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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영화트로이 보신분들 ^^
76**** 조회수 5,863 작성일2007.04.14

제목처럼 트로이라는 영화

보셨거나 내용 다 아시는 분들한테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는데요 ^^;

트로이에 대해 학교에서 발표해볼까하는데

영화 내용을 잘 몰라서요;

 

제가 질문드리고 싶은것은

트로이에 대한 퀴즈를 직접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

되도록 트로이 영화를 보면 알수있는 질문과

트로이 역사에 관력된 질문이였으면 좋겠네요.

 

빨리 부탁드리구요 ^^

좋은 질문으로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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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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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극장, 드라마영화, 공포, 스릴러 영화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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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내용을 토대로 님이 퀴즈를 만들어 보세요;;

 

알렉산더의 시간적 배경
헬레니즘은 그리스 아테네가 패망하고 그리스의 전성기가 끝날 무렵 발달한 도시국가로 나중에 알렉산더 대왕이 나와서 그리스 세계를 통일하죠. 그러고 나서 알렉산더가 인도에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결정적으로 동쪽의 문화가 기존의 그리스쪽 문화와 결합하면서 나타나게 된 문화 양식을 말합니다.
참고로 알렉산더의 스승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플라톤에게 가르침을 받은 아리스토텔레스 입니다.알렉산더는 기원전 356년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필리포스 2세)과 에페이로스의 공주 올림피아(올림피아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신화적인 해석은 그가 제우스 신의 아들이었다고 전한다. 올림피아는 아들에게 신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믿었으며 어린 아들에게도 그것을 숨기지 않았고, 장차 트로이의 장군 아킬레스와 같은 운명을 겪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주입시켰다. 알렉산더가 이것을 믿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자신을 아킬레스와 동일시하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신격화를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데 이용했을 것이라 보인다. 이집트 원정 당시에는 이집트의 사제들에게 자신을 아몬-라(라(Ra)는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의 아들로 칭하게 하여 충성의 맹세를 받았으며 그 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다.

필립 왕과 올림피아

기원전 356년 필립은 왕위쟁탈전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케도니아 왕위에 올랐다. 마케도니아는 필립에 의해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필립은 어머니의 치마 폭에 둘러싸여 마마보이처럼 지내는 알렉산더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열 두 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너무나 사나워서 아무도 타지 못하는 말을 솜씨 좋게 타 보인 것이었다(알렉산더가 탄 말은 소의 머리를 뜻하는 부케팔루스라는 이름의 말로서 훗날 동방원정에서 알렉산더와 함께한 명마가 되었다). 이 때 필립은 “아, 너는 너에게 알맞은 나라를 찾도록 해라. 이 나라 마케도니아는 너에겐 너무 작은 나라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일이 있기 전 필립이 어린 알렉산더에게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가 불안정한 정세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탓도 있지만 아내 올림피아의 정조를 의심한 탓도 있었다. 알렉산더가 태어나기 전, 어느 날 꾼 꿈에서 필립은 아내가 큰 구렁이와 함께 자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이 꿈을 꾼 뒤로는 정이 떨어져 좀처럼 아내 곁으로 가지 않았다고 한다(영화 <알렉산더>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하는 올림피아 곁에는 항상 뱀들이 한 무더기로 나온다).

남편의 사랑을 못 받았음인지 올림피아는 아들에게 더욱 더 광적으로 집착했고, 남편을 원수처럼 여겼으며, 영화 초반부에 나오듯이 아들이 자신의 원수를 갚아줄 것이라 믿었다. 기원전 336년, 필립이 옛 수도 아이가이의 어느 극장에서 마케도니아 귀족 청년 파우사니아스의 칼에 쓰러졌을 때, 가장 의심을 받았던 것은 물론 올림피아였다. 영화 속에서도 알렉산더는 어머니가 사주하였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알렉산더가 시켰다는 설도 있으며, 필립의 두 번째 아내인 클레오파트라(고대 이집트 여왕과 동명이인)가 자신의 어린 아들 카라노스를 왕위에 세우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설도 있다. 암살의 배후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길 없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올림피아는 클레오파트라를 자결케 했으며 카라노스를 신의 제물로 삼아 제단의 불길 속으로 던져버렸다. 죽은 부왕의 뒤를 이어 알렉산더가 왕위에 올랐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굉장히 풀기 어려운 일이나 문제를 가리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알렉산더의 일화로 인해 유명해졌다. 미다스 국의 수도였다고 전해지는 고르디움에서 알렉산더는 산수유나무 껍질로 엮은 밧줄로 동여매어진 수레를 보았고,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세계의 왕이 될 것이라는 전설을 들었다. 알렉산더는 그 매듭을 풀었다. 그러나 전해지는 여러 이야기들에 따르면 푸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알렉산더는 칼을 뽑아 싹둑 잘랐다고 하기도 하고, 밧줄을 동여맨 못을 수레채 뽑았다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는 기존의 원칙들을 깨고 매듭을 풀었으며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되었다.

가혹함과 관용

8년 동안 군대를 이끌고 2만 2,000 마일에 이르는 땅을 정복했던 알렉산더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세력에게는 무자비한 살육을, 항복하는 세력에게는 더없는 관용을 베풀었다. 테베스 족이 아테네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 주력군을 몰아 테베스를 점령하였고, 그리스의 다른 모든 나라들에 본보기를 보여준다는 뜻에서 부하들의 약탈과 파괴, 방화와 강간을 묵인, 조장했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제국의 황제인 다리우스 3세가 도망갔을 때, 그가 다리우스의 가족들에게 보인 것은 자비와 관용이었다. 영화 속에도 드러나듯이 알렉산더는 다리우스와 아내, 딸들을 비롯한 왕족 여인들에게 다리우스 왕으로부터 받았던 그대로 대우해 주었으며, 왕족의 지위와 호칭도 그대로 붙여주었고 전보다 더 많은 풍족함을 주었다.『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알렉산더’ 편은 다리우스가 부하 장군 베수스의 음모로 죽은 후에도 알렉산더는 훌륭한 숙적을 잃었다고 슬퍼했으며 페르시아 제국을 다스렸던 대황제에 대한 예우를 갖춰 장례를 치르고, 그 유해를 그의 모친에게 보냈다고 전한다.



세계시민주의

흔히들 알렉산더가 동방원정을 거치며 퍼뜨린 사상을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라고 말한다. 영화 <알렉산더>의 후반부에서도 인도 원정을 앞두고 지칠 대로 지친 군대가 조국으로 귀환할 것을 촉구할 때, 알렉산더는 “여기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이냐? 진정, 너희들은 민족과 인종, 국가를 떠나 세계가 평화롭게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보지 않을 것이냐?”라며 부하들에게 호소한다. 정복자가 자신의 야욕과 영광을 포장하기 위한 전술이었겠지만, 알렉산더가 자신의 문화만을 고집하지 않고 서로간의 동화와 융합을 꾀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피정복지의 청년들에게 세계 최강 마케도니아식 군사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으며, 그 반대로 피정복지의 옷을 입고 그 곳의 풍습을 익히며 그들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했으며 피정복지의 관료들을 자신의 부하로 삼기도 했다. 이것은 지방민들을 순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마케도니아 군대 내부에서는 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알렉산더의 공간적 배경
헬레니즘의 문화는 그 기본 바탕을 그리스문화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반적인 문화 약식은 그리스 문화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집트 지역의 톡특한 문화 양식, 지금의 터키 지역의 트로이 인들의 생활 양식, 지금의 중동지역의 문화양식이 결합되어 기존의 그리스 문화와는 약간 다른 새로운 형태의 건축양식과, 생활양식(도자기에서 많이 나타남)의 변화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BC 1,200년경에 세계 문명을 주도하고 있었던 미케네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특징을 조합해 화면에 담기로 했다. 미케네 문명의 예술성과 이집트 문명의 스케일을 조화시켜 사실성과 서사적 장대함을 동시에 표현키로 한 것이다. 터키의 유적지 발굴터에서는 층마다 다른 여러 개의 고대 도시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여섯 번째 층인 '트로이 6 '이 바로 트로이 유적지다. 디자인 팀은 터키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과 사료가 소장돼있는 대영 박물관에서 얻은 고증 자료를 기반으로 이 '트로이 6' 유적지를 세트로 복원했고, 이에 총 2억불의 제작비로 완성된 대서사극 <트로이>의 배경이 완성된 것이다.
호머의 <일리아드>에 묘사된 의상과 갑옷은 트로이 전쟁 3, 400년 이후인 호머가 살았던 시대의 의상에 가깝기 때문에 의상팀은 BC 1,200년 시대를 새롭게 재현해야만 했다.
트로이전쟁(그리스문명)BC 1250년경 전쟁발발
그리스 연합군 1차원정은 실패 2차원정이 진짜 트로이 전쟁
500년후 호메로스가 서사시 ‘일리아드’에 담아
1871년 독일 기업가 슐리만 터키서 트로이 장신구 발굴


트로이의 공간적 배경
영화 Troy는 이걸 떠나서 유럽과 더 나아가 세계사를 얘기할 수 없는 뿌리와 같은 고대 그리스/로마신화의 일부인 '호메로스'의 저 유명한 대서사시 일리아스(Ilias)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일리아스는 "일리온(Ilion)의 서사시"라는 뜻으로 일리온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트로이, 트로이아 라고도 하며, 소아시아의 서북부에 위치 한 도시의 이름 입니다. 알랙산드르 대왕이 [일리아스]를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은 사실은 유명 하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젊은 영웅인 그가 아킬레우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 기원전 13세기의 지중해안은 비상시국이었다. 인구는 생산력에 비해 과잉이었고 가뭄과 기근이 휩쓸었다. 재물을 약탈하고 노예와 여자를 탈취하는 것이 관행이었던 이 시절, 정세는 극도로 불안했다.
그 당시 강대국은 이집트와 히타이트였다. 이집트의 왕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와 큰 전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히타이트 왕국은 현재 터키의 중부 지방에 있었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 본토 남부에 근거지를 둔 미케네 문명이 새롭게 떠올랐고, 아케아인으로 일컬어지는 그들은 시장 확대와 무역을 위해 주변의 섬과 나라들을 공격했다.

해상세력인 미케네 문명과 대륙 세력인 히타이트 문명의 접경에 있던 트로이는 전통적으로 히타이트 왕국과 동맹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쳤을 때 히타이트는 트로이에 동맹군을 보냈는데, 그 바람에 전쟁이 10년이나 걸렸다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렇듯 트로이 전쟁은 해상무역의 주도권 쟁탈전이었으나,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에 의해 신과 여인이 어우러진 찬란한 문학으로 재탄생했다.

그가 쓴 대서사시 일리아드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하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그러자 메넬라오스의 형인 미케네왕 아가멤논이 그리스 연합군을 형성해 트로이로 원정을 떠났고,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 10년째 되는 해의 기록이다.

트로이의 자취로 추정되는 유적은 터키 서북부 지역의 에게해 인근에 있다. 우선 차나칼레란 도시로 간 후, 그곳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벌판을 달리면 트로이 유적지가 나온다.

트로이 유적지 입구에는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가 세워져 있고 목마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트로이 성터가 있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간 사람들은 갑자기 펼쳐지는 폐허 같은 풍경에 실망감을 금치 못하게 된다. 원래 가로 200m, 세로 150m 정도라는 성벽은 사라지고, 호메로스가 묘사한 ‘높은 탑, 거대한 성벽’ 등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기원전 1900년에서 1240년 사이에 건설된 여섯 번째의 도시가 트로이 전쟁 당시의 성터로 추정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페르시아 왕과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등이 이곳을 방문했다는데 언덕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면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파리스, 헥토르 등의 영웅들이 싸웠다는 드넓은 평원이 해안과 함께 보인다.

발길을 돌려 서쪽 문 근방으로 오면 허물어진 성벽을 급하게 막은 흔적이 보인다. 다른 곳처럼 돌이 반듯하지 않고 이쪽저쪽에서 모은 볼품없는 돌이어서 아마도 트로이 목마를 안으로 들여온 후 급하게 막은 것이 아닐지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 오면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였던 남문이 나온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친척의 복수를 위해 트로이의 장군 헥토르를 죽인 후 시신을 마차에 매달고 울분을 토했던 바로 그 장소다. 그러나 현재 성문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폭이 10m 정도고 흩어진 돌무더기가 쌓여 있을 뿐이다.

트로이 유적지에서는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느끼며 실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추악한 전쟁을 낭만적 대서사시로 승화시킨 시인의 무한한 상상력에 대해 감탄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삶의 토대인 현실은 중요하지만 만약 현실에만 집착해서 세상을 본다면, 인간의 역사는 얼마나 비참하고 삭막할 것인가. 호메로스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인간에게 꿈을 주었고, 그 꿈은 21세기 초에 와서 ‘트로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엄청난 부를 창출하기도 했다. 현실 속에서 꿈이 만들어지고, 그 꿈을 토대로 다시 새로운 현실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것이 우리의 꿈 같은 현실일지도 모른다.
터키의 트로이… 이 곳을 방문하기 위해선 쉽지 않은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마르마라 해를 따라 남쪽으로 8시간을 달리면 카나칼레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도시 트로이를 만날 수 있다.
마치 나이테를 연상시키는 이곳 유적지는 모두 9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빈대떡을 붙여 올려놓은 것 같은 이 언덕은 무려 3500년의 역사가 한 곳에 쌓아져 있는 곳이다. 각 층마다 모두 다른 석질의 성벽을 이루고 있으며 이중 트로이 전쟁 시대로 추정되는 곳이 7층으로 기원전 1250~1025년경이라 한다. 또 8~9층은 로마시대의 시가지로 기원전 85년에서 서기 500년까지 번성한 ‘일리온’ 이었다.
이 곳 유적지로 들어서면 바로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를 만날 수 있다. 1975년에 신화를 근거로 실물크기로 만든 이 목마 안으로 들어서면 이 곳에서 숨어 결전의 순간을 기다렸던 그리스 군대가 된 듯한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 트로이의 왕자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는 스파르타의 왕비를 납치하게 되면서 시작된 트로이 전쟁. 10년을 넘는 대 전쟁은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의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 안으로 잠입하면서 끝이 난다.-
그때의 오디세우스의 계략이 아니었다면 이 난공불락의 요새인 트로이를 점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의 처절했던 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신화의 도시답게 불가사의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또 각각의 시대를 보여주는 신전과 주거지, 지하 저장고와 소극장 ‘오디온’ 등이 복원되어 있기도 하다. 한 인간의 평생의 노력과 집념으로 드디어 그 모습을 들어낸 트로이. 비록 신화의 내용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그 오랜 세월을 이 만큼이라도 버텨온 것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쩌면 오랜 세월동안 잠들어 있으면서 자신을 발견해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 한 소년의 평범한 꿈에서부터 시작된 트로이의 발견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주연
브래드 피트 Brad Pitt : 아킬레스 역
에릭 바나 Eric Bana : 헥토르 역
올랜도 블룸 Orlando Bloom : 파리스 역
다이안 크루거 Diane Kruger : 헬레네 역
브라이언 콕스 Brian Cox : 아가멤논 역
숀 빈 Sean Bean : 오디세이우스 역
브렌단 글리슨 Brendan Gleeson : 메네라우스 역
세프론 버로우스 Saffron Burrows

조연
줄리 크리스티 Julie Christie : 테티스 역
피터 오툴 Peter O'Toole : 프리아모스 역
그리스연합국

아가멤논: 그리스 연합국 총사령관, 미케네의 왕이며 스파르타의 왕자 메넬라오스의 형.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의 사이에 이피게네이아·엘렉트라 등의 세 딸과 아들 오레스테스를 두었다.
* 엘렉트라는 정부와 눈이맞아 아버지를 죽인 엄마와 정부에 대한 복수를 남동생 오레스테스와 함께 함으로써 후에 프로이드가 엘렉트라컴플렉스를 정신분석학 용어로 사용하게 되는 원천이 됨.

아킬레우스: 신들의 신인 제우스는 포세이돈과 함께 바다의 여신인 네레우스의 딸들 중에 미모가 뛰어난 테티스를 사랑하게 됨. 그러나 테티스가 아들을 낳게 된다면 아버지보다 더 강력하게 자라게 될것이라는 예언에 펠레우스와 결혼을 시키려 하여 그 사이에서 아킬레우스 즉 아킬레스(라틴어이름)가 태어남. 어린 시절, 바다의 신 테티스는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저승의 강 스틱스에 적셨으나, 그때 그녀가 잡고 있던 그의 발뒤꿈치만이 젖지 않아 불사신이 되지 못함. 그 이후로 치명적인 약점을 나타나는 대표명사가 됨.
영화 트로이에서는 브래드피트가 열연.

메넬라오스: 아가멤논의 동생이며 스파르타의 왕자. 트로이전쟁의 시발점이 된 최고의 미녀 헬레네의 남편.

파트로클로스: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 아킬레우스가 총사령관 아가멤논과의 갈등(아킬레우스가 트로이성 주변을 점령한후 얻게된 여인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이 뺏어감으로써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참가 안하기로 함.)으로 인해 전투에 임하지 않자 아킬레우스의 갑옷과 창을 빌려입고(트로이군은 아킬레우스 그 자체를 가장 두려워함) 적진 너무깊이 들어가지말라는 친구의 말을 잊고 들어갔다가 많은 적군을 죽인후 트로이의 명장 헥토르에게 죽음. 이를 계기로 아킬레우스가 친구의 복수를 위해 전쟁에 다시 참여하게됨.


2.트로이군

프리아모스: 트로이의 노왕. 아킬레우스와의 대결에서 패한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려고 신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군 진지 깊숙히 많은 보물을 가지고 아킬레우스를 찾아감.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고 아들의 시신을 돌려줄것을 간청함. 아킬레우스도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해서 결국은 눈물을 보이며 시신을 돌려줌. 돌려주면서 장례를 치를 동안 서로 전투를 안하겠다고 배려함.
영화 트로이의 볼프강 피터슨 감독은 이 장면을 위해 멕시코의 한 호텔을 통째로 빌려 세트를 제작하여 배우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함. 영화 트로이에서 가장 감동적인 명장면 중의 하나이다.

헥토르: 트로이의 총 사령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 10년차일때 총사령관 아가멤논과의 갈등(여인 브리세우스를 뺏은 아가멤논에 대한 불만)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시작하여 바로 트로이의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와의 대결에서 죽는 시점까지를 그린 대서사시이다.

파리스: 트로이전쟁의 원인이 된 트로이의 왕자.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날.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고 모든 신들이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우연한 실수로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만이 제외되었다. 혼자 제외된 데 격분하여 에리스는 좌중에 황금 사과를 하나 던졌는데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씌어져 있었다. 그래서 헤라와 아프로디테와 아테나가 제각기 그 사과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제우스는 이런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 판결을 내리기를 원치 않아 여신들을 이데산으로 보냈다.

200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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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i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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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트로이 영화에 미처서 20번은 본사람입니다.

 

트로이 정말 멋있는 국가고 전쟁또한 얼마나 멋있습니까?

 

20번을 본 저의 기억력으로 답변을 간단 간단히 해드리겠습니다~

 

1) 영화속 주요 인물

프라아모스 : 트로이 왕  

헥토르 : 트로이의 첫번째 왕자

파리스 : 트로이의 두번째 왕자

아킬레우스 :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 : 전쟁의 명장

헬레네 : 전쟁의 원인인 여자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의 왕비

브릿세이스 : 아킬레우스와 사랑하는 여자

메넬라우스 : 스파르타의 왕

아가멤논 :  메넬라우스의 형 아테네의 왕

 

2) 영화에서 전쟁의 원인 :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의 왕비인  헬레네와 사랑에 빠저 파리스 왕자가 헬레나와 함께 트로이로 갑니다. 그것을 안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우스가 자신의 형인 아테네의 아가멤논에게 도움을 청해 트로이를 칠것과 헬레네를 데려올것을 권합니다. 아가멤논은 그것을 승낙하고 전쟁이 시작되지요.

 

3) 영화에서 전쟁 과정 : 일단 아킬레우스의 엄청난 전략과 싸움실력으로 트로이의 해안선을 단숨에 점령합니다. 그런후 그리스의 연합군 (스파르타.아테네,등등등 ) 이 진영을 세우고 트로이의 성문까지 진격해 싸움니다. 메넬라우스는 파리스에게 일대일로 싸워 전쟁으 끝내자라고 권유합니다. 파리스과 승낙하자 파리스와 메넬라우스가 일대일로 싸우게 됬습니다. 힘에 밀린 파리스는 죽음을 당할뻔하나 형인 헥토르가 메넬라우스를 단칼에 죽여버립니다. 그후 계속되는 전쟁을 하는데 트로이가 계속 이깁니다. 이유는 아킬레우스도 빠젔기 때문이조. 트로이의 계속 된 승리로 트로이는 기세에 차 그리스의 진영을 치게 됩니다. 트로이가 그리스 군영을 첬을때 헥토르는 어쩔수없이 아킬레우스의 사촌을 죽이게됩니다. 사촌이 죽었단 사실을 알고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전쟁에 다시 참전합니다. 그후 아킬레우스는 복수심에 헥토르를 죽이고 상황은 역전이 됩니다. 계속되는 전쟁속에 전쟁의 명장 이자 지략가인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목마를 생각합니다. 트로이 목마는 성공적으로 이루워 젔고 결국 트로이는 패망하고 맙니다.

 

4)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1:1 싸울때의 제일 명장면을 글로 묘사 하면

 

일단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창을 들고 1:1로 정면승부를 하여 막상 막하의 싸움을 합니다.

엄청난 체력의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창을 꺾고 검으로 싸우기를 권유합니다. 엄청난 지략으로 아킬레우스는 등에 매달린 방패로 헥토르의 칼을 막고 다시 헥토르를 공격 합니다. 상황이 역전됬지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계속 되는 싸움에 헥토르는 지치고 엄청난 체력을 가진 아킬레우스는 끄덕도 하지않습니다. 마지막 아킬레우스는 뿌러진 창조각을 한손에 들고 다른 한손엔 자신의 칼을 들어 휘둘르며 칼로 치는 척하면서 헥토르가 칼을 막을때 창으로 헥토르의 가슴위쪽을 찍어버립니다. 주저않은 헥토르.... 아직도 성이 안풀린 아킬레우스는 두손으로 청동검을 들고 청동검으로 헥토르의 배를 밀어 버립니다. 그리고 헥토르 사촌에게 말하지요.

헥토르 따위 단숨에도 죽일수 있었다. 

 

이정도면 영화 설명은 할수있을것 같아요 ㅎㅎ... 만약 틀린게 있으면 쪽지로 보내주셔요 ~~
그럼 ㅅㄱ~

2007.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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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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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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