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17일 전 '공중폭파'…33년 전 사건 전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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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1.23. 오후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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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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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앵커 ▶

우리가 흔히 칼기 폭파 사건이라고 부른 이 KAL858기 폭파 사건, 당시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33년이란 시간이 흐른 만큼 아예 생소하게 들리는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폭파, 테러, 희생자라는 단어만 존재할 뿐 그 동안 그 실체를 아무 것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이 미스터리한 사건을 이문현 기자가 설명해드립니다.

◀ 리포트 ▶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오던 대한항공 여객기 858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실종됐습니다.

[1987년 11월 30일 뉴스데스크]
"대한항공 K858 여객기는 한마디 교신도 없이 순식간에 레이더에서 사라졌습니다."

탑승자는 115명.

이들 상당수는 중동에서 외화벌이를 하다, 몇년 만에 귀국하는 우리 노동자들이었습니다.

[1987년 12월 19일 뉴스데스크]
"탑승자 115명 모두가 사망한 것으로 교통부가 공식 발표함에 따라서…"

사고 다음날, 교신 기록도, 잔해 하나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은 불순세력에 의한 테러사건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틀 뒤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북한에 의한 공중폭파사건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테러범인 북한 공작원 김현희, 가명 마유미가 대선 하루 전날 국내로 압송됐습니다.

[김현희 (1988년 기자회견)]
"비행 주머니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아부다비에 와서 내릴 때에는 비행주머니를 가지고 내리지 않았습니다."

김현희는 1990년 자백만으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2주 뒤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이후 2006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 등이 구성돼 1987년 당시 전두환 정권이 대선에 858기 사고를 이용한, 이른바 무지개 공작이 있었음을 밝혀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보다 근본적으로, 사건의 실체 자체에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858기 유가족]
"우리는 이 32년 동안 그렇게 진짜 외쳐도 하나 밝혀진 것도 없고, 너무너무 억울한 이 마음을 하루빨리 진짜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잘 안 울었는데 이게… 안 울었는데…"

의혹에 의혹이 꼬리를 이었던 858기 사건.

유족들은 지금이라도 기체를 인양하고 사고 원인을 조사해, 33년 된 한을 풀어달라고 말합니다.

MBC뉴스 이문현입니다.

(영상편집: 유다혜)

이문현 기자 (lmh@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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