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윤청신 기자]

KBS 1TV '가요무대'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1월 27일 오후 10시 방송되는 '가요무대'는 김수희, 설운도, 주현미, 김연자, 금잔디, 김정수, 문성재, 진성, 유라, 박상철, 하남석, 김경남, 마이진, 차오름, 우연이, 윤쾌로, 우설민, 김범준 등이 출연해 다양한 무대를 꾸민다.

이날 첫 무대를 장식한 김수희는1953년생으로 올해 나이 예순 여덟살이다. 부산 출신으로 1972년 미8군 '블랙캐츠' 여성보컬 그룹 리드싱어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남석훈의 1984년 영화 '너무합니다'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90년에는 영화사 '희필름'을 설립했고, 1994년 '애수의 하모니카'로 감독 데뷔했다.

'애수의 하모니카'는 김수희가 자작 시나리오로 연출한 작품으로, 도박판의 욕망과 사랑을 다룬 영화로 김병세, 고정민, 오진혁, 남석훈, 김정철, 이영옥, 시니마 트랜트(Cinima Trant), 봄스 챠콘(Boms Chacon) 등이 출연했다.

데뷔작 이후에는 영화작업을 더이상 지속하지 않고 가수 활동에 전념했다.

대표곡으로는 '애모', '남행열차' 등이 있다. 대마초 사건에 휘말리는 등의 통풍도 있었으나 혜은이, 이은하 등과 아울러 1980년대 디바 트로이카로 자리매김했다.

1978년, 자신의 데뷔 음반에 수록되었던 블루스 곡인 '너무합니다'가 시대적 환경의 영향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갑자기 자신의 노래가 주목을 받게 되자 얼굴없는 가수가 되었지만 이 노래를 부른 가수를 대중들이 찾기 시작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음악제작자가 김수희를 찾게 되었다.

김수희는 가수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에 대한민국의 유명한 명창 박초월에게 남도 창법을 배우는 등 다양한 창법을 연구하였으며 1982년 '멍에'를 발표했다. '멍에'가 히트하면서 정상급 가수로 떠올랐다.

1984년에는 소설 '설(雪)'을 집필하여 출간해 베스트셀러 2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 해에 〈잃어버린 정〉으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여 본격적으로 인기 가수 대열에 들어섰다.

김수희는 주로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가미한 서정적이고 분위기 있는 노래만 부르다가 1986년에 기존의 노래들과 달리 빠른 템포의 트로트곡인 '남행열차'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여 현재도 사랑받고 있다.

이 때 기존의 창법 위주보다는 자신만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여 최고의 인기를 얻었으며 대학교 응원가, 야유회의 필수 노래로 자리잡았으며 대학로 성인 팬을 몰고다녔으며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이 노래는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국민 가요로 선정되었다. 또한 그 당시에 여자 조용필이라고 불릴 만큼 상당한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여자 조용필"이라는 닉네임으로 명성을 다진 그녀는 1989년에는 일본에 진출하였고, 1991년 '애모'를 발표하면서 팝 발라드 음악으로 전향했다.

특히 이 곡은 발표 당시 처음에는 그리 주목받지 않다가 2년 후인 1993년 갑자기 대중들의 많은 요청으로 19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던 김건모, 신승훈과 신예 아이돌 힙합 댄스 음악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등의 신인 가수들을 제치고 인기를 크게 얻어 KBS 가요대상 대상과 MBC 10대 가수가요제 대상을 수상해 이색적인 결과를 낳았다.

1994년에는 영화계에도 진출하여 영화 《애수의 하모니카》의 시나리오를 직접 제작하고 영화 감독까지 맡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희프로덕션을 설립해 음반 제작자로도 활동하면서 신신애를 가수로 스카우트하고 무명이었던 편승엽을 유명세를 타게 해 주었다.

김수희는 다른 가수들과는 차별성이 있는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허스키한 목소리와 풍부한 가창력을 겸비한 자신만의 방식과 다양한 국악 창법이 어울러져 사람들이 따라할 수 없어 모창이 없는 가수로도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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