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대신 정보 막은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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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중국 정부, 사스 겪고도 ‘신종 코로나’ 초기에 안 알려 확산 키워

우한시 봉쇄로 한국 전세기 못 탄 교민 100명 이상 추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1월29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물안경을 착용한 중국 여행자가 입국에 앞서 건강상태질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중국 광둥성 선전시 한국 기업 주재원 이아무개(45)씨는 1월30일 현재 우한시에서 북서쪽으로 80㎞ 떨어진 잉청시에 발이 묶여 있다. 15일까지 “사람 사이에 전파되지 않았고, 의료진 감염 사례가 없다”고 밝혀온 중국 정부를 믿은 게 화근이었다. 중국 정부는 20일 밤에야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을 인정했지만, 중국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중국 당국을 믿고 춘절 연휴(1월24∼30일) 직전인 1월21일 잉청시 처가에 갔다가 감염 지역에 갇힌 것이다.

중국인 아내 두고 혼자 올 수 없어서

이씨도 1월 초 한국 언론을 통해 “우한시에서 44명이 원인미상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감염증)에 감염됐다”는 보도를 접하긴 했다. 중국에서 보도되지 않은 내용을 한국 언론으로 접했기에, 순간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처가 식구들이 걱정됐던 이씨는 뉴스에서 본 내용을 아내에게 전했다. 아내가 고향집에 전화했을 때, 처가 식구들 중 누구도 우한 지역의 폐렴 소식을 알지 못했다. 처가 식구들은 뉴스를 전해듣고도 중국 정부를 믿어서인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씨 역시 ‘중국 정부 발표대로 감염자 수가 많지 않고, 사람 사이에 전염되지 않는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씨 부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원지’와 가까운 처가를 ‘겁 없이’ 방문한 이유다.

21일 늦은 오후, 이씨가 도착한 우한공항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많아 보였지만, 춘절을 앞두고 유동인구가 평소보다 적지 않았다. 감염병 확산으로 위축된 분위기가 아니어서 안심됐다. 하지만 당시 우한시에서는 이미 폐렴 증상 악화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나왔고, 감염환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이씨가 처가에 도착하고 이틀 만에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중국 당국은 23일 오전 우한시 폐쇄 조치에 들어갔다. 시를 빠져나가는 대중교통을 차단하고 도로도 막았다. 우한시 인근인 잉청시도 다른 시 외곽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차단됐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광장, 공연장, 피시(PC)방 등에 가지 말라는 방침이 내려왔다. 중국 정부가 승인한 일부 숙박업소만 운영하고 나머지는 모두 영업을 못하도록 했다. 이씨는 일터가 있는 선전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모든 길이 끊기면서 잉청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씨는 29일 <한겨레21>과의 메신저 인터뷰에서 “현재는 대규모 감염 사태가 벌어진 우한시뿐만 아니라 후베이성 내 거의 모든 도시가 봉쇄됐다. 도시에선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고, 마트에 식자재를 사러 갈 때만 잠깐 외출을 한다”고 했다.

우한 주재 한국 총영사관은 한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전세기를 동원해 교민들을 귀국시켰다. 이씨는 선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감염병 사태가 잦아들 때까지 한국 고향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사관에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갈 수 있는지 물었지만 “한국 국적이 아니면 전세기에 탑승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내를 두고 혼자 떠날 수 없는 이씨는 일단 처가에 머물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는 “감염병 사태가 장기화하면 일하지 못해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빨리 상황이 나아져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통행증 안 내줘 한국 못 오기도

한국 정부는 30일 저녁부터 전세기를 동원해 귀국을 신청한 교민 700명을 데려왔다. 하지만 후베이성 현지에선 이씨처럼 비행기에 탈 수 없는 교민이 100명 이상인 것으로 <한겨레21> 취재 결과 확인됐다. 비행기는 우한 톈허 국제공항에서 출발하지만, 우한시 밖에 있는 교민들은 이미 시 경계가 봉쇄된 우한 시내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한시 동남쪽 어저우시에 머무는 우한대학 4학년 이아무개(25)씨는 교민 수송 전세기가 뜬 30일까지 우한시로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씨는 “우한공항에 가려면 어저우시와 우한시 양쪽에서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우한시에서 통행증을 발급해주지 않아 들어갈 수 없다”며 “영사관에선 중국 당국에 통행 허가를 요청했다지만 중국 정부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김아무개(35)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심각성이 알려지지 않았던 1월16일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의 집인 후베이성 리촨시에 갔다. 귀국행 전세기에 타지 못한 김씨는 “도로가 봉쇄됐고, 혼자서 움직일 수 없어 일시적으로 귀국이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는 “거리가 멀거나 이동할 수 없어 감염 지역에 더 머물러야 하는 한국인이 있다”며 “이들이 최대한 빨리 귀국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사스보다 빠른 확산 속도

중국 중심부에서 발생한 대형 감염병 사태에 전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전역에서 감염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국경을 넘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확진환자가 속속 나오고 있다. 2019년 말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팬데믹(범유행)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30일 오전 중국 31개 성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7711명, 사망자는 170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하루 사이 확진자는 1737명, 사망자는 38명 늘었는데, 대부분(확진자 1032명, 사망자 37명) 이번 감염증 진원지인 후베이성 주민이다. 중국 당국이 후베이성 안팎으로 주민의 이동을 철저하게 차단한 이유를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중국 보건 당국은 확진환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이 8만 명을 훌쩍 넘고, 확진환자 7711명 중 1370명이 위독한 상태라고 밝혔다. 앞으로 확진환자와 사망자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대형 감염 사태가 전역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2020년 새해부터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태양의 ‘코로나’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주로 동물 사이에 감염되지만 드물게 변이돼 사람도 감염될 수 있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까지 포함하면 현재까지 총 7종이 보고됐다. 2015년 5월 한국에 상륙해 186명을 감염시키고 39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 속도는 중국에 악몽과도 같은 2002~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압도하고 있다. 사스 당시 확진환자가 1천 명에 이르는 데 4개월이 걸렸다. 이번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확진환자 수도 이미 사스(5327명)를 뛰어넘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긴급위원회를 열어, 이번 감염증 사태에 대해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언할지 논의할 계획이다. PHEIC가 선언되면 WHO는 해당 지역에 조사단을 파견하고 출입국 제한을 권고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28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의료기관인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진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우한시장은 4만 명 운집 행사 강행

“중국 정부는 우한에서 퍼지는 폐렴과 관련해 처음부터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2003년 사스 사태 당시와 정확히 똑같다.”

2002~2003년 사스 사태 때 WHO 아시아지부 대변인을 맡았던 피터 코딩리는 2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중국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2003년 초 홍콩 기자들로부터 중국 광둥성 지역(홍콩 인근)에서 감염병이 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을 파악하려 했지만 중국 정부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감염병 가능성을 일축했다”고 회상했다. 2002년 11월 첫 감염이 시작된 것으로 분석된 사스는 2003년 초 이미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5개월이 지난 2003년 4월10일에야 사스 발생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발표했다.

코딩리는 “중국 정부는 이제 진실을 말할 때가 됐다. 정말 감염자들이 화난 시장을 방문했다가 감염됐다고 믿는가? 이미 사람 사이 감염은 일어나고 있다. 춘절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이동하면 상황은 2003년 사스보다 더욱 악화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공교롭게도 중국 당국은 코딩리가 SNS에 글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 간 전염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중국 공안의 통제를 받는 언론은 감염병 소식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해당 소식을 접하지 못한 시민들은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우한시 보건 당국은 중앙정부보다 앞서(15일께) 사람 사이 감염 가능성을 인정했으나 역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저우셴왕 우한시장은 19일 시민 4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 신년맞이 행사를 강행했다. 그 자리에서 “사람 간 전파는 제한적이고 참여 인원은 이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 발언 이후 나흘 만에 우한시는 봉쇄됐다.

우한시, 증상 발현 20일 지나 발표

중국 정부는 감염병과 관련해 정확한 정보를 알리기보다, 해당 소식이 전파되지 않도록 막는 데 급급했다.

세밑이던 2019년 12월31일,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가 화난 수산시장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폐렴 환자가 속출했다고 발표했고, 1월1일 해당 시장을 폐쇄했다. 중국 소셜네트워크 웨이보에선 관련 주제가 조회수 1억 건으로 인기검색 1위에 올랐다. 중국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발표한 논문을 보면 12월 초 첫 환자가 감염돼 12월12일께 증상이 발현된 것으로 분석된다. 우한시 당국의 발표는 20일이나 지나서 이뤄진 셈이다.

일부 시민은 “사스가 돌아왔다”는 글을 올렸다. 중국 공안은 이런 글을 올린 사람들을 소환해 조사했다. 중국 현지 언론 <환구시보> 관계자가 웨이보에 올린 글을 보면 “1월 초 사스 가능성을 제기한 8명이 허위사실 유포와 공공질서 교란 혐의로 공안에 불려가 조사받았다”고 밝혔다.

<허베이 데일리>의 장오우야 기자는 24일 웨이보에 “우한시에 감염병 사태와 관련해 지도부에 책임을 묻고 당장 교체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회사 쪽 지적을 받고 곧 글을 삭제했다. 공산당 기관지 <허베이 데일리>는 장 기자의 발언과 관련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허술한 중국 당국의 대응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사태는 국경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30일 오후 현재 한국을 비롯한 21개국에서 12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국에선 총 6명의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아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질본) 중앙방역대책본부는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 2명을 추가 확인했다. 5번째 환자(32)는 업무차 중국 우한 지역을 방문한 뒤 24일 귀국했는데, 기저질환으로 천식을 앓고 있어 능동감시 대상자로 관리받았다. 6번째 환자(56)는 3번째 환자(54)에게 감염된 것으로 질본은 파악했다. 3번째 환자와 4번째 환자(55)는 잠복기인 상태로 입국해 검역망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방역 당국은 3번째, 4번째 환자가 각각 지역사회 활동에서 접촉한 95명, 172명을 밀접접촉자로 분류해 감시해왔다.

보건 당국은 방역 과정에서 ‘무증상 감염자’의 질병 전파 여부를 판단하지 못해 애먹고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증상이 없거나 잠복기인 환자들은 병을 전파하지 않았기에, 방역망을 짤 때 무증상 환자는 검사하지 않았다.

질본, ‘우한 입국자’ 전수조사 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태에선 중국 당국과 WHO가 무증상 감염 가능성을 경고했다. 마샤오웨이 국가위생건강위 주임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사스와 달리 이번 감염증은 잠복기에도 전염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WHO도 무증상 감염자의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인정했다. 다만 중국 당국은 발표 근거 자료를 내놓지 않아 한국 정부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애먹고 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대한예방의학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위원장)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말했다. “메르스 사태 때 한국 정부는 방역으로 분주한 중에도 투명한 정보 공유를 위해 WHO에 환자들과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상세하게 제공했는데, 이번에 중국 정부는 간단하게 환자 수만 공개해 답답하다. 무증상·잠복기 환자의 전파 가능성은 감염 사태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중국 정부가 발표만 하고 증거를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감염 가능성이 있는 인원의 전수조사에 나섰다. 질본은 1월13∼26일 우한에서 국내로 들어온 2991명의 건강상태를 매일 확인하는 조사를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일반 시민들은 손을 최대한 자주 깨끗이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위생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가 사용하는 비누와 세제에 취약하기 때문에 비누로 깨끗하게만 씻어도 쉽게 죽는다. 콧속 점막은 바이러스가 좋아하는 부위기 때문에 코를 자주 풀고 씻는 것도 감염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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