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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윤리적 딜레마는?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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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8.21 조회수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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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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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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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6위, 글쓰기, 화법 1위, 국어, 한문 9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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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이고,

딜레마란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곤란한 상황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윤리적 딜레마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상황 앞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곤란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삶에 대하여 위키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1926∼1980년. 한국의 군인·행정관료.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 중인 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 만찬회 석상에서 대통령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 등을 권총으로 사살,

‘10·26사태’를 일으키고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체포된 후 1심 재판의 최후변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살한 이유를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여론이 많았고,

김재규 전 정보부장의 이 변론에 대해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재규 전 정보부장은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김재규 전 정보부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향 후배(경북 구미)이자

육군사관학교 2기 동기였습니다.

김재규 전 정보부장은 1961년 5.16 정변 때는 반혁명분자로 몰려 체포되기도 했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석방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승승장구를 하였고,

6.3사태 때는 계엄군을 잘 통솔하였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기도 했고요.

전역 후에는 유정회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중앙정보부장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면서 고위직을 역임했고요.

자신을 신임하고 배려해준 사람을 사살했다는 점에서

배은망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도 그점에서 부담이 되었을 것이고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윤리적 딜레마는

'대의를 위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살할 것인가,

개인적인 관계를 생각하고 자신이 조용히 물러날 것인가...

상당한 고민을 했을 것' 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민주주의를 위해서나, 국민의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다고 해도

꼭 그렇게 했어야 하나, 라는 점을 여러 번 망설이다가

결국은 실행을 했으리라고 봅니다.

지식iN 교육기부 참여로 작성된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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