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사회생활, 그때 그 최악의 상사

조회수 2020. 1. 8.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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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떠올려봐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나의 첫 사회생활에서 만난 그 상사에 대한 기억.

대학을 졸업하고 첫걸음을 뗀 낯선 사회생활 1년 차에는 그 불합리한 일들이 겪어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 했을 지 몰라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더더욱 만나서는 안 됐을 최악의 직장 상사들을 소개해요.

“실장님은 사무실에 화초를 키웠는데 그 화초가 시드는 날은 저의 회사 생활의 미래도 불투명한 상태였어요. 막내들끼리는 꽃집 가서 영양제를 사다가 화분에 꽂아두고 노심초사 그 화분이 시들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 큰 업무 중에 하나였죠. 이건 그래도 하기 쉬운 편에 속해요. 실장님이 오시기 전에 미리 와서 책상을 닦고 컴퓨터 모니터를 켜 놓고, 심지어 뷔페에서는 음식까지 떠다 드려야 했죠. 게다가 아침에 택시 타고 출근하실 때 현금이 없다며 사무실로 전화해서 2~3천 원을 들고 내려오라고 하시며 팀원들이 그 돈을 대신 내줬을 때 갚는 법이 없는 분이셨죠. 더 참기 힘들었던 건 당시에 주 6일 근무제였는데 토요일 업무가 끝나고 나서 꼭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던 그 실장님,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에요.” 11년차 디자이너


“첫 회사 첫 출근 두 시간 만에 거래처에 소리를 지르던 사장님이 기억나네요. 무언가 굉장히 화가 나신 것 같았는데 아니었죠. 그 고함소리는 다음날도 듣고 그 다음날에도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내내 듣을 수 있는 소리였어요. 거래처며 직원이든 누구라도 그 고함 소리를 듣는 것이 일상인 회사였고 그 소리에 따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다녀야 하는 곳이었어요. 50대의 어르신에게도 그렇게 고함치는 것을 보며 출근 3일 만에 여기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만두는 건 또 쉽지 않았어요. 대신 저는 그곳에서 데시벨이 높아질 때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듣는 나만의 세계에 빠지는 방법을 선택했고 무려 2년이나 버틸 수 있었죠. ‘4차원 보통내기가 아닌 막내’라는 소리는 들어야 했지만요.” 7년차 VMD


“아주 작은 회사에 첫 취직을 했었죠. 업무 구분에 대한 개념도 없고 그냥 맡겨진 일은 다 했고 쓰러진다 해도 맡은 일은 해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제작 파트였던 제게 영업까지 시켰던 그 회사에서 저는 유노윤호를 능가하는 열정 만수르 시절일 때라 일을 배우는 게 재밌었고 내 물건과 시간을 들여서 결과물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게 기쁘기만 했었죠. 지금 그렇게 일한다면? 반년도 못 버티고 그만뒀을 것 같아요. 그 당시 회사 대표의 나이가 지금 제 나이보다도 어렸는데, 적은 돈으로 교육과 경험의 기회라는 명목으로 사람을 심하게 부린 것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네요. 교육은 학교에서 받고 일은 정당한 대가를 받고 해야 하는 것인데 말이에요.” 13년차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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