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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만파식적 설화 어떻게 민심을 통합? (내공100)

통일신라 신문왕 때의 만파식적 설화의 의의를 찾아보니

"이 설화에는 신라가 삼국통일 이후, 흩어져있던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했던 호국사상이 담겨져있다."라고 하는데

이 설화로 어떻게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할 수 있었던 것인가요?????

간단하게라도 괜찮으니까 설명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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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3.24 조회수 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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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나 고구려 유민들이 서로 나눠지지 않고 하나되어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

농업생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가뭄이며, 홍수의 영향은 미약하다. 고대에는 곡저평야에 경작지를 만들며 하천 범람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에 도시와 마을을 조성하였으므로 대부분의 홍수가 파괴적인 재해는 아니다. 메뚜기 떼는 가뭄이 발생한 시기에 출현하는 빈도가 높다. 고대의 전염병은 기근, 홍수, 가뭄과 관계없이 발생한다. 당시에는 수인성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하였으며, 삼국통일 이후 도시화로 인해 수도인 서라벌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전염병의 발생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신라 천 년 동안의 가뭄 현상은 두 번의 주기가 인정되며 대략 500년의 시간 간격으로 발생한다는 결론은 매우 흥미롭다. 
 삼국사기 등 고대의 정확한 천재지변의 기록은 고대과학의 발달을 가져와 일식(14.8년)·가뭄(9.2년)·지진(10.3년)등의 주기 산출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논문을 본 적도 있다. 실제로 부경대 변희룡 교수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세 문헌 중에서 가뭄에 대한 기록들의 빈도수를 분석하여 가뭄주기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6년, 12년, 38년 그리고 124년의 총 4단계의 주기가 있고 마지막 주기인 124년은 극한가뭄의 주기에 해당된다. 올해는 38년 가뭄의 정점기이고 124년 주기의 시작기에 해당되는 해라는 주장이다. 가뭄주기설로 본다면 올해 2015년은 최악의 가뭄을 맞을 수밖에 없는 해인 셈이다. 
 전염병은 또 어떤가. 고대 신라에서도 도시의 인구집중화가 전염병의 지속적 증가 원인이었듯이 현재 대한민국을 공포로 내모는 전염병 중동호흡기증후군 역시 인구집중이 과밀화된 수도권에서 비롯되었고 환자 발생의 빈도수도 높다는 면에서는 고대 신라의 상황과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 
 다만 이러한 가뭄과 같은 천재나 전염병과 같은 재앙에 대처하는 태도는 과거와 현재가 판이하다. 신라인들은 이러한 천재지변 중에서도 혜성·일식·지진·가뭄·용 등은 정치적인 면에 큰 영향을 주는 조짐으로 해석했고 특정 사건에 대한 예고라고 판단했고 믿었다. 따라서 지배층에게는 그에 대응하는 상당히 정치적이고도 현실적인 대책이 요구되었다. 또는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나 전염병을 물리치고자 행사하는 상징적이고도 종교적인 제의 등이 시행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 전혀 새로운 해법이 하나 있었다. 신라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감은사를 짓고 추모하는데, 죽어서 동해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외적은 물러나고, 질병이 사라졌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땐 날이 개는 등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져 버렸다. 바로 만파식적 설화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흩어져 있던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 했던 호국 사상과 모든 정치적 불안이 진정되고 평화가 오기를 소망하는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는 설화이다. 


지식iN 교육기부 참여로 작성된 답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