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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으로 소환된 또 한 명의 ‘오빠’ 김승진 “혜성아, 이제 함께 전국투어 해보자!” [직격인터뷰]

지난 7일 SBS 예능 ‘불타는 청춘’에 출연해 근황을 전한 가수 김승진. 사진 김승진 제공
“스잔~ 찬 바람이 부는데/ 스잔~ 땅거미가 지는데…”

2020년대에 밀어닥친 1980년, 1990년대 문화로의 향수병. 그로 인해 소환되는 ‘오빠’로는 양준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주 SBS 예능 ‘불타는 청춘’에 출연한 김승진도 당대를 휘어잡았던 이름 중 하나다. 1985년 당시 고2의 나이로 앳된 얼굴과 함께 등장한 김승진은 ‘스잔’이라는 노래로, 동갑내기로 “경아”를 박력있게 외쳤던 박혜성과 함께 아이돌급 팬덤을 양분했다.

하지만 빨리 얻었던 인기만큼 김승진의 인생에서는 어둠도 빨리 드리웠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음악에서 멀어졌던 다른 이들과 달리 그래도 김승진은 빠르게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음악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 결과가 지금의 ‘복고 열풍’이고 ‘불타는 청춘’의 출연이 아닌가 싶다. 그룹 잼의 리더 조진수와 함께 ‘불타는 청춘’에 등장해 다시 화제를 모은 김승진은 ‘스포츠경향’과의 통화에서 소감과 함께 유쾌한 바람을 남겼다.

- 5년 만에 ‘불타는 청춘’에 다시 출연했다.

“2015년 프로그램의 초창기에 한 번 출연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때는 사실 ‘불타는 청춘’이 함께 모여 게임을 하는 구성이라 이야기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되고 되게 편하고 자유로워졌더라.”

지난 7일 SBS 예능 ‘불타는 청춘’에 출연해 근황을 전한 가수 김승진. 사진 김승진 제공
- 방송 이후 반응은 어떠했나. 그리고 잼 조진수와의 인연은?

“주변에 연락이 없던 분들이 전화 오시고 힘을 주시더라. 조진수는 어렸을 때부터 친한 사이었다. 당시 잼이 무대에서 롤러스케이트도 타는 등 파격적인 콘셉트였는데 후배라서 녹화 끝나면 밥도 먹고 식사도 하고 했었다. 나이도 나보다 한 살(1969년생)이라 친하게 됐다. 이번에 함께 출연하는지는 여행지에 가서 알았다.”

-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2018년에 싱글 ‘나쁜 여자야’를 내고 활동했다. 방송에 안 나와 근황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만 지난해에도 음악작업을 하는 등 가수 활동을 계속 해왔다. 사실 주변에서는 ‘활동도 많지 않은데 음반을 왜 돈을 들여 만드냐’고 하는데 그래도 그게 제 할 일이고 직업이 아니겠나.”

- 발매 35년이 됐지만 아직도 ‘스잔’으로 유명하다.

“사실 그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2002년에 준비해서 미카엘 밴드라는 팀으로 록 음악을 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앳되고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김승진’이라는 이름도 일부러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노래는 많이 불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김승진하면 옛날 음악이 생각나지 않나. 그냥 음악으로 더욱 알려지길 바랐다.”

1980년대 후반 각각 ‘스잔’과 ‘경아’라는 노래로 아이돌급 팬덤을 양분했던 가수 김승진(왼쪽)과 박혜성.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경향DB
- 남진과 나훈아, H.O.T.와 젝스키스처럼 동갑내기 박혜성과 라이벌 관계였다.

“사실 지금도 라이벌이라는 생각은 딱히 안 했다. 아무래도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분들이 나이도 같고, 여성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부분도 있고 해 라이벌로 만들어주신 것 같다. 박혜성은 지금 광고음악 등을 만들면서 음악활동을 아직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락은 닿지 않고 있다. 내가 박혜성보다 2년 먼저 ‘스잔’을 내 혜성이가 내 덕을 좀 본 것으로 알고 있다.(웃음) 그래서 나이도 서로 50이 넘었으니 함께 전국투어 콘서트를 해보고 싶은 마음인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혜성이에게 좀 묻어가고 싶다. 혜성아, 함께 전국투어 콘서트 해보자!”

- 인기가 있었던 때도 있었지만 생활고를 겪을 만큼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고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음악이 있었기에 나를 놓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음악 때문에 사랑도 받고, 인기도 얻었지만 음악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1994년 집을 나와서 철모르던 시절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무서움을 많이 느꼈다. 결국 여러 사람에게도 상처를 받고 일본에도 갔지만 고생이 많았다. 2012년부터 마음과 관련한 약을 처방받고 있고 현재도 먹고 있다.”

- 그러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양준일의 사례가 큰 힘이 될 것 같은데.

“남의 일 같지 않다. 그 분도 미국에서 오래 살다와 한국에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처음의 마음을 지켜갔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지 않나 생각한다. 제게도 용기가 많이 되고, 음악을 애정을 갖고 하면 언젠가는 제 뜻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신다고 느꼈다.”

- 계획이 있다면.

“올해 1월1일부로 ‘딥블루’라는 회사와 전속계약을 맺었고, 밴드앨범과 솔로앨범의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 올해는 정말 소극장 등 라이브 무대를 통해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다. 진짜 무대에서 보여드리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이가 들면 이 음악도 못 할 것 같으니 열심히 해보려 한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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