한 분위기의 저예산 SF 공포영화였던 <터미네이터>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해가 1984년이었으니 30년을 넘게 이어온 대장정이다. 그동안 이어진 이야기들 속에서는 다양한 인물과 세계관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와중에도 속편들 모두 하나같이 소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품격’은 잃지 않을 정도의 제작규모를 유지하며 이어졌다는 점이다. 반면 그로 인해 나날이 공허해져 가는 ‘속편의 저주’는 관객들이 감내해야 했다.

제작사는 이번 여섯 번째 작품의 제작을 발표하면서 가장 큰 화제로 원년 멤버들의 복귀를 내세웠다. 적어도 과거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올드팬의 관심을 끄는 데는 유용했던 것 같다. 2편 이후 시리즈를 떠났던 제임스 캐머런의 제작 참여와 여주인공 사라 코너 역의 린다 해밀턴의 등장을 반기는 주변 지인들의 목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번 작품은 앞서 제작된 세 편의 속편은 무시하고 2편에서 바로 연결되는 새로운 연대기를 시작한다. 연출에 이름을 올린 팀 밀러의 존재감도 팬들의 기대에 일조하고 있다. 이전에는 이렇다 할 경력이 없다가 발칙한 성인 슈퍼 히어로물 <데드풀> 한 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의 능력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고 그래서 이번 작품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대작 오락영화, 강박에 더해진 정치적 올바름

하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기존의 정형화된 할리우드 오락영화 이상의 의미까지는 찾을 수 없는 결과물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규모는 감당이 버거울 정도로 비대해졌지만, 캐릭터와 전개는 유아적이라 할 만큼 단순하다. 그 와중에도 상당히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두 가지 요소는 이 영화가 얼마나 게으른 작품인지 재확인시킨다. ‘타문화에 관한 관심’과 ‘페미니즘’. 이 두 가지는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회·문화 전반에 중요한 쟁점이다 못해 이제는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린 듯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의 대표적 화두이기도 하다.

지난 수년간 아카데미 시상식은 할리우드의 혼란과 눈치보기를 극명하게 드러낸 행사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비난과 영화계 전반에 만연한 여성차별에 대한 목소리는 완성도 있는 영화에 존경을 표하는 행사 본연의 취지를 무색게 했다. 실제 몇몇 수상작들은 이런 정치적 분위기에 편승한 구색 맞추기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 수년간 중국 영화시장의 비약적 성장과 중국 자본의 투자로 인해 이질적으로 묻어나던 중국색의 불편함 또한 할리우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배경이 굳이 멕시코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만큼 이야기의 집중도나 응집력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선택은 결국 시대적 관심에 편승한 상술적 선택일 수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만든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쟁점과 이슈

<터미네이터 2>를 평가할 때 가장 인상적인 사실 하나는 이전까지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묘사되던 여성 캐릭터의 진화였다. 전편에서 영문도 모른 채 구원자 카일 리스(마이클 빈 분)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생명을 부지했던 사라(린다 해밀턴 분)는 속편에서 직접 총을 든다. 이즈음부터 지금은 흔히 사용되는 ‘여전사’라는 표현이 관객들에게 익숙해졌다. 사실 이런 여전사의 원형은 캐머런 감독의 <에이리언 2>(1986)에서 이미 완성되었고, <터미네이터 2>는 일종의 답습 또는 재활용의 느낌이 크다. 되돌아보면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대부분이 강인하다.

이번 작품에서 여성성은 단순히 위협의 대상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대항하는 활동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동안 모성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어 오던 희생의 업보를 벗어던지고 독립적 자아의 홀로서기를 부르짖고 더 나아가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들의 연대까지 노골적으로 등장시킨다. 껄끄러운 것은 앞서 언급한 ‘타문화에 관한 관심’과 마찬가지로 너무 형식적이어서 일말의 진심도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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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결국 상영시간 내내 부담스러울 정도로 현란하고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을 연이어 쏟아내는 현대 할리우드 대작의 전형이다. 다양한 의미 부여와 기대에 못미쳤던 전작들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추억팔이’ 공산품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신흥 영화 강국으로 떠오른 멕시코

알폰소 쿠아론, 기예르모 델 토로, 이냐리투 감독 (사진 왼쪽부터)

최근 멕시코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만들어내며 세계 영화시장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멕시코 출생 인물들, 히스패닉의 성취다. <버드맨>(2014),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2년 연속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그래비티>(2013)와 <로마>(2018)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2회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로 세계적인 연출가로 거듭난 이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으로 결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기예르모 델 토로 등은 규모와 매뉴얼에 입각해 공장에서 찍어내듯 쏟아지는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체면을 세우는 데 일조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같은 성과가 멕시코 자국 영화시장 안의 소비나 투자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할리우드를 비롯한 외국의 자본과 기술력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이번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 멕시코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일주일 앞서 개봉한 <람보: 라스트 워>에서 역시 주무대는 멕시코다. 아직 사회 전반에 팽배한 범죄와 불법의 불안한 분위기가 허구이나마 극적인 상황을 상상하기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차별화된 이국적 풍광과 분위기까지 확실히 확보할 수 있으니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토대와 분위기를 제공한 것은 결국 할리우드 내부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성취를 이뤄내고 있는 히스패닉의 꾸준한 활약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