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외모지상주의’ ‘싸움독학’ ‘인생존망’…박태준의 ‘인싸’ 월드는 무엇을 배제하는가 [위근우의 리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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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1.17. 오후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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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그게 이유이자 목표라니… 씁쓸하다, 아웃사이더의 ‘반란’

박태준 작가는 웹툰 생태계의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다. ‘얼짱’ 출신에 의류사업을 하던 그는 데뷔작 <외모지상주의>로 네이버 웹툰 중 가장 압도적인 조회수를 기록 중이며, 지난해 11월부터 본인이 스토리만 담당하는 신작 <인생존망> <싸움독학>까지 동시 연재하며 해당 작품들을 역시 네이버 웹툰 각 요일별 수위권에 올렸다. <외모지상주의> 초반부도 그랬지만, 그는 자극적이면서도 동시대적 욕망을 자극하는 설정과 빠른 전개로 초반 1, 2화만에 독자들을 단숨에 몰입시키는 재주가 있다.

웹툰 <싸움독학>


학교에서 무시받던 주인공들이 일진에 맞서거나 생존 투쟁…

그러나 이들에게 진정한 승리는‘인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

그 과정서 여성은 ‘트로피’ 취급


너도 ‘인싸’가 될 수 있다고 격려

이분법 구조의 붕괴를 바랐지만 되레 이분법은 더욱 공고해진다


학원물, 그중에서도 소위 ‘일진물’로 분류될 법한 그의 만화 세계를 간단히 요약하면 학교에서 무시받고 괴롭힘당하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환골탈태해 주목받는 이야기다. <외모지상주의>가 외모 때문에 무시당하던 학교폭력 피해자 박형석이 어느 날 갑자기 육체적으로 완벽한 새 몸을 얻게 되며 모두의 선망을 받는 모습을 그린다면, 신작인 <싸움독학>의 주인공 유호빈 역시 같은 반 학생 빡고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그의 악행을 고발하는 인터넷 방송(작품 속에선 ‘뉴투부’)으로 유명해지고, 이후 홀로 싸움을 독학하며 ‘싸움독학’이란 뉴투부 채널을 운영한다. <인생존망>은 이런 설정을 한 번 더 비트는데, 고등학교 시절 유명한 ‘일진’이자 격투기 유망주였던 장안철은 자신이 과거 괴롭혔던 동창 김진우가 자신을 원망하며 죽자, 그 원한에 의해 고등학교 시절의 진우가 되어 과거의 자신을 비롯한 ‘일진’에 맞선다. 구조화하면 반복적이고 단순해 보이지만, 또한 그만큼 익숙하고 직관적인 쾌감을 보장한다. 하지만 형식적 유사성보다 그의 작품에서 더 중요한 교집합은, ‘아싸’(아웃사이더)에서 ‘인싸’(인사이더)로의 편입에 대한 욕망이다.

싸움을 못하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를 통해 강해지는 이야기는 사실 꽤 흔하게 볼 수 있다. 만화 <홀리랜드>가 그러하며, 영화 <싸움의 기술>이 그러하다. 다만 이들 작품의 주인공에게 있어 싸움은 최소한의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박태준 월드의 주인공들은 다르다. 물론 몸이 바뀌기 전 형석(외모지상주의)과 안철의 영혼이 들어가기 전 진우(인생존망), 싸움 기술을 배우기 전 호빈(싸움독학) 역시 학교폭력 피해자로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지만, 그들이 궁극적으로 닿는 곳은 교내 ‘인싸’의 위치다. 잘생긴 얼굴과 강인한 육체를 얻게 된 형석은 과거 자신을 길거리에서 구타했던 이진성과 싸워 이기지만, 단순히 복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후 진성을 포함한 소위 잘나가는 무리에 속하게 된다. 노골적으로 ‘솔직히 난 인싸들을 부러워했다’고 독백하던 <싸움독학>의 호빈은 싸움으로 빡고에게 승리하기 전에도 뉴투부 구독자가 많다는 이유로 같은 반 ‘인싸’인 뷰티 뉴투버에게 합동 방송을 제안 받는다. 반대로 호빈에게 진 이후 빡고의 몰락은 그가 운영하던 뉴투브 구독자 수가 줄어드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싸움의 패배보다 굴욕적인 건 인기와 관심을 잃고 ‘아싸’로 밀려나는 것이며, 진정한 승리는 ‘인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동시대 독자들이 열광한다면, 결국 이것이 지금 이곳에서의 욕망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상승 욕구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문화연구자 오혜진은 ‘핀치’에 기고한 글에서 “‘아싸’와 ‘인싸’ 모두 ‘중심/주변’이라는 위계화된 이분법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같은 종류의 욕망이겠으나, 후자는 ‘주류/기득권에 속한다는 것’에 대한 어떤 경계도 없이 주변부적인 것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승인한다”고 최근의 ‘인싸’ 문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스케치한 바 있다. 박태준 월드는 이러한 배제와 혐오를 선명히 드러낸다. <외모지상주의>에서 지방 남학생들이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으로 추로스를 사먹을 수 없다는 것에 놀라는 장면이나 지방 여학생들의 외모와 패션을 의도적으로 희화화한 장면은 짧은 에피소드라 해도 명백한 지방민 비하다. 형석처럼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박지호가 자신의 능력만으론 아무것도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다가 가해자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자신을 도우려던 형석까지 해하며 작품 내 최대 비호감 캐릭터가 된 것 역시 약자 혐오적인 ‘노오력 부족’의 서사다. 그의 작품들에서 숨 쉬듯 반복되는 여성 캐릭터의 성적대상화와 비하는 이런 맥락 위에 있다.

앞서 박태준 월드를 지배하는 ‘인싸’로의 편입에 대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같은 ‘인싸’ 무리에서도 여성은 언제나 주변부적인 것, 혹은 ‘인싸’로 편입되는 주인공에 대한 보상으로 등장한다. <외모지상주의>에서 몸이 뒤바뀐 형석이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자신을 보는 여성들의 달라진 시선이다. 형석을 유혹하기 위해 파인 옷을 입고 가슴을 모으는 박하늘이나, 남자친구가 있지만 형석에게 노골적으로 애교를 부리는 유이처럼, 여성들은 형석의 달라진 삶에 대한 첫 번째 보상인 동시에, 그런 ‘외모지상주의’를 공고히 하는 속물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즉 보상으로서의 여성도 포기할 수 없고, 여성 비하의 쾌감도 포기할 수 없다. <인생존망>에서 짐승 같은 남자에 대한 로망이 있는 박다빈이 진우의 몸을 한 안철에게 끌리고 가출 뒤 재워달라고 부탁하거나, 진우 어머니에게 들킬까봐 다빈을 이불에 숨긴 장면이 노골적으로 성애화된 포즈로 그려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싸움독학>에서 호빈의 같은 반 뷰티 뉴투버도 구독 수를 늘리기 위해 그에게 접근하는 속물로 등장한다. ‘인싸’가 되고 싶다던 호빈은 짝사랑하던 최보미와 데이트를 하며 ‘인싸 같은 거 안 해도 돼’라고 독백하지만, 사실 그것은 예쁜 여성과의 만남이 ‘인싸’ 편입의 트로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여 박태준 ‘일진’ 3부작에서 ‘아싸’의 반란은 ‘아싸’/‘인싸’의 이분법적 구조를 무너뜨리기보단 그들이 결국 ‘인싸’가 되는 결과를 통해 오히려 그 이분법을 공고히 한다. ‘아싸’여도 상관없다고 말해주는 대신, 너도 잘하면 ‘인싸’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인생존망>의 안철은 진우의 몸에 들어가기 전엔 격투기로 번 돈을 기반으로 20대 초반에 이미 성공한 휴대전화 판매업자였으며, <싸움독학>의 ‘인싸’들은 고등학생임에도 뉴투부로 막대한 돈을 번다. 그러니 나쁜 놈은 나쁜 놈인 거고, ‘인싸’는 되고 봐야 한다. 이것이 경쟁 원리의 내면화다. 이 때문에 주인공들은 구조를 탓하지 않는다. 빡고에게 무참한 굴욕을 당했던 호빈은 빡고가 아닌 자신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며 특훈에 돌입하며, 억울하게 죽은 진우는 안철에게 복수하기보단 안철이 자기 대신 ‘인생존망’ 사건들을 막아 자기 삶을 복구해달라고 요구한다. 사실 가해자였던 인물이 과거의 피해자 몸에 들어가 자신의 격투 기술로 피해자의 인생을 구제한다는 설정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기만적이기 짝이 없다. 주인공에게 ‘이 정도 능력만 있었으면’이라는 가정을 통해 진행되는 ‘사이다’ 서사는 그 정도 능력이 없는 인물들을 위한 전망을 남기지 않는다. 언더독의 반란을 그리지만 전복적인 건 고사하고 가장 전형적인 능력주의로 회귀한다. 약자는 ‘노오력’이 부족한 것이며, 여성은 남성에게 빌붙거나 미모를 팔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한다. 악인을 징벌하는 쾌감에 몰두함에도 그의 작품들이 윤리적 성찰을 조금도 남기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재밌으면, 독자들이 좋아하면, 조회수가 잘 나오면, 그걸로 된 걸까.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다. <싸움독학>에서 빡고의 폭력적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던 90만 구독자가 바로 그 폭력의 구조를 이루는 존재들이었다고. 여기에 공감하고 재미를 느끼는 것이 시대정신이라면, 이 사회가 병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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