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전주에 사는 5학년입니다
학교에서 조사하는게 있는데 우리는 축구선수호날두를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호날두일대기좀 알려주세요!!!!!!!!!!
최대한빨리 부탁합니다.
예)
2000- 어디에서태어남
2020-초중고졸업
2022-어디팀으로 데뷔
이런식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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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두스 산투스 아베이루(포르투갈어: Cristiano Ronaldo dos Santos Aveiro, 1985년 2월 5일, 포르투갈 마데이라 제도 푼샬 ~ )는 포르투갈 출신의 축구 선수로 흔히 이름을 줄린 명칭인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로 불린다. 현재는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CF 소속이자 포르투갈의 주장이다. 현재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하며 발생한 이적료 8,000만 파운드 (유로 : 약 9,400만 한화 : 약 1,500억)로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로 기록되어 있으며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계약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1]
호나우두는 축구 경력의 시작은 안도리나의 유스 선수로서 시작되었는데 2년 동안 안도리나 소속으로 뛰다가 나시오날로 이적하였다. 1997년에는 포르투갈의 큰 클럽 중 하나인 스포르팅 리스본으로 이적하였고 2003년, 18살이었던 호나우두는 이른 천부적인 재능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에 눈에 들어 1240만 파운드에 이적하였고[2] 이듬해, FA 컵 우승과 포르투갈 소속으로 UEFA 유로 2004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며 국가대표 선수로서 데뷔 후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2008년에는 맨유 소속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였으며 이어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와 FIFPro 올해의 선수상, FIFA 올해의 선수에 지명되었고 또한 발롱도르에서도 수상하여 보비 찰턴이후 40년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다.[3]
특기는 스피드와 위치선정, 발재간, 헤딩, 제공권, 득점력이 매우 뛰어나다.
초기 생애 [편집]
호나우두는 1985년 2월 5일 마데이라 제도 푼샬에 위치한 산토 안토니오에서 요리사였던 마리아 돌로레스 두스 산투스 아베이루와 정원사였던 호세 디니스 아베이루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 과자를 많이 못먹어 군것질을 좋아한다고 한다.
클럽 경력 [편집]
유스 시절 [편집]
8살 때, 호나우두는 아버지가 킷 맨으로 일하기도 하였던 아마추어 팀인 안도리나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1995년, 호나우두는 지역 클럽인 나시오날에 입단하였고 결승전에서 우승을 거둔 뒤, 포르투갈 본토에 위치한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3일간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이후 이적 세부사항 비공개로 스포르팅으로 이적하였다.[4]
스포르팅 리스본 [편집]
호나우두는 알쿠셋(포르투갈어: Alcochete)에 위치한 스포르팅의 아카데미에서 다른 유스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였다. 곧바로 스포르팅의 U-16, U-17, U-18, 2군을 거쳐 1군 명단에 포함되었고 한 시즌 안에 모든 명단에 포함된 유일한 선수로 기록되었다.[5] 이어 모레이렌스 FC를 상대로 한 데뷔전에서 2골을 기록하였고 또한 UEFA 17세 이하 챔피언십에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출전하였다.[6]
호나우두가 15살일 때,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을 받았고 강제로 축구를 그만 둘 위기에 처하였으나 스포르팅 스탭진들은 꾸준히 상태를 점검하였고, 호나우두의 어머니를 설득 해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후 레이저 수술을 통해 문제가 있는 부위를 수술하였고 퇴원 후 몇 일 뒤 다시 훈련에 복귀하였다.[7]
16살 때 그는 첫 번째로 해외 클럽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데, 바로 리버풀의 전 감독인 제라르 울리에의 영입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리버풀은 호나우두가 아직 어리고 1군으로 뛰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단 이유로 거절하였다.[8] 하지만 2003년, 곧바로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의 이목을 끌었다. 2003년 여름, 스포르팅 리스본의 홈 경기장인 이스타디우 조제 알발라드에서 맨유가 3-1 패배한 경기에서 맨유 선수들을 상대로 한 호나우두의 활약에 감명받은 퍼거슨은 곧바로 호나우두와 계약하였다.[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편집]
2003–2005 [편집]
2003년, 1240만 파운드로 이적한 호나우두는 첫 번째 포르투갈 출신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가 되었다.[10] 그는 7번을 달고 잘 뛰어야한다는 압박이 싫어 원래 스포르팅에서 달고 뛰었던 28번을 원하였으나 결국 조지 베스트, 브라이언 롭슨, 에리크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등이 달고 뛰었던 7번을 배정받았다.[11]
호나우두는 홈에서 볼턴 원더러스를 상대로 4-0으로 이긴 경기에서 60분에 교체 투입되어 데뷔전을 가졌다. 2003년 11월 1일에는 포츠머스를 상대로 프리 킥 골을 득점하였고 팀은 3-0으로 승리하였다. 또한 2005년 10월 29일, 미들즈브러에게 4-1로 진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프리미어리그 1000번째 골을 득점하였다. 호나우두는 모든 대회에서 10골 이상씩 기록하였고 팬들의 투표에 2005년 FIFPro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을 수상하였다.
2006–2007 [편집]
2006년 11월과 12월, 호나우두는 1996년 로비 파울러, 1997년 데니스 베르흐캄프에 이어서 3번째로 프리미어리그 이 달의 선수를 2달 연속으로 수상하였다.[12][13] 2007년 5월 5일엔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50번째 골을 득점하였고 호나우두의 득점으로 1위에 오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우승하였다. 그리고 연말에는 개인 두 번째로 FIFPro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선정되었다.
2007년 3월, 레알 마드리드가 맨유에게 호나우두의 몸값으로 8000만 파운드를 제시하여 데려올 것이라는 루머가 퍼졌으나[14] 4월 13일, 호나우두는 맨유와 주급 12만 파운드 (총 310만 파운드)에 5년 재계약으로 맨유 역사상 가장 최고 대우로 계약을 맺었다.[15][16]
이 시즌에 호나우두는 모든 개인 수상의 주인공이 되는데, 앤디 그레이 (1977년)에 이어 PFA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동시 선정되었다.[17] 4월에는 PFA 팬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도 뽑혀 개인상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또한 호나우두는 2006-07 시즌 PFA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베스트 11에 8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2007–2008 [편집]
호나우두는 2007-2008 시즌 2라운드 경기인 포츠머스 전에서 상대 선수인 리차드 휴즈를 머리로 들이받아 퇴장당하였고 이후 3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18] 호나우두는 사건 이후 “많은 것을 배웠다”며 앞으로 화를 자제할 것이라고 밝혔다.[19] 이후 챔피언스리그에서 스포르팅과의 원정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홈경기에서도 1-1 동점 상황에서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득점하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조 선두로 올리며 진출하는 데 공헌하였다.[20]
2007년 발롱도르에서 카카에 이어 2위에 선정되었으며,[21] 그리고 FIFA 올해의 선수에선 카카와 리오넬 메시에 이어 3위에 선정되었다.[22]
2008년 1월 12일, 호나우두는 자신의 첫 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하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호나우두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6-0으로 승리하였고, 맨유는 리그 선두로 올라섰다.[23] 호나우두는 이어 레딩을 상대로 자신이 2006-07에 득점하였던 통산 득점과 같은 수치인 시즌 23번째 골을 득점하였다.[24] 2월 20일, 리옹과 1-1로 비긴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한 리옹의 팬이 팀 동료인 나니와 호나우두에게 경기 중 초록색 레이저를 몇 차례 쏘았고 이후 UEFA가 수사에 나섰다.[25] 한 달후, 리옹은 5,000 프랑 (2,427 파운드)의 벌금을 물었다.[26]
2008년 3월 19일, 호나우두는 처음으로 볼턴과의 리그 홈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를 소화하였고, 두 골을 득점하여 팀에 승리를 안겼다.[27] 호나우두는 공격수로써 볼턴 전에서 두 번째 골을 득점함으로써 개인 통산 33골을 기록하게 되었다. 3월 29일, 호나우두는 애스턴 빌라 전에서 1골 3어시스트를 기록해 팀이 4-0으로 승리하는 데 기여하였다. 37번의 국내 대회 및 유럽 대회에 선발 또는 교체 멤버로 투입된 호나우두는 이로 인해 시즌 통산 35골을 기록하였다. 잇따른 폭발적인 득점에 호나우두는 마요르카의 스트라이커 다니엘 귀사를 제치고 2007-08 유럽 골든 슈를 수상하였다.[28]
5월 21일, 리그 라이벌 첼시와의 2007–08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맨유는 전반 26분에 호나우두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전반 종료 직전 첼시의 프랭크 램퍼드에게 동점골을 허용하여 1-1로 비긴채 전후반을 모두 마치고 연장전에 돌입하였는데, 연장전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승부차기에서 호나우두는 팀의 세 번째 키커로 나왔지만 실축을 하였고 스코어 4-4의 상황에서 첼시의 주장 존 테리가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섰다. 성공만 하면 첼시가 우승컵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비가 많이 온 그라운드 탓에 존 테리는 공을 차기 직전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밖으로 실축하고 말았다. 이후 계속된 승부차기에서 첼시의 마지막 키커 니콜라스 아넬카가 찬 볼이 에드빈 판 데르 사르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면서 최종 스코어 6-5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우승컵을 차지하였고, 호나우두는 UEFA 팬들이 선정한 경기 MVP에 선정되었다.[29]
이 시즌은 호나우두의 진가가 완전히 폭발한 시즌이 되었다. 그는 시즌 일정이 끝날 때까지 모든 대회에서 총 42골을 득점하였는데, 이 수치는 맨유 소속으로 한 시즌에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던 데니스 로가 1963-64 시즌에 기록한 46골에 단 4골 못미치는 성적이다. 이러한 그의 활약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 또한 호나우두의 기량이 맨유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한명인 조지 베스트와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극찬하였다.[30]
2008–2009 [편집]
2008년 6월 5일, 스카이 스포츠는 호나우두가 레알 마드리드 행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만약 맨유에게 같은 금액을 제시할 경우 이적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보도하였다.[31] 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6월 9일, 레알 마드리드가 호나우두에 대한 불법적으로 접촉하였다고 FIFA에 제소하였으나, FIFA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32][33][34][35] 이적에 관련된 논란은 8월 6일까지 계속되었으나 호나우두는 남은 계약 기간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잔류하겠다고 밝혔다.[36][37]
7월 7일, 호나우두는 아카데미 메디컬 센터에서 무릎 수술을 받았다.[38] 이후 9월 17일, 비야레알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였던 박지성을 대신 해 교체 투입되며 복귀하였으나 팀은 득점없이 비겼다.[39] 9월 24일, 미들즈브러와의 리그 컵 경기에선 올 시즌 첫 번째 골을 기록하였고 3-1로 승리하였다.
2008년 11월 15일엔 스토크 시티를 5-0으로 대파한 경기에서 호나우두는 맨유 소속으로 통산 100번째, 101번째 골을 기록하였는데 두 골 모두 프리 킥으로 득점하였다.[40][41] 또한 스토크 시티 전에서의 득점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있는 맨유를 제외한 모든 팀을 상대로 득점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11월 2일, 호나우두는 1968년 수상한 조지 베스트에 이어 40년 만에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첫 맨유 선수가 되었다. 차점자인 리오넬 메시보다 165점 앞선 446점으로 선정되었다.[3][42] 앞서 발롱도르를 3회 수상한 요한 크라위프는 “호나우두는 조지 베스트와 데니스 로보다 뛰어나며, 맨유 역사상 훌륭한 선수”라고 밝혔다.[43] 또한 12월 19일, 맨유가 우승한 2008년 FIFA 클럽 월드컵에서 2골을 기록해 실버 볼을 수상하였다.[44]
2009년 1월 8일, 호나우두는 맨체스터 공항과 인접한 A538 터널 안에서 교통 사고가 났고 자신이 타고 있던 페라리 599 GTB 피오라노가 파손되었으나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이후 경찰에게 음주 측정을 받은 결과 음성 반응을 보였고, 당일 늦게 훈련에 참가하였다.[45][46] 4일 후, 프리미어리그 소속 선수로는 최초로 FI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또한 포르투갈 선수로서는 2001년에 선정된 루이스 피구 다음으로 선정되었다.[47]
호나우두는 지난 시즌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첼시 전 이후, 인터 밀란과의 경기에서 2번째 골을 득점해 팀을 2-0 승리를 안기며 8강 전에 진출하였다.[48] 또한 포르투와의 8강 2차전 경기에서 40m 장거리 골을 득점하며 팀이 4강 전에 진출하는 데 공헌하였다. 경기 후 호나우두는 자신이 넣은 골 중에서 가장 최고의 골이었다고 밝혔다.[49][50] 호나우두는 연이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하였으나 다소 약간의 활약도 제대로 못보인 채 바르셀로나에게 2-0 패배하였다. 호나우두는 모든 대회를 합쳐 지난 시즌보다 4경기 이상 더 출전한 53 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득점 기록은 자신의 기록 중 최다 득점 기록인 42골에 16골 못미치는 26골을 기록하였다.
시즌 종료 후, 레알 마드리드의 끊임없는 구애에 호나우두는 팀을 떠나고 싶다고 밝혔고,[51] 결국 6월 1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프로축구 역사상 최고액 이적료인 8000만 파운드의 금액을 받고 호나우두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맨유 구단주인 글레이저 가문에서는, 퍼거슨의 결정에 따라 호나우두의 이적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52][53] 이후 호나우두가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을 완료한 후, 퍼거슨에 대하여 “그는 내 축구 인생에 있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며, 가장 중요한 분이자 내 경력에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다”라고 밝히며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줌에 감사한 마음을 밝혔다.[54][55]
레알 마드리드 [편집]
2009-2010 [편집]
2009년 6월 26일, 레알 마드리드는 7월 1일에 호나우두의 입단을 확정지으며, 6년 계약을 맺었다고 공식 발표하였다.[56] 계약 조건에는 매 시즌 1300만 유로의 급료와 10억 유로의 바이아웃 조항이 포함되었음을 알렸다.[57][58] 이어 7월 6일, 전 세계 언론들이 참석한 가운데 입단식을 치를 것이며,[59] 팀 내 번호 9번을 배정받았다.[60] 이후 입단식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에게 유니폼을 받으며,[61]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8만 명의 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입단식이 이루어졌다. 이는 1984년 디에고 마라도나가 바르셀로나에서 나폴리로 이적하였을 때 이탈리아에 모인 7만 5천명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입단식으로 기록되었다.[62]
이후 호나우두는 7월 21일 샴록 로버스와의 1-0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첫 출전하였다. 1주 후, 리가 데 키토와의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득점 해 데뷔 골을 기록하였고 팀은 4-2로 승리하였다.[63] 8월 29일, 홈에서 열린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의 경기에서 2번째 골인 페널티 골을 기록 해 라 리가 데뷔 골을 득점하였고 팀은 3-2로 승리하였다.[64] 9월 15일, FC 취리히를 5-2로 승리한 경기에서 프리 킥 득점에 성공하며 마드리드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 첫 골을 기록하였다.[65][66] 이어 호나우두는 비야레알 전에서도 득점하였는데, 이는 이적 후 라 리가 첫 시즌에 4경기 연속 득점한 레알 마드리드 내 최초의 선수로 기록되었다. [67]
10월 10일, 포르투갈 대표팀에 소집된 호나우두는 헝가리 전에 출전하다 마르세유 전에서 당한 발목 부상이 재발하였다.[68] 곧바로 레알 마드리드는 대표팀 차출을 거부하였고[69] 부상의 여파로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조별 경기에 결장하며 레알 마드리드는 패배하였다. 11월 29일, 부상에서 회복 후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더비에 출전하였으나 팀은 1-0 패배를 당하였다. 12월 6일, 팀이 4-2로 역전승한 알메리아 전에 출전하여 어시스트와 페널티 킥을 유도하였으나 실축하였다. 이후 득점에 성공하였으나 세레모니 때, 상의를 벗어 경고를 받았고 경기 종료 3분 전엔 불필요한 정강이 가격으로 퇴장을 당하였다.[70][71] 2010년 1월 24일, 홈에서 열린 말라가와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였으나 70분 경 돌파 도중 음틸리가의 안면을 가격 해 시즌 2번째 퇴장을 당하였다.[72] 이후 2경기 출장 정지와 600 유로의 벌금을 선고받았고[73] 레알은 이에 이의제기하였으나 기각되었다.[74]
2010년 2월 20일, 호나우두가 태어난 마데이라 지방에서 폭우로 인한 홍수피해로 38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이후 2월 22일, 비야레알 전에서 1골 3도움을 기록하였고 팀은 6-2로 대승하였다. 자신이 기록한 프리킥 1골 땐, 마데이라 홍수 피해 사망자들 기리며 유니폼 안에 ‘MADEIRA’라고 쓴 속옷을 보이는 세레모니로 추모하였다. 또한 비야레알 전에서 놀라운 활약으로 이 주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1]
2010-2011 [편집]
2010년 여름 팀의 상징적인 존재이던 라울 곤잘레스가 이적하자 평소 자신이 선호하던 등번호 7번으로 변경후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0년 10월 23일 라싱 산탄데르와의 경기에서 홀로 4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이 기록은 자신의 프로통산 한 경기 최다골이였다. 이날 경기를 시작으로 리그 3경기, 챔피언스리그 1경기, 국가대표팀에서 2경기를 포함한 6경기 연속으로 종합 11골을 기록하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후 캄프 누에서 열린 엘 클라시코 더비에서 5-0 대패를 당하기 전까지,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리그 경기에선 자신의 시즌 2번재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2010년의 마지막 경기인 레반테 UD와의 코파 델 레이 컵 대회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였고 팀은 8-0으로 승리하며 기분 좋게 2010년을 마감하였다.
호나우두는 수많은 골 기록들을 갱신후 2011년을 시작하였다. 2011년 1월 9일 4-2로 이긴 비야레알 CF과의 리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포함, 부상에서 복귀후 첫골을 넣은 카카의 골을 어시스트하였다. 이 같은 상승세로 리그 22골로 득점 선두에 올라선 호나우두는 리오넬 메시와의 피치치 경쟁에서도 앞서며, 휴고 산체스가 세웠던 한시즌 리그 최다골인 38골 기록을 깨는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이후 호나우두는 한달동안 2골밖에 기록하지 못하며 골 가뭄을 겪었고,(휴고 산체스의 기록을 넘어서길 바랬던 호나우두에겐 2골이 턱없이 부족한 기록이였다) 부상으로 열흘을 벤치에서 보내게되었다. 하지만 말라가 CF와의 경기를 통해 복귀하였고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부상에서 완전히 털었음을 알렸다.
호나우두는 2010-2011시즌 총 54경기 53골 15어시스트로 프리메라리가 득점왕과 골든부츠를 수상하였다.
2011-2012 [편집]
호나우두는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 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자신의 축구화 3켤레를 도난당했다. 이 외에도 카림 벤제마와 메수트 외질도 축구화를 도난당했으며 이 세 사람이 도난당한 축구화는 총 6켤레였다. 결국 호나우두는 새로 지급받은, 단 한번도 신지 않아서 자신의 발에 길들이지조차 못한 새 축구화를 신고 경기에 출장하였고,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 CF는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원정에서 1-2로 패배하였다.[75]
2012-2013 [편집]
호나우두는 한창 이적설이 불거지던 중 레알로부터 2년 재계약과 기존 연봉 1,000만유로(약 143억 원)보다 50% 인상된 금액인 1,500만 유로 (약 215억 원)의 인상된 연봉을 제의받았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도르트문트한테 제 기량을 못내며 총 스코어 4-3으로 지고 말았다.(1차전 전반에만 헤딩골 넣는 활약에 그침.)[76]
국가대표 경력 [편집]
호나우두는 2003년 8월 20일, 카자흐스탄 전에서 국가대표로 처음 발탁되었다.[77] 이어 모국에서 열린 유로 2004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고,[78] 그리스에게 2-1로 패배한 조별 예선 경기에서 첫 국가대표 골을 기록하였다.[79] 이어 네덜란드와의 4강 전 경기에서 1골을 기록 해 팀이 2-1로 승리하는 데에 기여하였다.[80] 대회에서 결정적인 두 골을 기록한 호나우두는 이후 UEFA가 선정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81] 같은 해, 아테네 올림픽 명단에도 포함되어 참가하였다.[82][83]
2006년 월드컵 [편집]
호나우두는 2006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7골을 기록해 득점 2위에 올랐고,[81] 월드컵 본선에서 이란을 상대로 페널티 킥을 득점하여 첫 월드컵 골을 기록하였다.하지만 이 페널트킥골이 끝이였다.[84]
2006년 7월 1일, 잉글랜드와의 8강전 중, 호나우두는 같은 클럽 팀 동료인 웨인 루니가 히카르두 카르발류를 밟아 퇴장당할 때, 잉글랜드 언론들은 호나우두가 옆에서 강하게 주장하였으며 심판이었던 오라시오 엘리손도가 퇴장 명령을 내릴 때 영향을 주었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루니가 퇴장 후 카메라에 포르투갈 벤치를 향해 윙크를 날리는 모습이 잡혀 논란이 되었다. 경기 이후, 호나우두는 루니는 친구이기에 루니 퇴장에 대해 심판에게 얘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85] 7월 4일, 엘리손도는 루니의 퇴장은 루니의 지나친 반칙 때문에 퇴장당한 것이며 결코 루니와 호나우두가 싸워서 퇴장당한 게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86][87]
영국 언론의 분노섞인 반응에 호나우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려고 생각하였으며,[88] 스페인 언론인 마르카에 의하면 호나우두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길 원하다고 알려졌다.[89] 추측에 대해 퍼거슨은 포르투갈 출신인 카를로스 퀘이로즈 수석코치를 통해 호나우두의 마음을 바꾸려고 하였고 이후 루니 또한 호나우두가 떠나선 안된다고 밝혔다.[90][91] 이후 호나우두는 잔류하였고 2007년 4월, 5년 재계약의 서명하였다.[92]
이후 호나우두는 프랑스와의 4강 전에서 패배하면서 야유를 들으며,[93] 성난 잉글랜드 팬들 때문에 이메일로 투표하던 대회 베스트 영플레이어 상을 놓쳤다.[94] 온라인 투표 과정을 통해 후보로 오른 호나우두는 팬들의 최다 득표를 받았으나 대회 중 논란으로 인해 FIFA 테크니컬 스터디 그룹은 독일의 루카스 포돌스키에게 시상하였다.[95]
2006년 월드컵 이후 [편집]
22살 생일이 하루 지난 2007년 2월 6일, 호나우두는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 처음으로 주장으로 출전하였다.[96] 이 결정은 포르투갈 축구 협회장이었던 카를로스 실바가 죽기 이틀 전 유언으로 내려졌다. 당시 포르투갈 감독이었던 스콜라리 감독은 실바 씨가 몸짓으로 호나우두가 주장이 되길 원한다고 하였고, 호나우두가 주장으론 아직 어렸지만, 실바 씨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애도의 뜻으로 주장으로 보냈다고 밝혔다.[97]
호나우두는 UEFA 유로 2008 예선에서 폴란드의 스몰라렉에 이어 8골을 기록하였는데,[98] 그러나 본선에선 한 골 밖에 기록하지 못한 채 8강 전에서 독일에게 패배 해 탈락하였다.[99][100] 포르투갈 새로운 감독에 카를로스 퀘이로즈가 부임한 이후부터,[101] 호나우두는 대표팀 내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되었다.[102]
2009년 9월 10일, 헝가리와의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에 출전해 경기 첫 번째 골인 시망의 골을 어시스트를 하는 활약을 보였고 팀은 3–0 승리를 거두었다. 월드컵 진출 가능성이 불안하였던 포르투갈은 이어 몰타 전에서도 4–0 승리를 거두었다. 이어 스웨덴이 덴마크에게 패배하면서 조 2위로 올라가 플레이오프 행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호나우두는 플레이오프 경기를 위해 대표팀 차출을 앞두고 많은 논란과 헝가리 전에서 재발한 부상으로 구단의 차출 불가 때문에 난항을 겪었고[69] 이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에서 결장하였으나 팀은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103]
2010년 월드컵 [편집]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으나 주장으로서 제 몫을 다했다. 너무 빨리 스페인을 만났다는 점이 아쉽긴하나, 이 경기에서는 [월드클래스] 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후안 카프데빌라 에게 꽁꽁 묶이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유로 2012 [편집]
국가대표 골 [편집]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국가대표 골 기록
기록 [편집]
클럽 [편집]
클럽 | 시즌 | 리그 | 컵 | 리그 컵 | 대륙 대회 | 기타1 | 통산 | ||||||||||||
---|---|---|---|---|---|---|---|---|---|---|---|---|---|---|---|---|---|---|---|
출전 | 득점 | 도움 | 출전 | 득점 | 도움 | 출전 | 득점 | 도움 | 출전 | 득점 | 도움 | 출전 | 득점 | 도움 | 출전 | 득점 | 도움 | ||
스포르팅 CP | 2002–03 | 25 | 3 | 3 | 2 | – | 3 | 0 | 0 | 0 | 0 | 31 | 5 | ||||||
통산 | 25 | 3 | 3 | 2 | – | 3 | 0 | 0 | 0 | 0 | 31 | 5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2003-04 | 29 | 4 | 1 | 5 | 2 | 3 | 1 | 0 | 0 | 5 | 0 | 1 | 0 | 0 | 0 | 40 | 6 | 8 |
2004-05 | 33 | 5 | 2 | 7 | 4 | 4 | 2 | 0 | 0 | 8 | 0 | 2 | 0 | 0 | 0 | 50 | 9 | 10 | |
2005-06 | 33 | 9 | 2 | 2 | 0 | 0 | 4 | 2 | 1 | 8 | 1 | 1 | – | 47 | 12 | 8 | |||
2006-07 | 34 | 17 | 14 | 7 | 3 | 1 | 1 | 0 | 0 | 11 | 3 | 5 | – | 53 | 23 | 20 | |||
2007-08 | 34 | 31 | 8 | 3 | 3 | 0 | 0 | 0 | 0 | 11 | 8 | 1 | 1 | 0 | 0 | 49 | 42 | 8 | |
2008-09 | 33 | 18 | 2 | 2 | 1 | 0 | 4 | 2 | 1 | 12 | 4 | 2 | 2 | 1 | 1 | 53 | 26 | 9 | |
통산 | 196 | 84 | 14 | 26 | 13 | 8 | 12 | 4 | 1 | 55 | 16 | 12 | 3 | 1 | 1 | 292 | 118 | 63 | |
레알 마드리드 | 2009-10 | 29 | 26 | 3 | 0 | 0 | 0 | – | 6 | 7 | 0 | 0 | 0 | 0 | 35 | 33 | 3 | ||
2010-11 | 34 | 40 | 10 | 8 | 7 | 1 | – | 12 | 6 | 2 | 0 | 0 | 0 | 54 | 53 | 7 | |||
2011-12 | 38 | 46 | 11 | 5 | 3 | 0 | – | 9 | 8 | 3 | 2 | 1 | 0 | 50 | 54 | 14 | |||
통산 | 101 | 112 | 18 | 13 | 10 | 1 | – | 27 | 21 | 5 | 2 | 1 | 0 | 139 | 140 | 24 | |||
통산 | 303 | 192 | 32 | 42 | 25 | 9 | 12 | 4 | 1 | 85 | 37 | 17 | 5 | 2 | 1 | 462 | 263 | 87 |
2012년 4월 24일까지의 기록
1‘기타’에는 다음 대회가 포함된다 : 포르투갈 슈퍼컵, FA 커뮤니티 쉴드, UEFA 슈퍼 컵, 인터컨티넨탈 컵, FIFA 클럽 월드컵 및 스페인 슈퍼컵.
국가대표 [편집]
국가 | 연도 | 출전 | 득점 |
---|---|---|---|
포르투갈 | 2003 | 0 | 0 |
2004 | 13 | 7 | |
2005 | 9 | 2 | |
2006 | 14 | 6 | |
2007 | 9 | 5 | |
2008 | 13 | 1 | |
2009 | 4 | 1 | |
2010 | 11 | 3 | |
2011 | 7 | 5 | |
통산 | 80 | 30 |
2011년 10월 11일까지의 기록[104]
수상 [편집]
클럽 [편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편집]
- 프리미어리그 (3회): 2006–07, 2007–08, 2008–09
- FA 컵 (1회): 2003–04
- 리그 컵 (2회): 2005–06, 2008–09
- FA 커뮤니티 쉴드 (1회): 2007
-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2007–08
- FIFA 클럽 월드컵 (1회): 2008
레알 마드리드 [편집]
- 라 리가 (1회): 2011–12
- 코파 델 레이 (1회): 2010–11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회): 2012
개인 수상 [편집]
- UEFA 유로 2004 올스타 팀 선정
- 브라보 어워드: 2004
- FIFPro 올해의 영 플레이어: 2004–05, 2005–06
- 포르투갈 올해의 축구 선수: 2006–07
- UEFA 올해의 팀: 2003–2004, 2006–07, 2007–08
- FIFPro 세계 베스트 11: 2006–07, 2007–08, 2008–09
-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 2006–07
- PFA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 2006–07, 2007–08
- PFA 팬들의 뽑은 올해의 선수: 2006–07, 2007–08
- PFA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팀: 2005–06, 2006–07, 2007–08, 2008–09
- FWA 올해의 축구 선수: 2006–07, 2007–08
- 프리미어리그 도움왕: 2006-07
-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2006–07, 2007–08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 2006년 11월·12월, 2008년 1월·3월
- 프리미어리그 골든 부츠: 2007-08
- 바클레이즈 메리트 어워드: 2007–08
-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2007–08
- 유러피언 골든슈: 2007–08, 2010–11
-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2007–08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2007–08
- FIFPro 올해의 선수상: 2007–08
- 발롱도르: 2008
- 옹즈도르: 2008
- FIFA 올해의 선수: 2008
- 세계 올해의 축구 선수: 2008
- FIFA 클럽 월드컵 실버볼: 2008
- FIFA 푸슈카시상: 2009
- 발롱도르: 2009년 2위
- FIFA 올해의 선수: 2009년 2위
- 코파 델 레이 득점왕: 2010–11
- 프리메라리가 피치치: 2010-11
- IFFHS 세계 각국 리그 베스트 득점자 랭킹 1위: 2011
- IFFHS 가장 위협적인 선수 1위: 2011
- AS 어워즈 AS 스포츠 어워드: 2011
사생활 [편집]
- 2005년 9월, 호나우두의 아버지인 주제 디니스 아베이루가 52세의 나이로 알콜 중독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그로 인해 호나우두는 술이나 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다.[105][106][107][108]
- 호나우두는 아버지가 알콜 중독에 시달리자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였다. 축구 선수로서의 호나우두의 수입의 대부분이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막상 호나우두가 부친상을 당하던 그날은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이 2006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을 통과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갈리는 아주 중요한 시합이였기 때문에 호나우두는 끝내 상주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호나우두는 아버지라는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눈물을 흘렸다.
- 2009년 3월, 호나우두는 2007년 어머니의 유방암을 진단하여 어머니를 구해준 병원에 10만 파운드를 기부하였다.[109]
- 2007년 12월, 호나우두는 자서전인 《Moments》를 발매하였고[110] 이후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 2009년 12월, 《Dreams Accomplished》를 발매하였다.[111]
- 호나우두는 누나 한 명과 함께 자신의 번호를 딴 패션 브랜드인 "CR7"을 개장하였다.[112] 현재 CR7의 매장은 포르투갈 리스본과 마데이라 제도 총 두 군데에 위치해 있다.
- 호나우두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서 탈락한 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 남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113] 아이의 생모는 마리아 샤라포바, 패리스 힐튼, 카리나 페로, 이사벨 피규어, 디아나 차베스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직 누구인지 밝혀진 바는 없다.
광고 [편집]
- 반코 에스피리토 산토 오랫동안 에스피리토 산토 은행 CF에 많이 출연하였다.[114]
- 페페 진스 2005년, 호나우두는 페페 진스의 모델로 발탁되었다.[115]
- 나이키 머큐리얼 베이퍼 세계적인 축구스타로서 나이키 머큐리얼 베이퍼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다.[116]
- 코카-콜라 호나우두는 다른 운동선수들과 함께 코카 콜라의 음료 광고에 출연하였다.
- 엠포리오 아르마니 2009년 3월,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호나우두가 데이비드 베컴에 이어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남성 속옷 및 청바지 모델로 발탁되었다고 알렸다. 아르마니의 모델로서 2010년 봄부터 전 세계에 광고될 것으로 알려졌다.[117] 2010년 1월, 호나우두가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속옷을 입고 촬영한 새 광고가 공개되었다.[118]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013.05.21.
2007년 까지 맨유에 있었다
2013현재 레알에서 뛰고 있다
지금 맨유로 돌아가려고 생각중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013.05.21.
호날두의 출년도와 출생지
1985년 2월 5일 포루투갈의 마데이라에서 태어남
호날두의 초중고는..
아직 기자들도 모를걸요 ㅎㅎ;;ㅈㅅ
호날두는 2004년에 맨유에 입단해 2007년까지 뛰다가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하여 1370억원이라는 몸값을 가지고 뛰게됩니다
현재는 맨유나 파리생제르망으로 이적할것으로 모두들 예상을 하고있죠 ㅎㅎ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013.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