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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에 대하여...

 화요일 까지 1.만파식적의 시대

                    2.만파식적의 유래

                   3.만파식적의 쓰임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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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rsef****
작성일2011.10.31 조회수 11,790
질문자지식인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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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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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도덕 42위, 과학 69위, 화장품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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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파식적의 시대

신라 신문왕

 

 2.만파식적의 유래

문무왕은 신라의 제30대 왕으로, 김유신과 함께 신라의 삼국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통일의 기틀을 단단히 하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게 되자,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는 동해의 용으로 태어나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에 아들인 신문왕은 아버지의 무덤을 동해 바다 작은 섬에 만들고, 무덤을 바라보는 곳에 감은사를 지어 문무왕의 큰 뜻을 기리고자 하였습니다.

이듬해 임오(壬午) 오월 초하루에 해관(海官) 파진찬 박숙청이 왕께 아뢰었습니다.
"동해 안에 있는 작은 산이 떠서 감은사로 향해 오는데 물결을 따라 왔다갔다 합니다."

왕은 이를 이상히 여겨 일관 김춘질에게 점치게 하였는데, 그가 말하기를
"대왕의 아버님(문무왕)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시어 지금 바다를 지키시고 또 김유신 공도 삼십삼천의 한 아들로서 지금 인간으로 내려와서 대신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이 덕을 같이하여 성을 지키는 보물을 내어 주시려 하니, 만약 폐하께서 해변에 행차하시면 반드시 값을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왕은 기뻐하여 그 달 칠일에 이견대에 가시어, 그 산을 바라보고 신하를 보내어 살펴보게 했습니다. 산의 모양은 거북의 머리와 같은데 위에는 한 줄기의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신하가 돌아와서 사실대로 아뢰니 왕은 감은사에 가시어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이튿날 오시에 대나무가 합해져 하나가 되자 천지가 진동하고 비바람이 일어나 어두컴컴해지더니 칠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달 십육일이 되어서야 바람이 잠잠해지고 물결이 평온해졌습니다. 왕은 배를 타고 그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때, 용이 나타나 검은 옥대를 받들어 왕에게 바치었습니다.

왕은 용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산의 대나무가 갈라지기도 하고 혹은 합해지기도 하니 무슨 까닭이냐?"

"비유해 말씀드리면 한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란 물건은 합쳐야만 소리가 나게 되므로 성왕께서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게 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께서는 대나무를 가지고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지금 왕의 아버님께서는 바다 속의 큰 용이 되셨고, 김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셔서 두 성인이 마음을 같이하여 이 같은 값을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저에게 주시어 저로 하여금 그것을 왕께 바치게 한 것입니다."

왕은 몹시 놀라고 기뻐하여 오색 비단과 금옥을 용에게 주고, 신하를 시켜 대나무를 베어 가지고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신문왕은 용의 이야기에 따라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습니다.
그러자 쳐들어 오던 외적이 물러나고, 질병이 사라졌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땐 날이 개는 등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때부터 그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부르며 국보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문무왕이 죽자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염려한 이들이 새 왕인 신문왕의 정통성을 널리 알리고, 그 세력을 굳게 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만파식적의 쓰임

나라의 근심걱정을 없애는데 쓰임

 

출처에듀피아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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