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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휘발한 역사의 자리에 남은 스타일

<남산의 부장들>이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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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과 스릴을 빛과 그림자의 명암으로 강조하는 <남산의 부장들>은 역사에 초점을 맞추되 워낙 두드러진 스타일로 해당 역사를 직시하기보다 분산한다.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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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한 장면

 

 

(* 결말과 관련한 디테일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과 경호실장 차지철을 권총으로 살해한 10ㆍ26 사태는 영화화된 적이 있다. <그때 그 사람들>(2005)이다. 한국사의 민감한 소재라고 할 수 있는 10ㆍ26을 다루는 데 있어 <그때 그 사람들>은 블랙코미디의 감성으로 이 사태가 발생한 배경에 관한 감독의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남산의 부장들> 은 어떨까.

 

동명의 논픽션을 영화화한 <남산의 부장들> 은 10ㆍ26을 전후한 40일간을 살핀다.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의 대통령(이성민) 암살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40일 전으로 시간을 돌려 전(前)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이 미국의 청문회장에 출석해 18년간 이어진 한국 대통령의 일인 독재의 실태를 고발한다. 이를 몰랐던 청와대에서는 후폭풍을 막기 위한 밀실 회의가 급하게 소집된다.

 

빨리 해결하라는 대통령의 닦달에 김규평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의 발등에 떨어진 충성 경쟁이 뜨겁다. 김규평이 박용각을 회유하여 조용히 해결해야 한다고 하자 곽상천은 제거를 주장해 대통령을 부추긴다. 국내 상황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여서 야당의 김영삼 대표는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고 부산과 마산에서의 학생 운동 또한 심상치 않다. 이 사안을 두고도 실용파 김규평과 강경파 곽상천은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대립한다.

 

<남산의 부장들> 이 당시 정권의 실체는 물론 남산의 중앙정보부와 그 소속원에 관심을 두는 것은 ‘스타일’이다. 우민호 감독은 조직 논리와 다를 바 없는 정경언 유착의 음모와 배신을 버디 무비로 풀어낸 <내부자들>(2015)과 전설적인 범죄자의 흥망성쇠를 다룬 <마약왕>(2018)으로 유명하다. 이들 영화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1990)과 같은 범죄물의 스타일에 영향받은 바가 크다.

 

김규평의 페도라와 트렌치코트와 포마드로 넘긴 머리가 스타일리쉬한 첩보원의 전형을 보여주는 <남산의 부장들> 도 우민호의 관심사가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1967), 코폴라의 <컨버세이션>(1974)과 같은 전설적인 범죄 영화와 비극적 한국사의 결합에 있음을 노골화한다. 그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스릴을 빛과 그림자의 명암으로 강조하는 <남산의 부장들> 은 역사에 초점을 맞추되 워낙 두드러진 스타일로 해당 역사를 직시하기보다 분산한다.

 

 

사진2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jpg
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남산의 부장들> 이 10ㆍ을 다룸으로써 의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유의미한 질문이라고 보는 건 10ㆍ26을 야기한 당시 세력의 그림자가 여전히 오늘날의 광장에서 보수의 유령으로 배회하고 있어서다. 장르 스타일로만 소비하기에는 이 배경이 지닌 해당 역사의 재해석, 재평가와 같은 생산적인 논의 (혹은 논란)의 가능성이 아쉽다. 같은 소재를 다루고도 <그때 그 사람들>이 3분 50초 분량의 기록 화면을 삭제 ‘당한 것’과 달라진 시대 분위기에서 <남산의 부장들> 은 과연 어떤 발언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김규평이 대통령과 곽상천을 권총 살해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어 <남산의 부장들> 이 이어붙이는 건 김규평의 실제 인물 김재규가 법정에서 10ㆍ26에 관한 최후 진술을 하는 기록 화면이다. “10ㆍ26은 이 나라 건국이념이요, 국시인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하여 혁명한 것입니다.” 운운하는 진술은 10ㆍ26을 김규평과 곽상천의 알력다툼으로 풀어가는 영화의 입장과는 다르다. <남산의 부장들> 이 충돌하는 두 장면을 몽타주 해서 관객에게 전달하는 의미는 김규평을 우회한 김재규 ‘개인’의 자기합리화다.   

 

거대한 역사적 사실을 개인의 차원으로 축소하는 <남산의 부장들> 의 전개는 10ㆍ26은 물론 사태 당사자들에 관한 의견이나 해석을 의도적으로 휘발하여 스타일만 남긴 채 가볍게 소비하는 인상이다. 곽상천 쪽에 서서 김규평과 선을 긋다 대통령 자리가 공석인 상황에서 잇속을 챙기는 보안사령관 전두혁(서현우)의 좀도둑적인 행보로 전두환을 조롱하는 건 과거의 역사를 현재로 불러들인 영화의 태도치고 소심하다.

 

전 국민적인 희화화의 대상이 된 인물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더 하는 건 <남산의 부장들> 이 역사를 바라보는 영화적 상상력의 수준이다. <남산의 부장들> 을 보면서 관객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가명으로 등장하는 10ㆍ26 주요 당사자들의 이름을 실제와 맞춰보는 딱 그 정도다. 이 영화를 향한 호평의 글과 목소리가 많다. 스타일리쉬한 감독의 연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향한 상찬이 절대적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남산의 부장들> 이 10ㆍ26에 관해 취하고 있는 입장에 대한 의견이나 평가가 보이지 않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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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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