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폭로에 원종건 불출마…‘이벤트 영입’ 민주당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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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1.28. 오후 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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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씨, 의혹 부인했지만 “책임 엄중”
민주 “검증단계서 인지 못해” 사과
영입 논란 잦아 “내부 육성 힘써야”
미투 논란 의혹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2번째 영입인재인 원종건씨가 2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더불어민주당이 ‘영입인재 2호’로 발탁한 원종건(27)씨가 ‘미투’(Me too) 고발이 나온 지 하루 만에 총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총선을 앞두고 ‘이벤트성 깜깜이’ 외부 영입을 경쟁적으로 벌이다, 정작 예비 공직후보자 발탁에 필수적인 ‘검증’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내에선 보여주기식 외부 수혈에만 몰두하지 말고 청년·여성 정치인을 내부에서 육성하는 정당 본래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원씨는 2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자신의 옛 여자친구가 커뮤니티에 올린 미투 폭로와 관련해 “아무리 억울함을 토로하고 사실관계를 소명해도 지루한 진실공방 자체가 (당에) 부담을 드리는 일”이라며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원씨는 “올라온 글은 사실이 아니다.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려 참담하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도, “민주당에 들어와 남들 이상의 주목과 관심을 받게 된 이상 엄중한 책임과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앞서 27일 낮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원씨의 옛 여자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누리꾼이 “원씨는 저를 지속적으로 성노리개 취급을 해왔고, ‘여성혐오’와 ‘가스라이팅’(가해·피해 상황을 조작해 상대방이 판단력을 잃게 하는 정서적 학대행위)으로 괴롭혀왔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논란이 불거진 뒤 언론과 접촉을 피해온 원씨는 이튿날인 이날 기습적으로 입장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은 받지 않고 퇴장했다. 외부인사 영입에 관여해온 김성환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은 “검증 단계에서는 관련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 영역까지 우리가 검증을 할 수 있는지를 미리 염두에 두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민주당이 원씨 영입을 발표할 당시 ‘시각장애인 모친을 극진히 보살펴온 흙수저 청년’이란 점을 집중 부각했던 만큼, 원씨의 낙마는 당의 이미지에도 적잖은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사무총장 산하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에서 원씨 논란과 관련한 사실관계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이날 논평을 내어 “원씨와 관련한 문제제기는 사태가 터지기 전에 소문이 돈 바 있다. 여당 지도부가 이 문제를 가벼이 여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실제 원씨를 둘러싼 논란은 영입 직후부터 불거졌지만, 당에서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결국 피해자 주장이 공론화되고 나서야 ‘총선 불출마’로 수습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문제없나’ 확인하는 수준…자질 논란 불거져

민주당이 ‘인재’란 이름으로 영입한 이들이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호 인재’로 발탁한 소방관 출신 오영환(31)씨는 입당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부정입학 논란을 두고 “학부모들이 관행적으로 해왔던 행위인데 지나치게 부풀려서 보도됐다”고 말해 비판을 자초했다. ‘8호 인재’였던 이소영 변호사는 ‘전문변호사’로 등록하지 않고도 과거 환경전문변호사로 활동해 대한변호사협회 규정을 어긴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더해 양승태 사법농단을 밝힌 이수진 전 판사가 ‘13호 인재’로 영입되면서, 판사의 정치권행을 놓고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미투 논란을 계기로 외부 영입 인사들에 대한 부실 검증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민주당은 소속 의원들과 당 관계자들에게 추천을 받거나, 온라인 검색을 통해 특정 분야에서 평가가 좋은 인물을 찾아 의사를 타진하고 설득하는 방식으로 영입을 진행하고 있다. 후보자가 추려지면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해찬 당대표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등 극소수 관계자와 함께 후보자와 최종 면접을 진행한 뒤 영입 여부를 결정하는데, 사생활 문제는 당사자에게 구두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한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이날 “(미투 논란은) 영입 당시에는 확인이 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개인 사생활이라 본인이 이런 문제가 있다고 먼저 밝히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내용이다”라고 했다.

■ ‘이벤트성’ 인재영입 자체가 근본 문제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영입 발표 직전까지 보안을 유지하는 탓에 지인 등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한 평판 조회도 어렵다. 영입 과정을 잘 아는 핵심 관계자는 “검증은 온라인 검색과 영입 후보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정도를 살펴보는 수준이다. 후보자 면접과 온라인 검색 이외에는 사실상 검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영입에 필요한 서류도 보안 유지를 위해 공식 루트 없이 추천인 관계자를 통해 당에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차원의 공식 영입이 마무리되면, 뒤늦게 오점이 발견되더라도 문제 제기가 어렵다. 한 민주당 의원은 “영입과 관련한 내용은 사전에 총선기획단이나 최고위원회 등 공식 기구에서 공유되지 않는다. 설령 문제를 접한다 하더라도 피드백을 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실제 민주당에서는 영입 이벤트 초반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깜깜이’가 아닌 ‘공모’ 방식으로 인재를 찾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지도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벤트성 외부 영입이 이어지면서 정작 당에서 오래 활동해온 내부 인사들의 공직 후보 진출 기회는 좁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의원은 “외부 영입은 대상자 개인의 정치 역량을 알기 어려워 정치인을 충원하는 채널로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당에서 경험과 역량을 쌓고 능력을 검증받은 청년·여성·장애인 당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금비 서영지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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