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서 도너츠 뺀 던킨, 커피 빼는 스타벅스… 작명의 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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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09. 오후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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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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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기업 개명 트렌드는 단순화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나?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향기롭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아, 그대의 이름은 왜 (가문의 원수인) 몬테규인가”라고 한탄하는 줄리엣에게 로미오가 한 말이다. 로미오에게는 별것 아니었겠지만, 현대 기업엔 이름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기업이나 브랜드를 어떻게 작명(作名)하느냐가 매출과 이미지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던킨도너츠는 지난 8일부터 '도너츠'를 뺀 던킨(Dunkin')으로 공식 BI(로고)를 변경했다. 던킨 관계자는 "도넛 전문 브랜드라는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고, 브랜드의 확장을 이루기 위한 변화"라며 "커피와 함께 즐기기 좋은 도넛은 물론 핫 샌드위치 등 간편식 메뉴를 함께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던킨 미국 본사는 이미 지난해 9월 던킨으로 개명(改名)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기름에 튀긴 도넛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비즈니스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도넛을 버린 것"이라며 "어차피 현재 던킨 매출의 60%가량이 도넛이 아닌 커피 등 음료 판매에서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고 했다.


던킨처럼 최근 기업 개명 트렌드는 '단순화'다. 이름이 짧고 단순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고, 사업 확장이 쉽다. 던킨이 도너츠를 버린 것처럼, 스타벅스도 2011년부터 로고에서 커피는 물론 스타벅스까지 글자를 모두 빼고 세이렌(그리스 신화 속 바다 요정) 이미지만 남겼다. 성숙기를 통과한 커피시장을 넘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전략이다. LG패션은 2014년 LF로 사명을 바꿨다. 단순히 옷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 걸친 생활문화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였다.

단순하고 짧은 이름은 디지털시대에 특히 적합하다. PC·노트북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작은 화면에서도 쉽게 인식되는 간결한 이름의 효용성이 더욱 높아졌다. '다음커뮤니케이션&카카오→ 다음카카오→카카오'가 대표적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영대 와튼 스쿨 칼 울리히(Ulrich) 교수는 "(영어 이름의 경우) 알파벳 문자 10개 이상이면 인터넷 트래픽이 평균 7% 떨어지며, 문자가 하나 더해질 때마다 추가로 2%씩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알파벳 문자 7개 이하 짧은 이름이 이상적"이라고 했다.

국내 와인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짧고 쉬운 이름이 대세였다. 한 와인 수입사 대표는 "독일 와인이 품질과 가격에 비해 국내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도저히 발음이 불가능해 보이는 길고 난해한 독일어 이름이 큰 걸림돌"이라면서 "프랑스·이탈리아·칠레 등 외국 와인 생산업체에 한국 수출용 와인만 특별히 짧고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라벨을 바꿔 붙여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시대에 따른 기업 이미지 변신일 때도 있다. LG처럼 국내 기업들이 영어 이니셜로 변경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아모레퍼시픽은 해외시장으로 진출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태평양화학공사'에서 2011년 개명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 지난 1991년 머리글자만 딴 두문자어(頭文字語) 'KFC'로 개명한 것도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 '프라이드(튀김)'가 부각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잘 풀리지 않는 연예인이 개명하듯, 부정적 사건사고·재난·스캔들 등 부정적 여론에서 벗어나 재기하기 위한 몸부림일 때도 있다. 미국 저가항공사 밸류제트(ValuJet)는 1996년 탑승객 100명 전원이 사망한 비행기 추락 사고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어트랜(AirTran)으로 이름을 바꿨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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