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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의뜻

급하게구합니다.

만파식적의 뜻이 뭔지 좀 알려주세요

대도록이면 일찍 부탁합니다

내공냠냠사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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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mo****
작성일2008.04.16 조회수 6,742
질문자지식인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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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식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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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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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지 파란을 잠재운다는 뜻의 신라시대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

 

 

 

 

 

삼국유사에 `신라 31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感恩寺)를 짓자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으로부터 대나무를 얻어 만든 피리'라고 실려있다.

 

신문왕이 동해에 나가 살펴보니 거북의 머리 모양을 한 산꼭대기에 대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대나무는 낮에는 둘로 갈라져 있다가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임금이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게 했다.

 

이 피리를 불자 몰려왔던 적군이 물러가고 앓던 병이 나았다. 가뭄에는 비가 왔고, 장마 때는 날이 갰고, 바람이 불 때는 바람을 잠재웠다. 그래서 `만파식적'이라는 이름을 붙여 역대 임금들이 보배로 삼았다는 것이다.

 

 
암투병중인 가수 길은정(43)씨가 길어야  6개월을 넘길지 모를 여생을 남겨두고 얼마전 새로운 음반을 냈다.
 
생애의 마지막이 될 이 음반의 제목이
`만파식적'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이 잠재워지기를 바라면서 노래를 직접 지었단다.
 

 

 “나 떠나도 멀리가도 눈물 흘리지마오. 하늘보고 나를 보고 이 노래를 불러요…”로 이어지는 노래말.... 시한부 삶을 노래로 아름답게 갈무리하려는 마음이 가슴에 찡하게 와 닿는다.

 

아름다운 사랑을 시작으로 극적인 결혼...사랑하기에 헤여진다는 개그같은 이별 후 법정까지 가는 원수로 발전한 부부관계.......누가 옳고 그름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의 짧은 생이 안타까우며, 같은 세대를 살아오던 한사람으로서 가슴 아플 뿐이다.

 

실패와 좌절감이 만재되어가고 있는 우리사회를 성취와 희열로 바꿔 놓을 이 시대의 `만파식적' 은 없는 걸까?

 

http://blog.naver.com/gosu1201?Redirect=Log&logNo=7479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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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째 답변
ke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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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의 뜻은 '모든 근심을 잠제우는 피리'라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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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답변
mg****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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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의 뜻..

대나무로 만든 피리...;;

'모든 근심을 잠제우는 피리'라는것입니다..

원래는.....

 

내공냠냠하려고했는데..

왠지 좀 그래서..ㅋㅋ

이렇게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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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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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유래와 전설

일종의 기도피리로서 삼국유사에 의 하면

 

신라 제 31대 왕인 신문왕이 자신의 아버지인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를 세우고

 

추모하였으나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용을 시켜 동해중 한섬에 대나무를 보내었고

 

이 대나무가 낮이면 갈라져 둘이되었고

 

밤이면 하나가 되어 기이하게 여겨져

 

왕이 가보니 이 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도 역시 합
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왕은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이 피리를 국보

로 삼았는데, 효소왕(孝昭王) 때 분실하였다가 우연한 기적으로 다시 찾게 된 후 이름

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고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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