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에 이재용 긴 한숨…앞으로 남은 과제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8년 2월5일 서울고법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의왕(경기)=이기범 기자 / 사진=의왕(경기)=이기범 기자 leekb@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가 아니었겠나."

2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선고 결과가 나오자 삼성그룹 내부에서 나온 반응이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업무를 챙길 것이라고 했지만 선고 결과가 가져올 파장에 대한 중압감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은 평상시대로 업무를 보면서 TV 생중계로 선고 공판을 보다가 김명수 대법원장이 "2심 파기환송" 주문을 읊자 긴 한숨을 내뱉었다고 한다. 최근 법조계 안팎에서 파기환송 선고 전망이 많았지만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2년 전인 2017년 8월25일 1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징역 5년 실형이 선고되자 이 부회장은 착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서울구치소 기록을 보면 1심 선고 이후 20분가량 진행된 면담에서 "실형 가능성을 염두에 뒀지만 한편 기대도 했다", "막상 실형을 받고 나니 상당히 실망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선고로 이 부회장이 당장 구속되진 않는다. 하지만 2심(파기환송심) 재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 행보가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파기환송심에 3~4개월이 걸리지만 재상고로 대법원 판결을 다시 받는 기간까지 고려하면 최종 판결까지는 1년 정도가 걸릴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2심 집행유예 선고로 풀려난 뒤 1년 6개월 동안 제한된 여건에서도 국내외 현장경영 행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올 들어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사태가 터지자 잇따라 긴급 사장단회의를 주재하면서 비상경영을 이끌었다.

일본 수출규제 사태가 악화일로에 놓였던 이달엔 충남 온양·천안 반도체 사업장(6일), 경기도 평택사업장(9일), 광주 가전사업장(20일), 삼성디스플레이 충남 아산사업장(26일)을 연이어 찾아 임직원을 격려하면서 사태 수습을 진두지휘했다.

이 부회장으로선 그나마 집행유예 선고로 어느 정도 회복됐던 경영자로서의 이미지가 다시 타격을 입게 됐다는 점이 가장 뼈아픈 지점이다. 당장 오는 10월26일 만료되는 삼성전자 등기이사 임기 연장이 부담스러워졌다.

두 달 안에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등기이사 임기 연장 안건 가결을 받아낼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 지분 9.97%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적극적 의결권 행사) 제도를 본격화한 상태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151,100원 ▲1,000 +0.67%) 등이 올 3월 정기 주주총회에 올린 임원 선임 안건에도 잇따라 반대표를 행사했다.

오는 11월 시행 예정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취업제한 규정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도 거론된다. '재직'과 '취업'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대법원 선고 전부터 달아오른 논란 자체가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최태원 SK (163,400원 ▲2,100 +1.30%)그룹 회장의 경우 박근혜 정부 시절 450억원 횡령 혐의가 유죄로 확정된 뒤 무보수로 재직중이기 때문에 취업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자리를 유지했지만 삼성은 상징성 측면에서 감내해야 할 책임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삼성 안팎의 전망을 종합하면 이 부회장은 대법원 선고와 상관없이 묵묵히 경영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대내외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새로운 리더십의 돛을 올린 이상 거취 논란에 흔들리지 않고 경영에 전념할 것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재계 관계자는 "재판을 다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부 배당, 사건 심리, 변론, 결심, 선고 등의 과정을 겪을 것"이라면서도 "이 기간에도 이 부회장은 그룹 안팎의 위기를 극복하고 최선의 경영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