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십상시’를 멀리하라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01-20 13: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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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주변에는 이른바 ‘십상시(十常侍)’라 불리는 집단이 여전히 어슬렁거리는 모양새다.


'십상시'는 중국 한나라 말기 어린 황제를 조종해 나라를 망하게 만든 환관 집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박근혜 정부 당시 부정부패 스캔들의 중심인물인 최서진 씨와 문고리 3인방(안봉근·이재만·정호성)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바른미래당에선 작년 전당대회에서 처음으로 ‘십상시’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 당시 각 언론이 안 전 대표의 측근으로 거론한 '십상시'는 이태규, 신용현, 김수민 의원, 김철근 대변인, 김도식 전 비서실장 등이다.


이들 ‘십상시’들은 공익(公益)보다는 사익(私益)을 우선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모시는 정치인의 눈과 귀를 흐리게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안 전 대표 역시 그런 ‘십상시’들로 인해 초심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안 전 대표는 20일 보수통합을 추진 중인 혁신통합추진위(혁통위)와 관련,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걸 보고 국민 여러분에게 뜻을 구하겠다”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안 전 대표의 이날 발언은 전날 인천공항 귀국 기자회견에서 “(보수 통합에) 저는 관심이 없다”고 단호한 어조로 일축했던 것과 너무나 차이가 난다. 불과 단 하루만의 일이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안 전 대표의 입장이 미묘하게 바뀐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며 “정치권에서는 안 전 대표 측이 정치적 주가를 높일 수 있는 '통합 합류' '총선 출마' 카드를 단박에 봉쇄한 걸 자충수로 자체 판단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한 십상시의 해명은 더욱 가관이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안철수의 입장이 변한 것이냐’는 질문에 “공항 일성의 경우 돌아와서 보여드리는 첫 모습이기 때문에 명확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며 “정치에 '절대 안 된다'는 게 없는 만큼 공항에서의 단호한 모습과, 오늘(20일) 조금 가능성을 열어둔 게 큰 차이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안 전 대표는 처음부터 보수통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공항에서의 일성은 단지 단호함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쇼’라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아니기를 바란다. 적어도 안 전 대표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쇼’는 아닐 것이다. 전날, 그러니까 국내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발언이야말로 그의 속내가 오롯이 담겨 있는 ‘진심’에 가까운 발언일 것이다.


오히려 측근들을 만난 이후에 있었던 이날 발언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십상시들이 안 전 대표의 눈과 귀를 가리고, 그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들은 안 전 대표에게 보수통합에 대해 완전히 문을 닫지 말아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했을 지도 모른다. 사실 그들은 유승민 의원이 일으킨 쿠데타에 가담해 주구장창 ‘손학규 퇴진’만을 외치며 당을 한국당에 팔아넘기려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그런 자신들의 일탈행위에 대해 손 대표와 당원들 앞에 사죄하거나 반성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안 전 대표가 그들을 대신해 “바른미래당 내홍의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며 사과했을 뿐이다. 

 

아마도 그들은 여전히 한국당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안 전 대표를 끊임없이 흔들어 댔을 것이다. 안 전 대표의 어제 발언과 오늘 발언의 차이는 어쩌면 그들 탓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십상시’ 정치는 위험한 것이다. 안 전 대표가 마음을 열어 놓고 대화할 사람은 정치적으로 자신과 가장 흡사한 방향을 나아가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다.


두 사람 모두 패권양당제를 끝장내고 다다당제 시대를 열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국민의당을 창당해 다당제 시대를 개척한 사람은 안철수이지만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으로 다당제 시대를 안착시키는 사람은 손학규다. 특히 안철수의 측근들의 집요한 공격에도 흔들림 없이 안 전 대표가 만든 당을 지켜낸 이 역시 손학규다. 


두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십상시들의 집요한 방해가 있겠지만 큰 정치 지도자라면 그걸 뚫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모쪼록 안 전대표가 십상시 정치에서 탈피하기를 바란다. 자신들의 이기심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했던 측근들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베어내지 못한다면, 안철수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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