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 배드파더스 활동가·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월 500만원씩 4년간 총 2억4000만원의 양육비를 주지 않은 아빠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형로펌의 변호사예요. 그런데 그 분 한 달 수입이 8000만원입니다. 3개월치 월급밖에 되질 않죠. 이혼 후 엄마는 경력단절로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보니 식당에서 서빙을 했어요. 딸의 생활 수준도 이혼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죠. 그런데 엄마가 배드파더스에 제보하겠다고 했더니 바로 미지급된 양육비를 주더군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이혼 전 배우자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활동을 하는 구본창(57)씨는 기억하는 악성 미지급 사례를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이같이 말했다. 구씨는 우리나라 양육비 지급률이 20%에 머무는 이유가 미지급에 따른 법적 불이익이 적고, 이에 대한 사회적 비난도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법적인 구제 방법이 없지는 않으나 실효성이 매우 낮고, 오랜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 양육자와 아동의 고통만 커진다고 구씨는 설명했다.

구씨는 양육비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행위가 단순히 ‘사적’ 구제에 그치지 않고 ‘공적’ 관심사로 거듭나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그는 온라인 웹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를 통해 도움을 받은 피해자들과 양육비 미지급 피해 부모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여론을 형성하고 입법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양육비 이행 제도 자체를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에서다.

시사저널e는 지난 2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사무실에서 구씨(이하 구)와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이하 이)를 만났다.

구본창 배드파더스 활동가. / 사진=권태현 PD
구본창 배드파더스 활동가. / 사진=권태현 PD

배드파더스는 어떤 사이트인가.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비양육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다. 2018년 7월 만들어졌다. 채무자의 사진과 이름, 생년, 학력, 직장 등을 공개한다. 여성단체들과 정부 기관인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근무하시던 분들이 우리나라의 양육비 지급 제도와 절차에 한계를 느끼고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신상 공개로 재판을 받게 됐는데.

양육비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현행법상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 허위가 아닌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진들은 이러한 형사적 처벌을 우려할 수밖에 없고, 피해자와 운영진을 중간에서 연결할 사람이 필요했다. 제가 소통 창구를 하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제보를 받고 제보 내용을 운영진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온라인에 제 신상만 공개돼 있다 보니,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례 있는가.

고용노동부는 근로자들에 임금을 주지 않는 악덕 사업주들의 신상을 공개한다. 사업주 개인적 명예보다 노동자의 생존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양육비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의 개인적 명예보다 아동의 생존권보다 더 중요하다. 입법을 통해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도 공개해야 한다.

불기소 처분된 사건도 있는데.

배드파더스 활동으로 피고소된 사건이 15건이다. 이 중 7건이 결론이 났는데 1건은 불기소, 6건은 병합돼 기소됐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불기소 처분된 사건과 기소된 사건의 내용이 똑같다는 것이다. 검찰의 잣대가 무엇인지 의아하다. 기소된 사건도 애당초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 된 건이다. 그런데 판사가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넘겼다. 재판부가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사실 양육비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도 한국에서 이슈가 된 적이 없다. OECD 국가 중에서도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간주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 하나 뿐이다.

공익성이 인정되면 비방할 목적이 부인된다는 판례가 있다. 신상 공개 활동이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것인가.

배드파더스가 오픈하고 나서 111명이 양육비 문제를 해결했다. 모두 현행법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분들이다. 배드파더스가 양육비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이트 운영진은 대가를 받은 적이 없다. 무료로 활동했다. 사이트 운영자들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성도 없는 제 삼자다. 미지급자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비방할 이유도 없다. 나아가 운영진들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현행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입법 촉구 활동도 하고 있다. 노력의 결과로 현재 국회에는 양육비 개선 관련법이 7개가 발의돼 있다. 배드파더스 활동이 공익과 관련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 사진=권태현 PD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 사진=권태현 PD

배드파더스는 채무자를 비방하려는 것보다 양육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내 문제가 당신의 문제이고, 당신의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움직인다. 또 현행제도에서 잘못된 부분을 보안하고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육비 이행확보를 위한 실효적인 법안을 만들어달라는 입법 촉구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도 양육비 이행확보를 위한 제도들이 있다. 실효성이 없었나.

물론 양육비 지급명령, 담보제공명령, 이행명령, 과태료, 감치 등 제재 조치가 있다. 그러나 수년에 걸쳐 그 절차를 진행하면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법과 제도는 있지만 채무자가 이를 피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재산 명의를 변경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방법 등이다. 또 가장 무거운 제재가 감치인데, 실효성이 없다. 실제로는 집행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 이사를 가버린다든지, 실 거주지와 우편 주소가 다를 경우 송달지연으로 집행이 안 된다. 채무자가 건강상 이유로 병원에 입원하면 감치도 불가능하다.

해외 사례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양육비를 단순한 민사채권으로 보지만, 해외는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 즉 범죄로 본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은 징역형으로 처벌한다. 부모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국가에게 부담이 되고, 결국 복지국가의 공공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양육비를 안주면 신상공개, 운전면허 취소, 여권 제한, 형사처벌 등의 제재조치도 강하고 다양하다. 양육비이행관리 기관의 권한도 막강하다.

대(代)지급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데.

국가가 채권자에게 양육비를 선지급하고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대지급 제도를 OECD 많은 국가들이 도입하고 있다. 대지급 제도가 운용되면 아동의 빈곤은 즉각적으로 예방된다. 또 지속적으로 양육비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예산이 가장 큰 골칫거리다. 양육비는 개인 간의 문제인데 왜 세금이 투입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배드파더스와 양육비해결총연합회는 미지급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입법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대지급 제도 도입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양육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아이는 양육비를 받고 건강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양육비는 안줘도 그만인 비용인 것처럼 생각하는 인식이 팽배하다. 또 양육비는 매달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지급돼야 하는데, 장기간 발생하는 비용이다 보니 채무자의 자발적인 이행을 바라기가 힘들다. 문제는 책임을 회피하는 부모들에게 죄책감이 없다는 것이다. 채무자가 큰소리를 치고 채권자가 부탁해야 하는 불합리한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또 이러한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강력한 제재가 양육비 지급에 대한 부당한 인식을 바꾸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재판부와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신상공개로 기소됐고, 국민참여재판을 받게 됐다. 아동의 생존권과 양육비를 주지 않은 무책한 부모의 개인적 명예 중 어떤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인지 판단하는 재판이 될 것이다. 저는 당연히 아동의 생존권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판부와 배심원들도 같은 판단을 내려 줄 것이라고 믿는다.

/ 사진=권태현 PD
/ 사진=권태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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