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패션’도 경쟁하는 시대…비건 패션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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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2.13. 오후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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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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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⑩
디자인·품질 갖춘 비건 패션의 글로벌 대중화
럭셔리 브랜드가 ‘동물학대 프리’와 ‘모피 제품 생산 중단’을 밝히는 등 비건 패션이 패션업계의 흐름 중 하나로 자리를 잡고 있다. 비건패션위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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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샀다. 폴리우레탄으로 된 카드지갑이다. 스페인 디자인 브랜드 도이(DOIY)가 만들었는데, 이 업체는 비동물성 가죽제품 라인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레자’(인조가죽)라고 무시했는데, 오해했다. 가격도 제법 나가고, 품질은 값싼 소가죽보다 나았다. 최근 비건 제품의 핵심이 여기 담겨있다.

국내에서 비건 패션을 주도하고 있는 ‘낫아워스’는 자신의 롤 모델을 영국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라고 말했다. 낫아워스는 “(모피와 가죽이 주류인) 럭셔리 브랜드 중 아주 오래전부터 모피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계속 지켜온 그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착한 제품’임을 내세워 ‘의리’로 제품을 팔지 않겠다. 디자인과 품질로 평가받는 게 우리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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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쇼 안 가는 것도 비건


비건 하면 우리는 채식을 떠올린다. 하지만 비건은 먹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비건’이라는 말을 잉태한, 세계 최초의 비건 단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비건소사이어티’의 정의를 보자. 그들에게 비건은 동물과 모든 동물 부산물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칭한다. 여기에는 고기, 계란, 우유, 꿀(!)은 물론 동물에서 비롯된 제품(가죽, 모피 등), 동물실험을 한 제품(화장품 등), 동물을 이용한 엔터테인먼트(동물원과 돌고래쇼)까지 포함된다.

남성용 비건 시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영국 시계 브랜드 ‘보치’(Votch). 파인애플 가죽을 이용한 피나텍스 등 비동물성 가죽으로 스트랩(시곗줄)을 쓴다. 수백만~수천만 원의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살 수 있는 보급형 브랜드다. 보치 제공


하지만 그간의 채식(비건) 운동은 ‘먹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동물 이용과 착취의 역사성을 고려한 정치적 전략이었다. 인류학자 리처드 불리엣은 우리 역사를 동물과 관련하여 ‘전기 사육시대’와 ‘후기 사육시대’로 나눈다. 전기 사육시대는 인간이 부산물을 얻으려고 동물을 키운 시대다. 양털을 얻으려 양을 길렀고, 밭을 갈기 위해 소를 길렀다. 고기는 부산물을 다 이용한 뒤에 얻는 진짜 ‘부산물’에 가까웠다. 조선 시대에 수금령을 내려 소 도살을 단속한 것도, 농업 생산력의 감소를 우려해서였다.(김동진 ‘조선, 소고기맛에 빠지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공장식 축산이 등장했다. 후기 사육시대에 들어와 상황은 바뀐다. 고기 그 자체만을 위해 동물을 사육하기 시작한 것이다. 품종 교배와 밀집 사육 기술의 발전으로, 동물은 일종의 ‘비육 기계’가 되었다. 찍어내듯 생산되는 고기 공장에 맞서 채식 운동이 식탁에 진지를 구축한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축산업은 고기를 팔지 않고도 그 자체로 돈을 벌 수 있음을 깨달았다. 동물실험에 자신의 몸을 바치는 토끼와 쥐들, 산 채로 털을 뽑히는 거위와 오리들, 루왁 커피를 생산하는 사향고양이 그리고 수족관에서 인공수정으로 나고 자라는 돌고래들까지 동물의 몸과 정신은 인간의 사용 목적 하나로 수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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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과 디자인으로 압도


그런 점에서 최근의 먹는 비건에서 쓰는 비건으로 확대된 ‘비건 패션’ 열풍은 비건(채식) 운동의 확장을 보여준다.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기술 혁신에서 비롯됐다. 잇달아 등장한 신소재가 동물성 가죽이나 모피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낫아워스의 신하나 공동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성 소재나 비동물성 소재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소재가 다른 소재보다 비싸기보다는 그 소재 중에서 가장 좋은 품질을 찾아내고 좋은 디자인과 만듦새로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디다스가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와 협업해 내놓은 스니커즈. 최근의 비건 패션 흐름은 고가의 명품 라인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보급형으로 옮겨가고 있다. 아디다스 제공


최근 잇달아 개발되고 있는 식물성 가죽의 혁신과 확산 속도는 괄목할 만하다. 파인애플 껍데기를 이용한 식물성 가죽 피나텍스가 전기차 ‘테슬라’에 들어갈 정도로 판로를 넓히고 있고, 국내에서는 한지를 이용한 종이가죽 ‘하운지’가 호평을 얻고 있다. 코르크나무 껍집을 벗겨 만든 코르크 가죽, 버섯으로 만든 가죽 마일로 등도 있다. 폴리에스터를 이용해 만드는 ‘페이크 퍼’ 기술도 날로 발전해 주요 패션 브랜드가 앞다퉈 내놓고 있다.

기술 혁신으로 식물성 가죽이 다양해졌다. 국내에서는 한원물산이 우리나라 전통 한지를 이용해 종이가죽 ‘하운지’를 개발했다. <애니멀피플>은 하운지로 제작한 지갑 제품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 내놓았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또 한 가지 흐름이 있다. 기술 혁신에 기대지 않고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무를 가꾸며 떨어진 열매를 먹는 것처럼, 동물의 몸을 학대하지 않고 부산물만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식은 신소재의 개발 같은 기술적 해결 방식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의 트레이서블 다운은 살아있는 거위나 오리에게 털을 뽑지 않고, 식용 닭과 거위가 죽고 나서 거기서 털을 뽑는다. 파타고니아는 원자재의 공급처를 관리하고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동물의 고통의 총량을 줄인다. 털을 뽑히는 동물의 어미 농장까지 가서 동물복지 원칙이 적용되었는지를 본다.

동물복지단체 ‘포포즈’는 세계 주요 브랜드의 ‘착한 순위’를 매겨 공개했다. 스웨덴의 아웃도어 브랜드 피엘라벤이 1위를 차지했고, 파타고니아가 2위, 마운틴에큅먼트가 3위, 노스페이스와 도이터가 4위이다. 물론, 이들은 식용 거위와 오리의 부산물을 쓴다는 점에서 ‘비건 패션’은 아니다. 하지만, 미적 욕망 그 자체를 위해 새로운 고통과 죽음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죄의식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이들 제품은 무엇보다 비싸다. 값싼 덕다운, 구스다운을 3~4년 만에 갈아치우느니, 한 번 사서 10년 이상을 입는 게 환경에도 동물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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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를 주목하라


인간의 미적 감각은 역사적으로 형성돼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가죽을 윤리적으로 터부시하려고 해도, 우리가 가죽의 질감과 냄새를 그리워하는 이유다. 신슐레이트, 웰론 등 신소재가 취향을 바꾸지 않고 죄의식을 없애주었다. 식물성 가죽도 경쟁 시대다. 럭셔리 브랜드는 하나둘 비건 제품을 내놓는 한편 영국 등에서는 중저가 시장을 공략한 전문업체도 나타났다. 비건 시계 브랜드 ‘보치’, 비건 구두 ‘윌스 비건 스토어’ 등이 대표적이다.

주위 일상의 모든 물건이 비건 제품이라면? 그 꿈을 실현해놓은 공간이다. 영국 런던 뱅크사이드 힐튼 호텔에서 비건 호텔 룸이 설치된 모습. 힐튼 제공


때는 무르익었고, 대표적인 럭셔리 브랜드도 ‘원칙’을 공표하기 시작했다. 아르마니와 구찌는 생산제품 전 라인에서 리얼 퍼(동물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프라다는 2020년 봄, 여름 여성복 컬렉션부터 모피 사용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하나의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는 걸까? 미국 로스앤젤레스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 같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2021년부터 동물 모피를 생산하거나 거래하는 게 금지된다. 옷, 액세서리, 핸드백 등 모든 제품이다.(아직 가죽은 아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023년부터 이 조처가 시행된다. 패션업계에서는 로스앤젤레스와 캘리포니아를 주시하고 있다.



애피의 ‘저탄소 비건 식당’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2020년 1월16일 하루 동안 서울 해방촌에서 아주 특별한 비건 식당이 열립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함께 실천하는 비거니즘을 위해, 여러 비건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체험하는 식당입니다.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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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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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프로필

2001년부터 한겨레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처칠에서 북극곰을 보고 환경 기자가 되었습니다.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인간-동물 관계를 공부했고, 지금은 동물, 환경, 과학 기사를 씁니다. <북극곰은 걷고 싶다> <고래의 노래> <잘있어,생선은 고마웠어> 등 논픽션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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