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 불완전판매 은행, '예금 같은 상품'이라며 라임펀드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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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1.12. 오후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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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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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전업주부 이정은(가명·49)씨에게 지난해 10월 말은 잔인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기억은 그녀의 휴대폰 문자함에 고스란히 기록돼있다.

[A은행 **지점]
[*** 부지점장 올림]
라임펀드까지 투자상품에 대해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오늘 라임TOP-2밸런스6M 만기일로 만기자금 중 교보증권 펀드 투자분 약 40% 해당금액 오늘 11시경 고객님의 계좌로 입금될 예정입니다.(중략) 작성기준일 2019.10.24

[A은행 **지점]
[*** 부지점장 올림]
독일금리연계 관련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10월 31일 고객님이 가입하신 독일금리연계 평가일로 기초자산 만기일 2029년 2월 15일인 독일 국채 10년물 -0.442로 확정되어 최종 손실률 -46%로 확정되었습니다. 만기지급일 11월 05일 11시 이후 54% 해당 금액 입금 예정입니다.(중략) 작성기준일 2019.11.01
이정은(가명ㆍ49)씨가 우리은행 고양시 한 지점 부지점장으로부터 받은 문자 내용. 정용환 기자

고양시 한 A은행 부지점장이 이씨에게 보낸 문자다. 이씨는 부지점장 권유로 지난해 4월 1일 '라임Top-2밸런스6M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49호(이하 라임펀드)'에 2억2000만원 가입했다. 한 달도 채 안 된 4월 30일엔 'KB독일금리연계전문투자형사모증권투자신탁제5호(이하 DLF)'에 1억원 추가 가입했다. 이 돈은 이씨 남편의 퇴직금 전액으로, 이씨 부부에겐 노후 자금이자 전재산이었다.

'예금 같은 상품'이라며 팔았다

노후 자금을 어째서 이렇게 위험한 상품들에 넣었을까. 이씨는 "은행에 속아서 가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은행에서 원금손실이 절대 나지 않는 예금 같은 상품이라고 했다"며 "부지점장이 '수익률이 3%에 그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안전하겠느냐'면서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라임펀드는 안전하다', '독일이 망하지 않는 DLF는 안전하다'고 해 그 말을 믿었다"고 말했다.

은행이 상품 가입 뒤 달랑 통장 하나만 준 것도 이씨의 오해를 키웠다. 그는 "은행에서 10월 만기 때 원금과 이자를 무조건 돌려주겠다면서 통장 하나만 딱 주고 돌려보내길래 진짜 예금 같은 건 줄 알았다"며 "사태가 터진 다음에야 상품 설명서를 달라고 해 받아봤는데, 만약 가입하던 날 이걸 줬더라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악몽 같은 나날은 지난해 8월 은행 부지점장이 전화로 "DLF가 -30% 원금 손실 구간에 접어들었다"고 알려주면서부터 시작됐다. 부지점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DLF가 원금 전액 손실 구간에 들어왔다, 지금은 손절매도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이씨의 DLF는 지난해 10월 31일 최종수익률 -46%로 만기를 맞았다. 지금 이씨와 A은행은 투자 손실에 대한 불완전판매 배상비율을 정하고 있다.

"라임펀드는 담보 있어 안전하다"던 은행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해 10월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씨의 걱정은 애초 DLF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간 라임펀드에 있었다. 지난해 9월초 DLF 가입 서류와 상품 설명서를 받으러 은행을 찾아간 이씨는 부지점장에게 라임펀드 상태를 물었다. 부지점장은 "라임펀드는 실체 없는 금리에 연계한 DLF와 달리 명확한 담보물을 갖고 있어 안전하다"면서 그를 안심시켰다. A은행 본점 펀드 전문가 상담센터에서도 "라임펀드는 안전하니 걱정 말라. PB에 대해선 신뢰가 없을지 몰라도 나는 믿어도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0월 10일, 라임자산운용은 운용하던 일부 펀드의 환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씨가 가입한 라임펀드 역시 환매 중단 대상 펀드를 60% 담고 있었다. 그가 2억2000만원을 넣은 라임펀드는 지난해 10월 24일 투자금의 60%가 묶인 채 40%만 환매돼 8747만원으로 되돌아왔다. 나머지 60%가 언제 어떻게 환매될지는 A은행도 모른다.

이씨는 "지난 2일 은행에 갔을 때 부지점장은 내가 가입한 라임펀드에 대해 '폰지사기로 문제가 된 무역금융 펀드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 안심하셔도 된다'고 한 반면, 하루 뒤 만난 본점 태스크포스팀(TFT) 직원은 '무역금융이 문제면 이것도 문제 아니겠냐, 우리도 피해자다, 우리도 사기 당했다'고 해 서로 말이 다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여전히 무책임한 은행의 태도를 고치고 앞으로 비슷한 일로 인해 피해자가 생기는 걸 막으려면 이번 사태에 대한 은행과 임직원에 대한 강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은(가명ㆍ49)씨의 라임펀드 및 DLF 거래신청서(계약서). 정용환 기자
방배동서도 '안전하다'며 통장만 달랑 줬다

서울 방배동에 거주하는 김현숙(가명·59)씨도 A은행 방배동지점에서 지난해 4월 4일 라임펀드에, 이어 5월 28일 DLF에 각각 1억원씩 가입했다. 이 돈은 김씨가 전세 세입자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이다. 전세계약은 지난해 12월 만료 예정이었다. A은행 직원 권유로 이들 펀드에 가입하기 전까지 김씨는 예금 계좌에 그 돈을 보관하고 있었다.

김씨는 "은행 부지점장이 '나도 가입했다, 절대 안전하다'면서 통장을 잠시 옮겨두라고 재촉했다"며 "심지어는 집안 어른이 상을 당해 상가에 머무는 동안에도 전화와 문자를 해대길래 '전세보증금이라 안 된다'고 하니 '저만 믿고 가입하시라, 12월 전까지 무조건 안전하게 돌려드린다'고 해 결국 가입했다"고 말했다.

라임펀드나 DLF 가입 절차는 이름 적고 사인하는 게 전부였다. 투자자 위험 선호 평가 등은 모두 은행 직원 손을 통해 이뤄졌다. 투자 위험에 대한 설명도 부실했다. DLF의 경우 "영국이 망하지 않는 한 위험할 일 없다"는 식이었다.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12월 전에 무조건 만기를 맞춰주겠다고도 했다. 은행은 투자 계약서나 설명서도 주지 않았다. 김씨는 "계약서를 달라고 하니까 은행 보관용이라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통장 하나만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4000만원' 영수증 내밀며 "대출 받으시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피해자대책위원회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영국이 망하지 않는 한 위험할 일 없다'던 은행 설명과 달리 영국이 멀쩡한데도 DLF 수익률은 자꾸 떨어졌다. 김씨는 지난 8월 30일 DLF를 중도 환매했다. 수익률 걱정에 은행을 찾았더니 부지점장이 "지금이라도 환매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다. 1억원을 투자한 DLF는 6000만원이 돼 돌아왔다.

김씨는 환매 당시 황당한 일을 겪었다. 환매를 위해선 실물 통장이 필요했다. 당시 통장을 들고 오지 않는 그에게 부지점장이 새 통장을 발급해줬는데, 새 통장과 전 통장 속 기재 문구들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김씨는 "새로 발급받은 통장엔 '중도 환매수수료가 발생할 수 있다, 선취수수료가 얼마다' 이런 것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는데 이건 처음 받은 통장엔 안 적혀 있는 내용이었다"며 "어떻게 원래 통장하고 다를 수 있냐고 물으니 부지점장이 얼버무리더라"고 말했다.

황당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씨가 조만간 전세보증금을 마련해야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은행 직원이 중도 환매 영수증을 돌려주면서 동시에 대출 영업을 한 것이다.

김씨는 "9월 초 부지점장이 환매 영수증을 들고 내게 왔는데 옆에 대출 담당 차장이 같이 서 있더라"며 "내가 '당신은 왜 왔냐'고 하니까 그 차장이 자기 명함을 주면서 'DLF로 손실 보셨잖아요, 이제는 대출받으실 차례잖아요'라고 해 열불을 냈다"고 말했다.

"라임은 안심"이라더니 "라임 부도날 수도"

김씨는 라임펀드 때문에 속앓이하고 있다. 그는 "라임펀드 만기가 10월 11일이었는데 불안해하는 내게 은행 부지점장이 '걱정하지 마세요, 라임펀드는 DLF와 상품 자체가 달라 안심하셔도 돼요"라고 했다"며 "그런데 10월 10일 라임이 환매 중단을 선언하자 그제서야 '이게 문제가 생겨서 40%밖에 돌려받지 못한다'고 얘길 하더라"고 말했다.

최근 DLF 배상비율 조정 절차 때문에 A은행 직원들은 수차례 만난 김씨는 불안감이 더 커졌다. 그는 "은행 TFT 직원이 '라임자산운용이 부도가 나 다른 회사에 인수될 수도 있다'는 얘길 하더라"라며 "자기들이 피해자라고 자꾸 강조하는데, 내 입장에선 라임펀드와 DLF를 가입시킨 은행도 똑같은 사기꾼일 뿐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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