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CF/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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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응원가 · 레알 마드리드 TV · Hala Madrid(잡지)
관련 상식더비 매치엘 클라시코 · 데르비 마드릴레뇨
기타오해
구단 시설경기장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 에스타디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바클레이카드 센터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의 경기장이다.
훈련 시설발데베바스
기타시우다드 레알 마드리드 · 관광

1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국가와 왕실의 지원을 받는 왕가 구단이고 프랑코 독재 정권에게도 비호를 받았다.

해당 오해는 스페인과 유럽에 공공연히 퍼져 있는데, 한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 서형욱이 2005년부터 자신의 저서 <유럽축구기행>을 통해 국내 축빠들에게 비판 없이 전파되어 온 것이다. 그래도 문서 전반에 걸쳐 꼬리자르기식 태도가 많이 묻어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내전 당시에 프랑코에게 끝까지 대항했던 도시이며 이 두 도시를 이간질시키기 위해 축구를 이용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알 마드리드는 왕실 구단이 아니라 FC 바르셀로나나 발렌시아와 같은 '시민구단'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구단주가 없이 '소시오(Socio)', 즉 시민들을 기반으로 시작된 클럽 구성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구단으로 왕가 지원을 받았다는 것 자체는 전무하다.[1] 임원들을 비롯한 회장인 페레스나 칼데론은 구단주가 아니라 소시오들의 투표로 인해 뽑힌 전문 경영인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자연스러우며 시의 자금과 운영도 마드리드 클럽의 네임 밸류를 기반으로 한 각종 사업(방송이나 굿즈, 테마 파크를 비롯한 건축 사업 등)을 통한 수익을 통해 구축한 것으로 스페인 정부의 지원이나 왕가 지원, 독재 정권의 지원 그런 거 없다.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프랑코의 탄압 내지 저항 정신과 관련하여 카스티야 지방이었던 마드리드였기에 더더욱 이런 오해가 가속되어 '바르셀로나=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클럽', '레알 마드리드=왕가의 지원을 받는 부패한 클럽'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외부의 노력 때문에 지금까지도 오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물증이랄 게 없다. 그리고 프랑코 정권에게 살살 기지 않으면 당장 철퇴를 맞고 쥐도 새도 모르게 지중해의 물고기 밥이 되는 건 마드리드고 바르샤고 다 필요 없이 당시 스페인 사회 전체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당장 바르셀로나도 프랑코에게 두 번이나 클럽 명예 회장 자리를 바쳤을 뿐만 아니라 역대 레알 마드리드 회장 중에 프랑코 독재에 저항하다 학살당한 회장들도 있을 정도로 프랑코 독재 정권의 통제는 스페인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반면 마드리드 시 자체는 스페인 내전기 부터 지금까지 반프랑코 성향이 굉장히 강한 도시인데[2] 프랑코 정권과의 관계를 까 보면 프리메라 리가 전체에서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 팀이 거의 없다.[3] 그러니 요지는 독재 정권과 관련된 의혹의 시선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나, 레알 마드리드라는 클럽의 업적 자체를 깨끗하지 않고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독재 정권과 결부시키더라도 마드리드가 그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으로 수혜를 얻은 사례와 그 증거는 전무하므로, 클럽의 성공적인 과거 행보를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고 우승 기록의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시도는 옳지 못하다.

간혹 1942/43시즌 코파 델 제네랄리스모에서 나온 레알 마드리드 11:1 바르셀로나 사건을 레알 마드리드가 프랑코 정권의 배후에 있었다는 증거로 삼기도 하는데, 이 시즌 코파 델 제네랄리스모 우승팀은 아틀레틱 클럽이다. 아틀레틱 클럽이 어떤 클럽인지 생각하면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물론 군부의 몰락 이후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 우리나라에서 6.25 전쟁 가지고 지역감정을 조장해서 특정 팀을 음해한다고 생각해 보라. 프랑코 정권의 악행이 스페인에서 얼마나 민감한 주제인지 고려하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는 역사적 상처를 축구판에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정황상 대충 그리 보인다고 어거지로 들이대는 게 얼마나 저열한 일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4][5]

'왕가의 지원'은 아니더라도 '왕가의 지지'는 받고 있다 주장할순 있지만 현재 국왕인 펠리페 6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이다. 애시당초 레알(Real)이라는 호칭 자체가 왕실을 상징하는 단어이긴 하나, 현 프리메라 리가에서 레알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구단은 레알 마드리드뿐 아니라 세군다 등 하부 리그를 포함해서 수많은 클럽들이 있으며, 클럽 창단 초창기에 클럽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당시 스페인 국왕에게 명예 구단주직을 위촉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이때 스페인 왕실로부터 레알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것이지, 자기들이 알아서 뇌물 갖다 바치고 달아 재낀 타이틀이 아니다. 게다가 레알이란 칭호를 처음 받은 팀도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데포르티보이다.

레알이라는 타이틀이 귀족적인 이미지로써 레알 마드리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가 시민 구단으로서 세계 최고 구단이 되게끔 한 가장 주된 원동력인 마드리드 시민들의 업적을 폄하하기 위해 왕실 구단, 부패 구단의 이미지를 덧붙여서 깎아 내리려는 시도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즉, 매 이적 시장마다 레알 마드리드가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나 클럽 운영 자금은 국가 돈을 빼다 쓰는 것이 아니고 페레스 회장으로 대표되는 레알 마드리드 전문 경영진들의 각종 수익 사업을 통해 구축한 것으로,[6] 유럽 최고 수준의 관중 입장료 수입 및 TV 중계권료 수익, 혹은 레플리카나 패치 등 관련 상품 수익이나 건축 사업, 건물 임대와 같은 부수적인 2차 수익, 다수의 다국적 기업과의 스폰서 계약[7] 등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득이 바탕이 된 것.

레알 마드리드의 수익 창출은 그 어느 구단보다도 효율적이고[8] 많은 이익을 창출해 내고 있어서 수많은 클럽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괜히 레알 마드리드 구단 운영의 사례가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재로 쓰이는 것이 아니다(링크).

지금 UEFA에서 FFP 룰을 적용하는 것을 가지고 세계 각국 리그의 클럽마다 계속 말이 많은 가운데,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그렇게 엄청난 이적 자금을 쓰는데도 아직까지 별다른 잡음이 안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훌륭한 클럽 운영 체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애초에 많이 버는 클럽은 많이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

참고로, 이 주장으로 인해 AT 마드리드의 팬들이 다음 응원가를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마드리드 만세, 마드리드 만세, 정부의 팀, 국가의 수치(Hala Madrid, hala Madrid, el equipo del gobierno, la vergüenza del país)." 현대 마드리드에서는 AT팬들이 많이 사는 라바피에스, 라 라티나, 카라방첼 같은 시 남부 구들은 정치적으로 공산당 표가 많이 나오거나, 당연하게도 참된 혁명가는 선거 따원 참여 안하는 아나키스트 성향이 강한 지역이기 때문에 바르셀로나 못지 않게 AT팬덤 또한 왕실레알비호론 드립을 쳐서 레알을 깔려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저것도 각 마드리드 대표 팀의 팬들이 많이 사는 동네의 일반적인 정치적 성향일 뿐이지, 당연히 실재로 마드리드 내에서 어떤 팀을 지지하느냐는 정치적 성향과 큰 상관은 없다고 보는게 맞다. 우파 AT팬들도 얼마든지 있고, 좌파 레알 팬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9]. 유럽 축구판에서 진짜로 이념과 팀이 같이 따라가는 사례는 각각 극우, 극좌 성향으로 악명 높은 SS 라치오AS 리보르노, FC 장크트 파울리 같은 경우이지, 현대 까지 와서 일반적으로 마드리드나 나머지 스페인에서 정치적 성향과 선호하는 축구 팀은 큰 상관 관계가 없다. 그나마 스페인 내에서는 연고지인 소도시 바예카스 자체가 워낙 강성 극좌 성향의 노동자 도시니 팬덤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라요 바예카노 정도일까?

2015년 10월 22일 현지에서 스페인 심판 협회에서 엘 클라시코 부심들에게 마드리드에게 편파판정을 하라는 압박이 있었고 이로 인해 스페인 경찰이 수사중이라는 기사가 일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2

라 리가 회장은 당시에는 엘 클라시코의 심판진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그런 압박이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유럽연합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마드리드 시의 불법 거래에 대한 조사가 거의 끝났다고 보도되었다.#

2 갈락티코스는 지나친 공격 자원 위주의 영입, 특히 베컴 영입과 마켈렐레 방출이 결정적 계기로 공수 밸런스가 엉망이 되는 바람에 무너졌다.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다. 베컴의 영입과 마켈렐레의 방출이 원체 대조적으로 극적인 대비를 비뤄냈기에 저런 오해가 생긴 듯하나, 정작 2002/03 시즌과 2003/04 시즌의 전반기 실점률은 동일했다.

애시당초 갈락티코스 자체를 돈만 많이 들이고 실패한 체제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지만 갈락티코스가 결성되기 시작한 2000년에서 2003년까지, 좀 더 길게 잡자면 1999/2000 시즌부터의 레알 마드리드(소위 말하는 라울 마드리드에서 갈락티코스 1기로 넘어가는 시점)는 델 보스케 체제 하에서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 리가 2회 우승이라는, 유럽 최고 명문의 이름값에 걸맞는 성적을 기록했다.[10] 당시 마드리드의 전술 자체가 새로운 스타를 영입함으로써 선수 한 명 때문에 전술적인 틀을 완전히 뜯어 고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니만큼 전술 이해도나 기존 선수들간의 유기적인 플레이 및 팀 전술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났기에 기존의 틀을 유지한 채 새로 영입한 선수들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금씩 전술에 수정을 주는 방식을 취했고 이러한 델 보스케의 실용적인 전술과 맞물려 저런 업적을 이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2003년까지는.

많은 이들이 보았듯이 2003/04 시즌 이후 갈락티코스의 몰락 원인은 단순히 마켈렐레의 방출로 치부해 버릴 만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당시 주전과 서브 간의 기량 차이와 연관지어서 보는 편이 더 합당하다.[11]

그리고 페레즈가 마켈레레는 10미터 이상 패스를 못하는 선수 등등으로 비난하면서 방출했다라는 얘기는 사실관계 자체는 성립한다. 다만당연히 저런 이유로 방출한 것은 아니고 좋지않은 모양새로 헤어진데에 대한 뒤끝 정도로 보는 것이 옳다. 마켈레레의 방출과정을 정리해보면
1. 베컴 영입[12]
2. 마켈레레가 베컴수준의 주급을 요구
3. 페레즈의 거부, 그리고 그 사이 첼시가 접근해서 개인협상 마무리
4. 페레즈는 이적에 거부했지만 마켈레레가 팀 훈련 무단 불참 및 구단 통보없이 대표팀 합류 등 온갖 깽판
5. 2,400만 유로라는 거액으로[13] 첼시행
그리고 저렇게 팀을 떠난 페레즈가 10미터 이상 패스 못하는 선수 등등의 드립을 치며 비난을 한 것.

물론 마켈렐레와 콘세이상의 이적은 큰 문제로 다가왔지만 이점은 단순히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를 대신 그 자리에 채웠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스쿼드의 뎁스 자체가 얇아졌다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2003/04 시즌 마드리드의 전반기 기세는 뛰어났지만 전 시즌부터 베스트 11을 지속해서 돌린 것에 대해 체력 방전 문제가 계속 지적되어 왔었고 이것이 나중에 중요한 일전들이 겹치는 후반기에 들어서 연이어 터지게 되었다.[14]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델 보스케마저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마드리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선수단에 혼란이 일어났고 이후 익히 아는 갈락티코스의 몰락이 도래했다.

당장에 피구의 땜빵은 누네스이고, 호돈과 라울의 땜빵은 포르티요, 센터백 자원은 엘게라, 파본, 라울 브라보(그나마도 본업은 왼쪽 윙백)인 상황에서 베스트 11의 기량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차에 유스 써 보겠다고 올린 수비수들이 필드에서 똥을 싸질렀으니 마드리드의 수비력이 개판이 되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애꿎은 카시야스만 열심히 구르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전반기에 날아 다니다가 베스트 11이 방전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그것이 2003년 이후 2006/07 시즌에 리가 우승을 되찾아 오기까지 이른바 탈락티코의 오명을 남기게 된 것.[15]

그리고 수비수에 딱히 투자를 안 한 것도 아닌 것이, 기존의 카를루스나 노쇠한 이에로, 엘게라 등 자원으로도 충분히 마드리드 수비진은 안정적으로 작용했고 그 이후에 솔라리나 캄비아소를 비롯한 영입도 있었다. 하지만 마드리드가 요구하는 수준에 합당하지는 못했으며 이름값만 보고 영입한 우드게이트 같은 희대의 먹튀들 때문에 괜히 수비에 투자하지 않는 구단의 이미지가 박혀 버린 것.

사실 레알 마드리드는 수비 자원에 대한 영입 투자도 꾸준히 감행해 왔고 페레스 복귀 이후 무리뉴 체제로 개편된 이후에는 수비수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투자가 감행되었다.[16] 실제로 페레즈는 부임 이후에 사비 알론소, 알바로 아르벨로아, 사미 케디라[17], 히카르두 카르발류, 파비오 코엔트랑[18], 라파엘 바란, 아시에르 이야라멘디, 카세미루, 다니 카르바할[19], 루카스 시우바, 다닐루 등등을 영입해, 레알 마드리드가 수비 자원에도 적지 않은 투자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즉 공격은 지단, 수비는 파본도 옛말이라는 것.

3 레알 마드리드의 유스 정책엔 문제가 있다.

이 역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오해. 특히나 과르디올라 체제 이후 승승장구를 달리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케이스를 보고 '왜 우리는 유스 안쓰나요?'라고 성토하는 이들이 많은데, 카시야스는 유스출신 아닌가요 구단에서 유스들을 선수를 키워내는 능력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레알 마드리드 역시 바르셀로나와 걸맞을 만큼 훌륭한 유스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축덕들에게는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유스 시스템은 스페인, 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질적으로 우수한 유스 시스템에 속하며, 스페인은 물론 세계의 축구 유망주들이 몰려드는 스카우트 경쟁 및 생존 경쟁도 치열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만큼 못하기 때문에 못 올리는 거다.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이 유스 선수들이 바로 즉시전력으로 활용되기엔 항상 세계 정상권에서 노는 극한직업인만큼 현실적으로 2군이나 유소년 팀에서 잘해서 1군으로 콜업해서 올려봤더니 1군만 올라오면 매번 삽질을 하는터라 도저히 쓸래야 쓸수가 없는 상황. 이는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 팀 수준과 당시의 상황때문에 못한다고 평가받을 뿐 사실 레알 유스들의 실력들은 다른팀에서 주전 먹을 만하다. 괜히 믿고 쓰는 레알산 이라는 말이 있는게 아니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어느정도 팀 자체의 일관된 전략,전술 경향이 강한 편이다보니 유스에서 1군까지 일관된 전술로 뛰면서 아무래도 유스선수들이 1군에서 적응하는 데 유리한 면이 있다. 반면 이는 플랜 B에 대한 적응력은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바르셀로나의 방식 역시 장단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상대적으로 감독도 빅클럽치고는 자주 바뀌고 운영의 일관성이 바르셀로나만큼은 못한지라 유스 출신 유망주의 적응이 어려운 점은 있다.

그리고 라이벌 바르셀로나와 비교해서 그렇지, 절대 레알 마드리드 유스도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1965/66 시즌에 6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한 이후로 30여 년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던 레알 마드리드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1997/08 시즌부터 2001/02 시즌까지 5시즌 동안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을 이끌었던 마드리드의 레전드 라울 곤살레스구티, 그리고 99년부터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드리드의 골문을 지켜온 전 주장 이케르 카시야스, 과거 유스 팀의 주장을 맡았던 알바로 아르벨로아, 나폴리의 호세 카예혼 등 많은 선수들이 마드리드에서 활약하고 했으며 카스티야에서 배출한 선수들은 라 리가를 포함한 전 세계로 뻗어나가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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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공미인 후안 마타를 포함,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하비 가르시아, 레알 소시에다드에스테반 그라네로, 비야레알의 특급 골잡이인 로베르토 솔다도, 유로 2012에서도 활약한 발렌시아 C.F.의 공격수 알바로 네그레도, 왓포드후라도 등등 카스티야가 배출해 낸 선수들의 활약상은 눈이 부시지만(소위 믿고 쓰는 레알산) 문제는 정작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활약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 구단 자체의 문제점도 분명히 이에 한몫했다. FC 바르셀로나처럼 유스를 키워서 바로 바로 올리는 시스템이 아닌 왕년의 슈퍼 스타들을 영입함으로써 스쿼드를 짜 맞추는 식의 구단 운영 방침 때문에 유스들이 쉽게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과거 유스 정책의 일환으로 파본 등을 썼다가 이미 한 번 크게 데인 적이 있었고, 그 이외에도 B 팀에서는 잘 하다가도 유독 1군에 올라오면 죽을 쑤는 케이스가 비일비재했다. 이같은 점을 보면 온전히 구단 탓으로만 돌리기도 힘든 것이 당장 보여지는 기량에서 수준 미달이니 선수 개인의 심리적인 요인 때문인지는 몰라도 레알 마드리드라는 클럽에서 유스가 주전 자리에 발탁되고 싶으면 기존의 포지션을 밀어낼 만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든지(라울 곤살레스나 이케르 카시야스 등) 아니면 다양한 포지션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하든지(구티) 해야 하는데 구단이 요구하는 수준을 어느 부분도 충족하지 못하게 되니 결국 타 클럽에서 정착하게 된 것.[20] 그렇다고 이러한 유스들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터질지 어쩔지 확실치 않은 도박이고[21] 무엇보다 스타들을 영입하는 것은 마드리드의 성적하고만 연관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라 마케팅 및 구단 운영에 관하여서도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 문제이다. 때문에 지금 같은 스타 선수 위주로 영입하는 체제를 유스의 적극적인 기용을 위해 쉽사리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22] 물론 이 같은 형태에 대해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며 과거 라 파브리카 출신 레전드인 구티는 자신이 라 파브리카의 시스템을 개편해 보겠다며 유소년 코치직을 지원한 상태이니 향후 클럽의 유스 시스템이 변경될 여지는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4 종합

사실 이 3가지 오해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모은다는 공격적인 투자, 속된 말로 '돈지랄' 때문에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FC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도 레알 마드리드 못지 않게 돈지랄을 하는 팀이나 다름없다.

  • 왕가의 전폭적 지원을 바탕으로 많은 돈을 사용할 수 있다는 루머에, 스페인이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을 두고 '축구에 돈 쓰다 이 꼴이 났다'라는 어이없는 추론마저도 있었다.
  • 돈질의 사례 혹은 실패 사례.
  • 비교 대상인 FC 바르셀로나와 달리 돈질로 이곳 저곳에서 사오다 보니[23] 올라오는 유망주가 없다는 것. 그러나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라 파브리카에서 나온 선수들도 적지 않으며, 마침 라이벌인 FC 바르셀로나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유스 포텐이 연이어 터지는 바람에 괜히 비교당해서 까이는 감도 없잖아 있다.
왜인지 이 문서 전반에 FC 바르셀로나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느낌은 기분 탓이다.
  1. 프랑코 독재 시절 프랑코가 레알 마드리드를 비호한 것은 사실이라고 하나 프랑코는 기본적으로 축구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레알 마드리드가 유러피언 컵 5연패를 달성하며 전 유럽의 자랑거리가 되자 이 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축구에 관심 있는 척 레알 마드리드 팬 코스프레를 했을 뿐이다.
  2. 카탈루냐인들이 바르셀로나만 프랑코에게 핍박받았을 거라 생각한다면 굉장한 오산이다. 당장 스페인 내전 직후부터 프랑코 정권 내내 프랑코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며 사람 처죽이고 때려 잡은 곳이 바예카스, 라바피에스, 라티나, 푸엔카랄 등의 마드리드 남부와 교외의 블루 컬러 구역들이다. 마드리드가 수도이고 가장 큰 도시니까 당연히 희생자도 마드리드에서 많이 나오는 게 아니냐고? 인구 수에서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를 추월한 건 1950년대나 돼서야 생긴 일이다.
  3. 이전 버전에는 없다고 되어 있었지만, 딱 하나 있다. 아틀레틱 클럽. 이 팀과 바스크의 저항 역사는 레알 마드리드건, FC 바르셀로나건 다 눈 아래로 내려놓고 시작한다.
  4. 프랑코 정권이 레알 마드리드를 특별히 지원했다기보다는, 그들이 바르셀로나를 탄압하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가장 큰 반사 이익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예를 들면 1943년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오늘날의 코파 델 레이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맞붙자, 프랑코 측에서 바르셀로나를 협박해서 11:1로 레알 마드리드가 결승에 올랐는데 정작 우승은 AT 마드리드가 한 것을 들 수 있다. 즉 군사 정권 측에서는 바르셀로나만 아니면 어디든 큰 상관은 없었던 셈.
  5. 단, 목적이야 어쨌건 결과적으로는프랑코 정권이 직접적이라고 하긴 애매하더라도 레알 마드리드를 지원한 것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프랑코 정권과의 관계를 까 보면 프리메라 리가 전체에서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 팀이 거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레알 마드리드가 그 거의 없는 팀 중 하나는 아니다. 그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으로 수혜를 얻은 사례와 증거는 전무하지 않으므로. 다만 이 항목에서 얘기하는 것은, 악성 꾸레들이 레알을 깔 때 사용하는, '프랑코를 등에 업고 챔스, 리그를 우승한 클럽'이라는 오명은 틀리다는 것이다. 바르셀로나 명예 구단주도 프랑코였거든
  6. 실제로 페레즈가 2000년 회장으로 당선되기 직전, 레알 마드리드는 파산위기에 몰려있었다. 하마터면 리즈꼴 날뻔
  7. bwin, 아디다스, 코카콜라, 아우디 등. 국내 기업 중에는 삼성그룹과 스폰서십 계약 체결 중.
  8. 선수 이적 시장에서야 매번 적자를 내지만 스타급 선수 영입을 기반으로 한 각종 사업을 벌임으로써 이적 시장을 포함한 클럽 운영 자체는 매년 흑자를 기록 중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구단 운영 잘 해놓고서 이적시장에서 말아먹는다는거다 물론 구단 운영을 잘하기 때문에 이적시장에서 본 손해도 메꾼다는것도 기억해야한다.
  9. AT가 마드리드 시내에서 반골과 노동자의 팀 기믹을 뒤집어 쓴 현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스페인 내전 직후 1940~50년대 AT가 내전 당시 바로 그 마드리드 시내에 폭탄을 퍼부어대던 국가군 공군 인사들이 창설했던 Athletic Aviación de Madrid로 지내던 시절만 하더라도 오히려 AT가 극우파 군인들의 팀 취급을 받았다
  10. 다만 1999/2000 시즌은 로렌소 산스가 회장이던 시기로 갈락티코스 시기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전반기를 존 토샥 감독이 완전히 말아먹은 것을 델 보스케가 되살려 결국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으나 리가에서는 최종 성적 5위에 그쳐 1996/1997 시즌 리그 우승 이후 3년간 무관에 그치고 말았다. 시즌 뒤 회장 선거에서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피구 영입을 공약으로 내세워 새로운 회장으로 선출되고 이 때부터 갈락티코스 정책 시작.
  11. 당장 마켈렐레뿐만이 아니라 임대 혹은 이적으로 모리엔테스, 맥마나만, 콘세이상, 셀라데스까지 02/03 시즌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하던 선수들을 03/04 시즌에 죄다 내보냈다. 아무리 세계 최고급 유스 팀을 보유한 마드리드라지만 경험 부족한 어린 선수들로 너댓 명의 로테이션급 선수들의 공백을 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2. 마켈레레를 이적시키고 그 돈을 보태서 베컴을 영입했다는 식으로 선후관계조차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슈페르 코파에서는 두 선수가 나란히 선발로 나오기도 했다.
  13. 그 당시 수비형 미드필더 가격치고는 상당히 비싼 가격
  14. 03/04 시즌 후반기, 2004년 3월부터 리그 마지막 12경기의 성적이 3승 2무 7패다. 이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는 최종적으로 10패를 기록하게 되는데 그중 7패가 시즌 막판에 나온 것. 특히 마지막 5경기는 전패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15. 페레스 임기 말기 무렵과 2006년 이후 칼데론이 부임했던 시기는 갈락티코스가 완전히 와해된 때라고 보는 것이 맞으므로 논외.
  16. 단, 무리뉴 체제는 선수 수급 자체가 철저히 무리뉴 의도대로 이루어지고 선수 이름값보다는 무리뉴의 팀에 필요한 선수 위주로 영입되었기 때문에 갈락티코스라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무리뉴 본인부터 부임하자마자 갈락티코스는 끝났다고 선언했고.
  17. 단, 케디라는 공미, 중미, 수미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다.
  18. 수비수 역대 최고 이적료인 30M 유로를 기록하고 SL 벤피카에서 이적했다. 2015년 여름 기준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루크 쇼가 수비수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이다,
  19. 바이백 옵션을 실행하여 재영입했다.
  20. 그러나 이는 구단의 책임이 맞다. 선수가 부진한 요인이 기술적인 문제이든 심리적인 문제이든, 그리고 그것이 유스의 교육 시스템의 문제이든 선발 시스템의 문제이든간에 그것은 유스 시스템의 일부이고 구단의 책임이다.
  21. 바르셀로나도 구단 역사를 통틀어 이 정도로 유스 자원이 한꺼번에 빛을 발했던 적은 없었다. 또한 바르셀로나는 주전과 비주전 간 기량 차이에 대해 꾸준히 지적받을 만큼 아직은 유스 출신 후배들이 선배들과의 수준 차이를 빠르게 좁히지 못하고 있으며, 주전 노쇠화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공수의 핵 사비와 푸욜의 확실한 대체자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즉 유스가 단체로 포텐이 만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운도 따라 줘야 한다는 것.
  22. 이것이 아마도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는 레알 마드리드뿐 아니라 세계 정상급 수준의 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UEFA 챔피언스 리그나 유럽의 주요 리그 경기들이 국제적으로 중계되고, 이로 인해 이러한 팀들의 선수 수준 혹은 요구 사항이 올라가면서 커지고 있는 문제이다. 심지어 독보적인 유스 시스템을 가진다는 평가를 받는 바르셀로나도, 87~88년생들을 배출한 이후에는 유스 출신 주전 선수의 비율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23. 사실 바르셀로나도 마드리드 부럽지 않게 돈을 쓰긴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그를 아득히 뛰어넘는 네이마르.와 또 수아레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