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발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란…정말 엄벌만이 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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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18. 오전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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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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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게티이미지뱅크


“중대한 학교폭력에 엄정 대처하고, 가해 학생의 재발 방지를 위해 가해 학생 교육을 강화하겠습니다.”

설 연휴를 열흘 앞둔 지난 15일, 교육부가 ‘제4차 학교폭력 예방 및 기본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올해부터 2024년까지 학교폭력을 예방·대응하는 학교의 교육적 역할이 강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특히 중대한 학교폭력에는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정부 기조에 따라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관련기사: “형사 미성년 14살→13살 하향 추진” 교육부 ‘학폭 예방대책’ 실효 논란)

촉법소년은 만 10살 이상 만 14살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로서, 형벌을 받을 범법행위를 했지만 형사책임능력이 없어 형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받게 되는 이를 말합니다. 보호처분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1호처분 : 만 10살 이상, 6개월 보호자 또는 대리인의 감호 위탁, 6개월 연장 가능, 2·3호 처분과 병행 가능

-2호처분 : 만 12살 이상, 100시간 이내 수강명령

-3호처분 : 만 14살 이상, 200시간 이내 사회봉사명령

-4호처분 : 만 10살 이상, 1년 미만 단기간 보호관찰

-5호처분 : 만 10살 이상, 2년 미만 장기간 보호관찰, 1년까지 연장 가능

-6호처분 : 만 10살 이상, 6개월 소년복지시설 위탁, 6개월 연장 가능

-7호처분 : 만 10살 이상, 6개월 병원, 요양소, 소년의료보호시설 감호 위탁, 6개월 연장 가능

-8호처분 : 만 10살 이상, 최대 1개월 단기 소년원 송치

-9호처분 : 만 10살 이상, 최대 6개월 단기간 소년원 송치

-10호처분 : 만 12살 이상, 최대 2년 장기간 소년원 송치

※4·5호 처분의 보호관찰은 전국 12개 보호관찰소와 6개 지소에서 담당, 보호관찰관은 관찰 대상자의 특정시간대 외출을 제한하는 등의 조처 가능



교육부는 만 14살 미만으로 정해진 촉법소년의 상한 연령을 만 13살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 연령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게 그 배경입니다. 교육부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초등학생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2017년 2.1%에서 2018년 2.8%, 2019년 3.6%로 높아졌습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청소년 강력범죄도 촉법소년 연령 하향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말 경기 구리시에서 한 여자 초등학생이 또래 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경찰은 가해 여학생이 촉법소년이어서, 사건 직후 간단한 조사를 거친 뒤 가족에게 인계했습니다. 앞으로 이 여학생은 형사상 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받게 됩니다.

2018년에는 인천의 한 주택에서 13살 여중생이 성폭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가해자인 남학생 2명 역시 촉법소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벌’ 요구가 높아진 바 있습니다. 같은 해 발생한 이른바 ‘관악산 집단폭행’ 사건도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이 사건은 청소년 10명이 “센 척을 한다”는 이유로 서울 노원구의 한 노래방과 관악산에서 각목 등으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을 집단폭행한 사건입니다. 피해자의 가족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진 이 사건은, 폭행에 가담한 10명 가운데 1명이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서울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되면서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나머지 가해 학생 9명 가운데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7명은 실형을, 불구속 재판을 받은 2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6년 전인 2014년에는 부모가 숨진 13살 소년이 자신을 키워준 고모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소년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숨졌고,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소년은 동생과 함께 고모 집에 살았는데, 평소 게임에 빠져 고모로부터 야단을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 소년은 범행 직후 고모의 휴대전화로 지인들에게 “여행을 가니까 나를 찾지 말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만, 이를 받고 이상하게 여긴 지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 소년 역시 사건 당시 촉법소년이었습니다.



사실 정부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우선 2007년 12월 촉법소년의 하한 연령이 기존 12살에서 10살로 낮춰졌습니다. 2018년 ‘관악산 집단폭행’ 국민청원 동의자가 20만명을 넘자 김상곤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3살 이후 범죄가 급증한다면 형사미성년자 (상한) 연령을 13살 미만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곧이어 법무부는 같은 해 12월 ‘제1차 소년비행 예방 기본계획(2019~2023)’을 발표하면서 촉법소년 연령을 만 13살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을 처음으로 공식화했습니다. 여기에 현재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소년법 개정안만 30건에 가깝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형사미성년자 기준 하향’이나 ‘수월한 신병확보’ ‘강력범죄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편집국에서] ‘○○○법’이 가로막고 있는 것들)

이런 정부와 정치권 움직임에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실제 소년범 가운데 촉법소년 비율은 극소수라는 겁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를 보면, 2007년부터 2016년 사이 전체 소년범죄 가운데 만16~18살 소년범의 비율은 평균 20%대로, 꾸준히 높았습니다. 하지만 만 14살 미만 소년범의 비율은 2010년 이후 1%를 밑돌았습니다. 언론이 촉법소년 사건을 ‘이례적’인 사건으로 바라보고 주요하게 다루면서, 이런 사건이 실제보다 많이 일어나는 것처럼 여기는 일종의 ‘착시효과’를 일으킨 셈입니다.

소년범죄 가운데 흉악범죄 비율도 극히 낮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소년부 재판을 맡았던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사실 전체 소년사건 중 흉악범죄는 1%다. 이 때문에 나머지 아이들이 조기에 낙인찍혀 전과자로 살아가는 사회적 측면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원훈 법무부 대전소년원 담임도 2018년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보호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간 아이들 가운데는 생계형 절도와 사기, 폭행, 도로교통법 위반, 성범죄, 점유이탈물 횡령 등이 많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촉법소년이 만들어지는 사회적 배경을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천종호 부장판사는 “비행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가정 형편이 좋지 않다. 한무보 가정, 부모에게 방치된 아이들, 가출한 아이들이다. 지금 소년사건 80%는 전부 학교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관련기사: 촉법소년 논란 “국가, 피해자 보호의무” vs “소년사건 흉악범죄 1% 불과”)

이러다 보니 촉법소년 연령 하향의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전경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장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 시도는) 교육적인 의미나 사법적인 효과를 제대로 따졌다기보다, 국민적 분노를 달래기 위해 여론에만 치우쳐 세운 계획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018년 12월 촉법소년 연령 하향 움직임에 우려 의견을 내놓고 ‘엄벌주의’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인권위는 이들의 높은 재범률에 집중했습니다. 인권위는 당시 의견서에서 “소년범죄자 가운데 과거 전과가 있는 비율이 40% 내외인 만큼 소년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재범률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청소년이 다시 범죄에 노출되는 환경을 개선하는 등 재범방지 중심의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관련기사: 인권위, 소년 범죄 엄벌주의에 제동…“실효적 대안 아니다”)

이에 더해 인권위는 가해자 처벌에만 급급해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권위는 “비공개로 진행되는 소년보호 사건 심리에 피해자나 그 법정 대리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절차참여권 및 알 권리를 보장하고, 수사 단계에서 심리치료 지원과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지원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원훈 대전소년원 담임은 기고글 끝머리에서 이같이 썼습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추진하겠다는 교육부가 다시 한번 읽어보길 바랍니다.

(▶관련기사: [왜냐면] 소년원 처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소년부 법정에는 소년과 보호자, 법원이 선정한 국선 보조인이 함께 선다. 범죄의 책임을 소년에게만 묻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와 국가의 책임도 통감해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낡은 속담이 아니다. 대안 없는 무책임한 엄벌만을 주장하기 전에, 그동안 기성세대와 사회가 위기 청소년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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