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지역신문=이서진 기자] 

부산 동천고등학교가 올해 첫 골든벨 주인공이 됐다.

1월 17일 방송된 KBS 1TV '도전골든벨'은 부산 동천고등학교가 새해 첫 골든벨인 130대 골든벨에 도전해 성공했다.

이날 최후의 1인이 된 학생은 49번째 문제까지 거침없이 풀어 나가며 골든벨 문제에 도전했다.

이날 골든벨 문제는 '발키리'가 출제됐고 최후의 1인 학생은 골든벨 문제를 맞추며 올해 첫 골든벨의 주인공이 됐다.

발키리는 북유럽 신화에서 주신(主神)인 오딘을 섬기는 싸움의 처녀들이다. 고대 노르웨이어로는 발퀴랴(Valkyrja)라고 부르며, '전사자(戰死者)를 고르는 자'란 뜻이다.

반신녀(半神女)들로서 평소에는 전사자들의 궁전인 발할라에서 전사들을 접대하다가 인간계의 전쟁에서 용감한 전사자가 생기면 오딘의 명에 따라 여신 프레이야의 통솔을 받으면서 전장에 나가 전사자들을 아스가르드(혹은 발할라궁전)로 데리고 가는 역할을 한다.

준마를 타고 허공을 달리거나 백조의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다기도 하며, 그들이 입은 갑옷에서 나오는 빛이 바로 북극광이라고 한다. 영웅의 아내나 연인이 된 발키리도 있는데, 《고(古) 에다》의 뵐룬트 신화에 핀족(族)의 세 왕자가 3명의 발키리를 각각 아내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백조의 모습으로 하늘을 날다가 지친 발키리들이 스웨덴 왕 니두드의 영지(領地)에 내려 호숫가에 쉬면서 아마(亞麻)를 짜고 있을 때 세 왕자에게 붙잡혔다. 이런 인연으로 맺어진 3쌍의 부부는 7년간 행복하게 살았으나 8년째 되던 해 지상의 생활에 권태를 느낀 그들은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발키리는 전사(戰士)의 운명이나 전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운명의 여신 노르넨(복수는 노른)과 연관되어 있다. 한편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가락지》 제2부 〈발퀴레〉는 이들을 소재로 한 것이다.

부산 동천고등학교는 부산광역시 남구 못골번영로 위치한 사립고등학교로 1978년 5월 25일 학교법인 원곡학원 설립을 인가 받았다.

1980년 1월 24일 동천고등학교 설립을 인가 받았으며, 동년 3월 5일 개교 및 입학식을 거행했다. 1983년 2월 11일 제 1회 졸업식을 통해 56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교훈은 '성(誠) 경(敬) 신(信)'이며, 교목은 은행나무, 교화는 철쭉이다. 특색사업으로 인간 존중을 지향하는 명상의 시간 운영과 독서 교육 및 도서실 운영의 활성화를 시행하고 있다.

교육 목표는 ‘동학 천도교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 존중의 생활 자세를 확립하여 21세기의 지식 기반 사회를 주도해 나갈 건강하고 실력 있는 민주시민을 육성한다’이다.

동천고등학교는 지덕제(智德體)·정(情)을 갖춘 알찬 교육, 서로 존중하고 신뢰받는 깨끗한 교육, 함께 만들어 가는 따뜻한 교육을 3대 교육 기조로 선정했다. 동학 천도교 사상과 3·1 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널리 심어 민족정기를 바로잡을 미래 인재 육성을 지향하고 있다.

학교 중점 사업으로 학력 신장 프로젝트[NEW R-2030 PLAN]를 추진하고 있으며, 도서실과 부속 교실을 이용한 자기 주도적 학습을 통한 자율적 면학 풍토 조성 및 정착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교목은 은행나무로 어떠한 시련도 이겨 내는 꿋꿋함을 상징한다. 또한 은행나무 아래에서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다고 하여 동양에서 은행나무는 진리 탐구를 의미한다. 진리를 탐구하며 모진 시련을 극복하는 동천인과 뜻이 하나 되어 교목으로 정하였다.

교화는 철쭉꽃이다. 겨울을 견디고 봄이 오면 철쭉은 겨레의 앞길을 밝혀 준 동학 혁명과 3·1 운동에서 피 흘린 선열들의 혼을 담고 산과 들에 피어난다. 그 혼을 이어받고자 교화를 철쭉으로 정했다.

부산 동천고등학교가 교육 목표로 삼고 있는 ‘동학 천도교 사상'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천도교는 조선 후기 1860년에 최제우(崔濟愚)를 교조로 하는 동학(東學)을 1905년 제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천도교로 개칭한 종교다.

최제우는 전통적 유교 가문에서 태어나 지방의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다. 조선 후기는 국내적으로는 외척(外戚)의 세도정치와 양반·토호들이 일반 백성에 대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자행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민란이 각지에서 발생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의 무력침략의 위기를 맞던 시대였다.

최제우는 21세에 구세제민(救世濟民)의 큰 뜻을 품고 도(道)를 얻고자 주류팔로(周流八路)의 길에 나서 울산 유곡동 여시바윗골, 양산 천성산 암굴에서 수도하고 도를 갈구하여 1860년 4월 5일 '한울님(하느님)'으로부터 인류 구제의 도인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도의 이름을 '무극대도'라고만 하였다. 최제우가 포교를 시작하여 많은 교도들이 모이자, 관(官)과 유생들이 혹세무민한다는 구실로 탄압하여 부득이 전북 남원 교룡산성(蛟龍山城)으로 피신하였다. 이 때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많은 저술을 하였다.

특히, 1862년 1월경에 지은 《논학문(論學文:東學論)》에서 처음으로 무극대도는 천도(天道)이며 그 학은 서학이 아닌 ‘동학(東學)’이라고 천명했다. 이로써 동학이라 지칭하게 됐다.

이 해에 다시 경주의 박대여(朴大汝) 집에 머물면서 포교하자, 충청·전라 지방에서까지 수천 명의 교도들이 모여들자 교도들을 조직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1862년 12월 동학의 신앙공동체인 접(接)제도를 설치하고 접주(接主) 16명을 임명했다.

최제우는 1863년 3월 경주 용담정으로 돌아와 대대적인 포교활동에 나섰다. 접주들로 하여금 교도들을 수십 명씩 동원하여 용담정에 와서 강도(講道)를 받게 하는가 하면, 동학 교단 책임을 맡을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 해월(海月) 최경상(崔慶翔:時亨)을 선임하였다.

한편, 관의 탄압을 예견하고 그해 8월 14일에는 도통(道統)을 최경상에게 완전히 물려주었다. 날이 갈수록 동학 교세가 커지자, 놀란 조정은 그해 12월 10일에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雲龜)를 파견, 최제우를 체포하여 이듬해 3월 10일 대구에서 정형을 집행하여 최제우는 41세를 일기로 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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