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게임산업이 PC중심으로 돌아갈 때 한국 게임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패키지게임의 대명사로 군림하던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1·2, 서풍의광시곡 등을 해외에 수출했고 라그나로크, 미르의 전설 등 초창기 온라인게임은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대박을 쳤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전세계 게임업계에 막강한 입김을 발휘하던 한국은 콘솔과 모바일로 게임산업이 재편되면서 급격하게 동력을 잃었다. 최근에는 한참 아래에 있다고 여기던 중국으로부터 게임을 수입하거나 오래된 IP(지적재산권)를 활용해 게임 생명을 ‘강제로’ 연장하는 상황까지 펼쳐진다.

국산 게임이 경쟁력을 잃어 안방마저 해외 게임에 빼앗긴 형국이지만 최근 들어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 국산게임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과거처럼 아시아권이 아닌 북미와 유럽시장에서 성공한 게임들이 눈길을 끈다.

검은사막. /사진제공=카카오게임즈
검은사막. /사진제공=카카오게임즈

◆1주일에 30만장 ‘검은사막’

‘게임 신한류’의 선두는 펄어비스가 제작하고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싱을 맡은 대작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검은사막’이다. 이 게임은 지난해 3월 북미·유럽에 진출해 유료가입자 수 100만명, 최고 동시접속자 수 10만명을 기록하며 인기게임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1년 후인 5월에는 세계최대 게임플랫폼서비스인 ‘스팀’을 통해 출시돼 1주일 만에 3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연착륙에 성공했다.

검은사막은 철저한 사전준비와 현지화로 성공을 거뒀다. 게임 내 배경지역에 따라 캐릭터들의 발음을 다르게 한 것이 백미다. 게임 배경이 사막지역인 경우 영어 발음을 중동식으로 설정했고 영국식 발음과 미국식 발음을 혼용해 영어권 사용자들의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카카오게임즈 관계자는 “안정적인 운영을 기반으로 현지 시장트렌드를 분석한 결과”라며 “빠른 콘텐츠 업데이트로 현지 이용자들의 신뢰를 얻은 것이 주효했다”고 평했다.

배틀그라운드. /사진제공=블루홀
배틀그라운드. /사진제공=블루홀

◆배틀로얄 갓겜 ‘배틀그라운드’

최근 해외 게이머들 사이의 ‘갓겜’(뛰어난 재미를 지닌 가치 높은 게임)은 ‘플레이어언노운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다. MMORPG ‘테라’로 잘 알려진 게임개발사 블루홀의 작품이다.
이 게임은 ‘배틀로얄’이라는 방식의 서바이벌게임으로 그간 이 장르는 마니아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럼에도 배틀그라운드는 스팀플랫폼을 통해 유료 테스트버전인 ‘얼리액세스’ 를 출시한 지 100일 만에 매출 1억달러(약 1143억원)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매출은 5% 전후로 총 매출의 95%가 해외에서 발생하는 명실상부 글로벌게임이다.

배틀그라운드는 섬에서 살아남아 최후의 1인이 되는 것이 목적인 생존게임이다. 과거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배틀로얄>과 같은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어떤 제약도 없다 보니 게임이 단순하면서도 자극적이다. 이는 세계 최대의 게임시장인 북미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현재까지 스팀의 누적 판매량은 400만장을 돌파했다. 동시접속자는 최대 23만여명이며 하루에 펼쳐지는 생존게임은 약 10만회에 이른다. 목적이 뚜렷하고 승패의 구분이 명확해 e스포츠로의 발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는 평을 받는다. 이미 이 게임의 중계 영상은 35만명이 시청할 정도로 인기를 끈다. 블루홀은 연내에 정식버전을 내놓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기 엑스박스(Xbox)를 통해 콘솔게임시장 진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서머너즈 워. /사진제공=컴투스
서머너즈 워. /사진제공=컴투스

◆모바일 1조원 ‘서머너즈 워’

모바일시장에서도 종종 국산 게임의 낭보가 들린다. 모바일 해외개척 선두는 3년째 순항을 이어가는 컴투스의 RPG(역할수행게임) ‘서머너즈 워’다. 지난 10일 ‘서머너즈 워:천공의 아레나’의 글로벌 다운로드가 8000만건을 돌파했다. 한국 모바일게임 최초로 매출 1조원 달성, 56개국 애플 앱스토어와 12개국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매출 1위라는 믿기 어려운 기록도 달성했다.


업계가 보는 서머너즈 워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뛰어난 게임성이다. 현재 국내 모바일게임은 ‘자동사냥’과 과금을 피할 수 없는 게임구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출시된 게임이 잘된다는 소문이 돌면 곧 ‘미투게임’이 시장을 도배한다. 게임을 게임으로 보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본다.
서머너즈 워는 이를 모두 배제하고 온전히 게임에 집중, 현재의 성과를 얻었다. 개발자와 경영진이 각자의 자리에서 오로지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부린 ‘고집’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글로벌게임 첫 단추 현지화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게임들은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아무리 훌륭한 전자제품이어도 해당 국가와 전압이 달라 사용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듯 게임도 문화와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세계 각국의 문화가 다르듯 선호하는 게임도 다르다”며 “미국의 경우 순간 몰입도가 높고 자극적이면서 현실성있는 게임이 인기다. 반면 일본은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라인이 훌륭한 게임이 인기다. 전세계적으로 일본은 독특한 시장으로 분류되는데 많은 나라에서 인기있는 FPS(일인칭슈팅게임)가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계적인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우선 각국의 게이머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7호(2017년 7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