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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나이에 `천둥호랑이 아이돌`로 등극한 59년생 권인하

홍장원 기자
입력 : 
2018-04-20 15: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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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오브 락-54] '천둥호랑이 창법.' 요새 한국 가요계에는 이런 창법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가수가 있다. 천둥호랑이라는 말을 한번 분석해보자. '천둥' 그리고 '호랑이'. 천둥만 해도 강력한데 거기에 호랑이까지 겹쳤다. '강+강'의 느낌이니 얼마나 강하다는 얘기일까.

그런데 이 호랑이는 어리거나 젊은 호랑이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완숙한('늙은'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지워버렸다. 아무래도 이 가수와 늙음은 좀처럼 이미지가 겹쳐 보이지 않아서다) 호랑이에 가깝다. 세상 평지풍파를 다 겪고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영험한 호랑이. 이 창법의 주인공은 가수 권인하다. 2018년에 갑자기 웬 권인하냐고?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소리다. 권인하는 2019년, 2020년에도 여전히 천둥호랑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1959년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배재고를 거쳐 경희대를 졸업했다고 한다. 밴드 보컬 자리를 거쳐 1987년 솔로로 데뷔했다. 1980년대 가장 주목받았던 시기는 아무래도 김현식, 강인원과 함께 불렀던 OST 음반 '비 오는 날의 수채화'였을 것이다. 이후 고인이 된 김현식을 제외하고 강인원과 함께 다수의 공중파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곤 했다.(당시는 인터넷도 없었던 시기이기 때문에 대중을 상대로 노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TV였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김현식의 요절과 함께 엄청나게 인기 있는 노래로 떠올랐기 때문에 당시 권인하를 찾는 방송국 손길도 바빴을 때였다.)

그는 꾸준히 솔로가수 생활을 했다. '계절이 음악처럼 흐를 때'가 담긴 2집을 1990년 냈고, '오늘까지' '나의 꿈을 찾아서'가 담긴 3집을 1991년 냈다. 1994년 나온 4집에서는 '갈테면 가라지'가 주목받았다.

이 당시 권인하의 음악은 전형적인 80~90 스타일의 노래였다. 김현식과 변진섭과 조정현 등 발라드 가수의 노래가 연상되는 경쾌한 발라드를 주로 불렀다. 물론 이 당시 권인하의 가창력은 매우 탁월했다. 서양의 팝발성으로 들릴 만큼 세련됐고, 고음에서 탁성이 가미되는 목소리는 감미롭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권인하는 이 당시 크게 빛을 본 것은 아니었다. 이 당시 활약했던 훌륭한 가수 중 한 명 정도였다.

권인하가 요새 들어 다시 유명해진 것은 과거 그가 불렀던 노래가 새로 주목받아서가 아니다. 그는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80~90가수가 되기를 거부했다. 요즘 나온 노래를 그만의 느낌으로 다시 부르며 엄청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권인하는 지금이 전성기일지도 모른다.

권인하를 알기 위해서 20분 안팎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딱 세 곡을 추천하고 싶다. 첫 번째는 박효신과 부른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이 당시 권인하는 음반사 사장으로 신인 박효신을 발굴한 입장이었다. 박효신은 지금과 다르게 소몰이 창법에 의존했을 때였다. 둘이 나란히 무대에 서서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부르는데, 한마디로 권인하가 박효신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당시 박효신과 지금의 박효신을 같은 라인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그 당시 박효신은 잠재력이 엄청나게 풍부하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신인이었다. 지금은 본인만의 장점을 훨씬 갈고닦아 신급 경지에 오른 당대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 같은 시간의 흐름을 감안하더라도 이 무대는 정말 놀랍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전인권 특유의 샤우팅 창법이 돋보이는 곡이다. 매우 어려운 곡이고 이걸 잘 소화해내는 보컬리스트는 한국에 많지 않다. 권인하의 당시 무대는 이 곡을 잘 소화했다는 표현으로는 한없이 부족하다. 그는 이 곡을 가지고 무대를 지배했다. 이 당시 영상을 보면 신인 박효신이 권인하 사장님 노래를 옆에서 듣고 감탄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권인하 보컬의 가장 큰 매력은 고음에서 터지는 스크래치다. 그는 탁성을 유지하면서 상당히 높은 음까지 진성으로 끌고가는 희귀한 능력을 가졌다. 파사지오 영역에서 오히려 배에 힘을 주며 목소리에 힘이 더 들어간다. 소리가 적당히 띄워진 상태에서 특유의 압력으로 소리를 꽉 눌러 갈아버린다.

이런 발성으로 노래를 할 수 있는 보컬은 글로벌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의 고음은 스크래치가 덧 입혀 원래 음보다 다소 낮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걸 따라 불러보면 엄청나게 높은 음을 높아 보이지 않은 발성으로 부르고 있는 그의 역량에 한 번 더 감탄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영상의 백미는 곡 후반 권인하 특유의 애드립 부분이다. 높은 피치에서 한참 노래를 부르던 그는 곡 절정기 '내 세상' 부분에서 판테라(PANTERA) 필립 안젤모(Philip Anselmo)의 고음 샤우팅을 저리 가라 할 초고음 그라울링으로 관객을 하늘나라로 보내버린다.

두 번째로 꼭 봐야 하는 영상은 그가 EBS 'SPACE 공감'에서 부른 태연의 '만약에'다. 그는 이 곡을 복면가왕에 출연해 한 번 불렀는데,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의 생생한 얼굴이 담겨 있는 이 영상이 더 낫다.

이 영상을 보기 전에 밑에 달려 있는 댓글을 보면 지금 젊은 세대에서 권인하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아빠가 우는 것 같다'는 감동적인 댓글부터 '태연은 사랑을 노래했고 권인하는 인생을 노래했다'는 잔잔한 댓글까지 호응도가 엄청나게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댓글은 '다른 가수들이 이별을 부를 때 권인하는 혼자 사별을 부른다'였다. 그가 이 노래를 부른 건 2015년으로 한국 나이 57세였다. 환갑을 몇 년 앞둔 가수가 혼신의 감정을 실어 부르는 노래에 네티즌들이 재치 있는 댓글로 힘찬 공감을 표시해준 것이다. '이런 분이 부장님이시라면 회식 막차까지 참여하겠습니다'라는 댓글도 익살스럽다.

세 번째로 봐야 할 영상은 그가 올해 올린 윤종신의 '좋니' 커버다. 그는 심지어 이 곡을 운전하면서 부른다. 환갑을 1년 남기고 부른 그가 부른 '좋니'는 놀랄 만큼 애절하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그가 아무런 음향장치를 거치지 않고 사실상 '쌩목'으로 이걸 불렀다는 것이다.(운전하며 깜빡이 켜고 백미러 조절하면서 부른 클래스가 이 정도다. 차 안에 무슨 에코 장치가 있을 것이며, 연주가 빵빵할 수 있겠는가.)

이 곡은 이 곡을 만든 원곡 가수인 윤종신조차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곡이다. 그는 이 곡을 들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현했는데 유희열이 이걸 부르는 윤종신을 보고 "죽을 것 같다"고 놀린 적도 있었다.(물론 장난스럽게 한 얘기다. 윤종신이 이 곡을 들고 20여 년 만에 전성기를 되찾은 것은 그가 이 노래를 너무나도 잘 만들고 또 소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권인하는 이 어려운 노래를 운전하면서 불러버리는 어이없는 역량을 자랑한다. 한국 나이로 60세의 노장이 이렇게 했다. 고음에 올라가서도 숨이 차거나 음이 막히는 듯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음이 높아질수록 진해지는 그만의 탁성은 이 노래에서도 나온다.

하이라이트는 곡 후반기 음을 길게 끄는 애드립 부분이다. 그는 바이브레이션을 동반한 '음 끌기'를 여유 있는 양손 우회전과 동시에 시전하는 '진기명기'를 선보인다. 이 곡에서도 댓글은 엄청나게 달린다. '부장님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등의 재치 있는 문장이 돋보인다.

그가 고음을 뽑아내는 방식은 터보엔진이 달린 차의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과 같다. 액셀을 갑자기 확 밟으면 '터보랙'이 걸린 차는 잠시 주춤하는 느낌을 보이다가 갑자기 앞으로 확 뛰쳐나간다. 권인하 역시 진성으로 더 이상 올라갈 것 같지 않은 음이 그만의 성구전환 과정을 거쳐 허스키한 샤우팅 형태로 폭발적으로 퍼져나간다. 엄청난 폐활량과 내공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발성이다. 60이 넘은 남자가 이런 발성을 아직까지 유지하는 것은 '미스터리'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난 일이다.

이 밖에도 그가 선보인 음악 중에는 정말 좋은 것들이 많다. 멜로망스의 '선물'도 추천곡으로 뽑을 수 있겠다. 이 곡 역시 매우 어려운 노래다. 웬만한 성인 남자는 부를 수 없을 정도의 고음을 요구하는 노래다. 하지만 권인하는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그만의 스타일로 노래를 소화해낸다. 사실 어떤 노래든지 권인하가 부르면 권인하 노래가 되는 효과가 있다.

권인하가 솔로 데뷔 이전 작사·작곡가로 가요계에 먼저 데뷔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85년 가수 이광조의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작사·작곡한 사람이 권인하다(이 곡은 훗날 권인하 1집에도 실렸다).

그는 탁월한 가수이면서 훌륭한 시인이기도 했다. 그가 이런 예술적인 감성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60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천둥호랑이 아이돌'로 군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대의 그가 쓴 노래가사로 글을 마무리한다.



<사랑을 잃어버린 나> 검은 커튼이 드리운 조그만 카페에

희미한 불빛 사이로 창백한 나의 모습



하얀 우리의 추억을 잊어야 하기에

창백한 나의 모습을 술잔에 담아보네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나의 가슴에

마르지 않은 슬픔이 이 내 가슴 가득히



아 아 그대를 떠나보내며

사랑을 잃어버린 나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나의 가슴에

마르지 않은 슬픔이 이 내 가슴 가득히



아 아 그대를 떠나보내며

사랑을 잃어버린 나



권인하가 좀 더 많은 무대에 올라 20대와 소통했으면 좋겠다. 그는 아마도 아름다운 가사를 썼던 20대 당시 감성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지금 20대와도 세대를 넘어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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