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황운하·우상호… ‘내로남불’은 知行合一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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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09. 오후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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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철]

드라마 ‘스토브리그’와 양명학

노정태 철학 에세이스트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백승수(남궁민)는 꼴찌 야구팀 드림스의 신임 단장이다. 용병 계약을 위해 미국에 왔지만, 그에게 남은 선택은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군 입대를 앞두고 미국 국적을 얻은 ‘검은 머리 외국인’ 길창주(이용우), 혹은 로버트 길뿐이다. 사연이 없지는 않다. 고교 시절 혹사당한 끝에 부상을 입었고, 아내가 위독했다. 야구 인생이 끊겼지만 여전히 강속구를 던진다. 백승수는 제안한다. 50만달러에 용병 계약을 맺자고. 한국에서 야구를 하자고.

길창주는 주저한다. 절실하게 야구를 하고 싶지만, 두렵다. 무엇이? "아, 안 되니까 결국 돌아왔구나 하는, 국민들의 시선이 가장 두렵습니다." 그런 그에게 백승수는 특유의 냉철한 말투로 지적한다. "아무한테도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면, 저는 길창주씨가 정말로 절실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여기서 우리는 동양철학 중 양명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아는 것과 하는 것, 또는 마음과 행동 사이의 일치와 불일치, 다시 말해 지행합일(知行合一) 문제가 직접적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길창주는 자신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절실함에 걸맞게 행동하지 않는다. 국민적 비난을 무릅써가며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 서고자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지행합일의 부재는 로버트 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좋은 것, 바람직한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담배를 끊어야지, 저축을 해야지, 원고 마감을 잘 지켜야지. 하지만 그렇게 아는 내용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금연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를 피우고, 한 달 내내 절약하느라 힘들었다며 월급날 과소비하고,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며 이메일과 문자를 보내는 식이다.

일러스트= 안병현

왕양명의 제자들이 펴낸 '전습록'에 나오는 사례도 마찬가지다. 제자가 묻는다. "아버지에게 효도해야 하고 형에게 공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와 행은 합일되지 않고,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승이 답한다. "그것은 이미 사욕에 의해 지와 행이 단절된 경우이지 지와 행의 본체가 아니다." 왕양명은 일갈한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알면서 행하지 않았다면 아직 제대로 안 것이 아니다."

흔한 '좋은 말씀' 아니겠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이것은 혁명적 선언이다. 양명학에서 도덕은 해석이 아닌 실천 대상이다. 선악에 대한 판단 기준이 마음에서 곧장 솟구치는 선한 의지와 그 의지의 즉각적 실현으로 단순화된다. 그 결과 사대부들의 입지가 줄어든다. 복잡한 유교 경전과 의례 준칙을 무기 삼아 무식한 대중을 가르치고 휘두를 수 없게 되거니와, 자신들이 입으로 떠드는 내용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현란하게 변명할 수도 없게 되니 말이다.

자신들은 지킬 생각이 없는 도덕을 무기 삼아 정쟁을 일삼는 것은 중국 송나라, 명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정권이 국정원과 경찰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고 비난하더니, 마찬가지로 선거 개입 의혹으로 수사 중인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을 출마시키려 든다.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와 전쟁한다고 선포한 지 얼마나 됐다고, 흑석동에 영혼까지 끌어올려 '올인'했다가 추문이 커지자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에게 공천을 주느니 마느니 한다. 여당에 유리한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해버린 국회의장의 아들은 '그 집 아들'이라는 책을 내고 아버지 지역구를 넘겨받겠다고 했었다. "나는 아빠 찬스를 단호히 거절한다"는 소리를 굳이 덧붙여가며.

이것은 '내로남불'이라는 우스꽝스러운 표현으로 비웃고 조롱한 후 지나갈 일이 아니다. 동양철학적 관점에서 우리 정치인들이 온전한 인성(人性)을 갖지 못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양명학에서 말하는 양지(良知)란 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의 발현이다. 아기가 우물에 빠질 것 같으면 우리는 곧장 뛰어가서 구조한다. 그 앎과 행동 사이에는 종이 한 장 들어갈 만한 틈도 없다. 따라서 올바른 마음을 갖는 것, 도덕을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동일하다. 반대로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자, 특히 남을 향해 도덕을 요구하고 손가락질하면서 자신은 지키지 않는 자는 사단을 발휘하지 못하는 자로, 사람보다 짐승에 한발 가까워져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28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한 말은 더욱 상징적이다. 그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사임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당 지도부는 너무 도덕적으로 성인군자만 공천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국민이 김의겸에게 바라는 건 단순하다. 본인이 언론사에서 일하던 시절 외쳤던 이른바 '경제 민주화'를 실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핑계를 댄다. 선거 비용을 내고 남은 돈을 기부하겠다며 말이 길어진다. 이는 도덕을 알면서도 현실적 이유로 실천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도덕적이지 않은, 부도덕한 것이다. 알면서 행하지 않았다면 아직 제대로 안 것이 아니다.

조선 사대부들은 양명학을 철저히 배척하고 탄압했다. 조선 왕조가 중국의 유학 흐름을 쫓아가지 못해서 망한 것은 아닐 테지만, 위선의 탑 속에서 도덕을 무기 삼아 기층 백성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방증으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실천하지 않으면 양반도 짐승이고, 지행합일하면 상놈도 군자가 되는, 그런 혁명적 사고를 조선은 끝내 거부했다.

'스토브리그'로 돌아와보자. 길창주는 자신이 로버트 길이 아닌 길창주로 살고 싶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용병으로 계약하고, 한국에 돌아와, 1년간 선수로 활동한 후 늦었지만 국적을 회복하고 현역으로 군에 입대하겠노라고 발표한다. 군 문제에 민감한 시청자들도 대체로 길창주라는 캐릭터의 지행합일에 감동받아 그를 용서하게 된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는 바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 실수했어도, 나중에라도, 바로잡으면 된다. 그것이 인간이라고 명나라 철학자 왕양명이 말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수오지심이 사욕에 가로막힌 것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외침이 문득 귀에 쟁쟁하다. 지행합일하는 정치, 단순한 도덕을 지키는 정치를 보고 싶다.

[노정태 철학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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