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영화

국가부도의 날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7. 21. 21:51

국가부도의 날

감독 : 최국희
장르 : 드라마
개봉일 : 2018. 11. 28

하나의 원인을 지적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작위적으로 만들어버린 영화.

예전부터 기대했던 국가부도의 날 영화를 보았다. 생각보다 매우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미국발 금융위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를 다룬 다큐 영화는 많았고, 해당 영화들 중에서는 상을 여럿 받은 영화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인사이드 잡>이 있고, 다큐 영화는 아니지만, <빅쇼트>라는 영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미국의 IMF - 외환위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매우 기대를 했던 터였다. 그러나 열어보고 나니, 박평식 평론가의 별 2개 반의 한줄평 - '재연에서 계몽으로'라는 말이 정말 적절한 영화였다.

외환위기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언젠가는 이것에 대해서도 필자가 이야기 해보고자 했는데, 역량부족과 게으름으로 차일피일 미뤄질 뿐이다. 뭐, 이미 수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이 이것을 분석했으니 크게 할 말은 없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는 그 외환위기에 얽혀 있던 수 많은 이해관계와 입장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외환위기의 주된 원인 중 하나를 콕 찝어서 이야기할 뿐,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그 당시의 재연과 오락을 위한 대립구도 설정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대립을 선과 악의 구도로 잡아버렸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얼마 전 '기생충'이라는 리뷰에서 필자가 기생충이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보이지 않고 그저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볼 여지를 주는 식으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많은 호평을 주었듯이,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과거에 보였던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그대로 고스란히 밞고 있다. 물론,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을 희생시키려는 측은 악인이고, 국민을 보호하려는 측은 선인인 것은 맞다. 하지만 모든 현실적 문제 앞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결정을 내리는 이들은 선과 악의 도덕심에 의한 것이 아닌, 각자만의 입장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을 당하는 입장에서야 선/악으로 판단될 뿐이다. 그렇기에 그 당시에 있었던 그 혼란과 대립과 이해관계 등의 모든 것들이 선의 가치관과 악의 가치관 대립으로 다 가려져 버렸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 때 그 당시의 위정자들과 대기업들,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때 그 힘들었던 시절과 고통과 아픔, 힘없이 당했던 것에 대한 슬픔을 갖게 된다. 어찌보면 영화를 통해, 외환위기 이후로 가지게 된 생각들(나만 잘 살면 돼. 힘 없으면 당하는 거야. 돈이 최고야 - 황금만능주의, 권력추종, 각자도생 들등)을 고스란히 갖고 나오게 된다. 말 그대로 감정의 '재연'이다.

이 영화는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가진 오락영화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렸다.

필자가 이 영화를 혹평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정말 잘 '재연'한 영화이며, 원인을 제대로 짚은 영화이기도 하다. 필자는 분명히 어린 시절, IMF의 원인을 국민의 과소비, 사치로 배웠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그 한 가지 원인'을 제대로 짚고 있다. 기업들의 무리한 투자와 정경유착으로 인한 묻지마식 대출 허용 - 여신(輿信)이라는 그 근거없는 믿음에서 비롯된 방만한 관리 감독과 위기관리능력의 부재들을 윤정학(배우 유아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사실 이 새끼들이 ㄱ새끼들이고, 악의 축인 것은 맞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얼굴 들이내밀며, 지 잘못없다고 하는 기업가가 있는데 굳이 누군지 말은 안하겠다.) 다만, 영화가 후반에 가면서 선-악의 대립구도가 협상하는 정부-한국은행 구도로 흘러간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또한 이 영화는 그 시대의 아픔과 공포를 있는 그대로 잘 재연했다. 기업들이 하나씩 하나씩 도산해가고, 국민들은 국가가 부도날 것 같아 무서운데, 정부와 언론은 아니라고 하는데, 누굴 믿어야 할 지 혼란스럽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던 장밋빛 미래가 무너져 가는 것이 거짓같아서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은 다가오고 있다.

그 때 시절의 가장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이들이 자살했고, 이혼했으며, 많은 이들이 밑바닥으로 떨어져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다시 일어섰고, 후에 일이 잘 풀린 이들도 많다. 어떻게서든 그 지옥을 버티고 버텨냈던 이들이다.

필자의 집도 그 당시 많이 고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와서야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생각해보면 그렇다. 생일날 피자 먹고 싶다는 말에, 왜 어머니께서 익숙치 않은 솜씨로 피자를 만들어 보려고 했는지 이제는 안다. 힘들다는 것을 자식들에게 티를 내시진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돈을 아끼셨다. 조금씩 조금씩 상황이 나아질 때쯤, 우리집 빚이 많다며 가볍게 넘기듯 이야기 하셨던 것도 기억한다.

수 많은 이들이 한갑수(배우 허준호)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에 자살할까 말까 고민하고, 부도를 막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던 그가 아들에게 '아무도 믿지 말라고' 말하며, 외국인 노동자를 채근하는 모습은 변해버린 우리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이처럼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수많은 상흔을 남겼다. 그리고 그 상흔들은 여전히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상처 위에 새살이 돋아나듯이 대한민국은 재기에 성공했고, 신흥부자들, 신흥 대기업들도 생겼다. 하지만 상처는 결코 낫지 않았다. 새살로 뒤덮여 보일 뿐, 여전히 속에 고름은 차있다. 수 많은 비정규직이 탄생했고, 취업난과 실업난에 시달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난이라는 말을 무서워한다. 그 뿌리 깊게 박힌 '가난의 두려움'은 물질만능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불신, 무기력, 권력추종, 그들만의 리그, 공동체의 해체 등으로 우리 곁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추천/비추천 떡 고르라면 비추에 살짝 가깝다.
다큐 영화, 심층적 분석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비추다.
하지만 이것저것 감안하고 보면 볼만한 영화다.

'취미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멜라니 :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소녀  (0) 2019.09.17
엑시트(Exit)  (0) 2019.08.14
기생충  (0) 2019.06.25
악인전  (4) 2019.05.28
판의 미로  (0) 2019.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