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데이먼(왼쪽)과 크리스천 베일 두 남자가 만든 감동 스토리 포드 V 페라리. 사진 월트 디즈니 코리아
맷 데이먼(왼쪽)과 크리스천 베일 두 남자가 만든 감동 스토리 포드 V 페라리. 사진 월트 디즈니 코리아

1960년대는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화려하고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부흥기를 맞았고 이에 따라 자동차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마니아 사이에서 회자하는 사건이 많았던 시기도 1960년대인데, 최근 개봉한 영화인 ‘포드 V 페라리(2019)’에 그 치열했던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다. 물론 영화의 특성상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일련의 사건이 극적으로 가공되긴 했지만, 배경과 디테일 재현이 굉장히 뛰어나다.

‘포드 V 페라리’는 모터스포츠를 통해 자동차 제조 기술력을 경쟁하던 시절을 그리고 있다. 맷 데이먼(캐롤 셸비 역)과 크리스천 베일(켄 마일스 역)을 중심으로 세계 최고 내구(耐久)레이스(장시간·장거리 대회)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경쟁했던 포드와 페라리의 혈전은 모터스포츠 마니아라면 충분히 흥미를 느낄 만한 소재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레이스 혹은 자동차 마니아를 위한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두 남자의 치열한 삶과 레이스를 통해 불가능한 목표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르망 소재의 영상이 상당히 많이 제작됐지만, 스타급 배우를 대거 기용해 대중성을 추구한 영화는 이 영화가 유일하다.

당시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시장은 상황이 아주 달랐다. 베이비붐 세대 중심의 대중적인 시장을 공략하는 포드와 레이스에 모든 것을 건 페라리의 상황은 각 대륙의 시장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 텍사스 출신이면서 유럽에서 레이스에 참가했던 셸비가 화자로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미국과 유럽, 대중차 메이커와 레이스 중심 메이커의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빈 카운터스(Bean Counters·기업에서 숫자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라 불리는 숫자쟁이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미국을 대표하는 포드는 대중성과 대량 생산 영역에서 입지를 다졌지만 강력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한 방’이 부족했고, 레이스에 모든 것을 집중한 페라리는 늘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모터스포츠 마케팅을 선택한 포드가 페라리 인수를 준비하면서 영화에서 가장 주된 사건이 시작된다.

당시 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는 포드 창업자 헨리 포드를 무시하고 협상을 전면 백지화한다. 극 중 페라리 회장은 지금까지 그가 등장했던 영화(다큐멘터리나 전기 영화 제외) 중에 가장 대사가 많다. 자막이 없는 이탈리아어는 그 뉘앙스만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이탈리아어 전공자의 의견에 따르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거만한 표현을 대거 사용했다고 한다.

거절당한 포드는 페라리가 이름을 날리고 있던 레이스, 그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페라리를 꺾을 계획을 세운다. 포드와 협상이 결렬되자마자 페라리는 훨씬 좋은 조건으로 (엔초 페라리의 요구가 거의 수용된) 유럽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피아트에 인수된다.


1967년 데이토나의 골인 장면. 엔초 페라리는 이 사진을 평생 자신의 사무실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 사진 FMK
1967년 데이토나의 골인 장면. 엔초 페라리는 이 사진을 평생 자신의 사무실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 사진 FMK
켄 마일스 역의 크리스천 베일이 직접 레이싱 교육을 받아 현실감을 높였다. 사진 월트 디즈니 코리아
켄 마일스 역의 크리스천 베일이 직접 레이싱 교육을 받아 현실감을 높였다. 사진 월트 디즈니 코리아

경주장에서 뒤바뀐 포드와 페라리의 운명

포드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출전하기 위해 아예 새로운 경주차를 제작한다. 영국의 롤라카에서 만든 섀시에 포드의 엔진을 올린 이 차는 셸비와 마일스의 손에서 다듬어진다. 이 차가 바로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역할을 하는 포드 GT40이다. 사실 GT40은 정식명이 아니다. 정식 명칭은 포드 GT인데, 이 차의 높이가 40.5인치에 불과해 붙은 별명이다. 첫 모델인 Mk I은 1964년 레이스에 데뷔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잦은 고장으로 완주율도 낮았고 포드가 생각했던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포드 GT40은 Mk II로, 전 모델과 가장 큰 차이는 엔진이다. 셸비가 선택한 엔진은 427 큐빅인치(7.0ℓ) V8 엔진으로, 출력을 올리고 Mk I의 문제점을 해결한 모델이다. 셸비와 마일스가 다듬은 GT40은 결국 1966년 르망 24시간 레이스 우승을 차지한다. 안타깝게도 마일스는 1위로 들어왔지만 최종 주행 거리에서 2위로 들어온 같은 팀의 부르스 맥라렌보다 약간 뒤지면서 공식 결과는 2위를 기록했다.

포드를 도발했던 페라리는 출전 차 모두 레이스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 영화에서는 페라리 회장이 경기장을 찾는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 기록에 따르면 1966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페라리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경기장과 피트를 재현한 디테일은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

영화에서는 남자들의 끈끈한 도전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셸비를 중심으로 마일스와 그의 아들인 피터, 부인인 몰리를 비롯해 훗날 크라이슬러를 재건하는 일등 공신인 리 아이아코카, 포드 2세 등이 각기 다른 방식의 삶을 보여 주는데 영화의 흐름과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 많은 사람의 공분을 자아냈던 포드의 부사장이자 레이스 부서의 책임자 레오 비비는 실제 모습과 매우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얄미운 비비를 통해 자동차 산업의 모순적이고 복잡한 의사 결정 과정, 성과와 보여 주기에만 집착하는 빈 카운터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포드는 1966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원하던 바를 달성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면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진짜배기들이 모여 이룬 결과다. 르망에서 미국 자동차 메이커가 최고 클래스에서 1위부터 3위까지 차지한 사례는 1966년이 유일하고 이 기록은 현재도 유효하다. 반면 클래스 구분 없이 최다 우승 기록은 포르셰가 가지고 있다.

포드 GT40의 아성은 한동안 계속돼 1969년까지 무려 4년간 르망 24시간 레이스의 왕좌를 지켰다. 이를 갈던 페라리는 1967년 미국의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에서 1966년 포드가 르망에서 얻은 결과를 그대로 재현해 복수에 성공했다고 한다.

영화 막판에 나오지만 마일스는 1967년 GT40의 후속작인 J카를 테스트하던 도중 사망했다. 마일스는 성격이 괄괄하긴 했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것과는 매우 다르다고 한다.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는 충실한 가장이었으며 셸비의 파트너이자 포드의 레이스 테스트 드라이버로 활동하면서 괜찮은 성과를 안겨 주었다고 한다. 영화에서처럼 포드 경영진과 마찰은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