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PG) /사진 = 연합뉴스
양육비 (PG) /사진 = 연합뉴스

배우자와 이혼한 뒤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행위는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창열)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모(57)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구 씨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는 부모들에 대한 이름과 얼굴 사진, 나이, 주소, 직업 및 미지급 양육비 액수 등의 정보를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에 제공해 신상정보가 공개되도록 함으로써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2018년 9월부터 10월까지 배드파더스에 신상정보가 공개된 부모 5명(남성 3명, 여성 2명)의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에 착수, 지난해 5월 구 씨를 벌금 5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일반적인 명예훼손 사건과 성격이 다르다고 판단한 법원이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공인이 아닌 피해자 개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은 공적 관심 사안으로 볼 수 없으며, 이들에게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개인정보를 공개해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반면 구 씨 측은 "양육비는 단순한 금전적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람의 명예보다 아동의 생존을 우선한 것이 처벌을 받을 일일지 따져야 한다"고 맞섰고, 재판부는 구 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활동을 하면서 대가를 받는 등 이익을 취한 적이 없고, 대상자를 비하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한 사정이 없다"며 "피고인의 활동은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다수의 양육자가 고통받는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향후 유사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육비 지급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과 맞물려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면서도 "그러나 임금을 체불한 업주의 개인 신상 공개 또는 지극히 개인적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등 사회적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수원지법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관련법상 공익적 목적과 대가성이 없었다는 것 외에도 비방할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죄가 선고된 사례"라며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공공재적 신고 또는 계도의 목적이 아닌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개인정보를 공개한다면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므로 이 사건과 달리 처벌받게 된다"고 말했다.
전승표 기자 sp4356@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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