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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오사카

8월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8월의 크리스마스

 

오랜만에 기억속에 잠겨있던 영화 한 편을 꺼내들었습니다. 며칠 전에 사진촬영을 하다가 소나기를 피해야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문득 떠오르더라구요. 이 작품을 처음으로 감상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단순히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되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는 많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던 명작이라고 생각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의 구성은 참 간단합니다.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부드럽고 착한 성격의 소유자 정원(한석규)과 주차 단속원을 생업으로 한채 살아가고 있는 털털하고 생기발랄한 다림(심은하)의 아름다우면서도 한없이 슬픈 만남을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 한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절제미'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 불치병을 앓고있는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라면 관객들의 눈물, 콧물을 짜내려고 하는데 목적을 두는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정반대의 특색을 가지는데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정원은 어느 누구에게도 '무섭고 힘들다'라는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죽음이 두려운 순간에도 홀로 소리죽여 우는게 전부입니다. 마찬가지로 다림은 상대에 대한 호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랑한다' 말 한마디는 기대할 필요도 없이 '좋아한다'란 말조차도 하지 않죠. 이렇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정말 필요한 장면과 짧은 대사만으로 관객들에게 내용을 전달하려고 한 노력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정말 군더더기 없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현실적이고 평범한 요소들을 초반에는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았는데 극이 마지막을 향해갈수록 풍부한 감동을 전해주는 요소로 전환되어 잊을수 없는 경험을 제게 선사해 주었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라는 영화 제목의 의미를 완벽하게 해석할수는 없지만 제가 느낀 그대로를 말씀드리면 죽음을 눈앞에 두고있는 정원 앞에 나타난 다림이 크리스마스 같은 존재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불태워주고, 소중한 추억을 남겨준 축복같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다림은 (한 여름의) 정원에게는 뜻깊은 선물(크리스마스)일 겁니다.

 

매 장면이 시나 소설의 한 구절같이 느껴져서 한 장면을 고르자니 마음 아프지만 눈 딱 감고 선정해 보자면 '창문 너머로 주차 단속을 하고 있는 다림을 바라보는 정원의 모습'이 최고의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림에게 너무나 다가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는 정원의 복합적인 감정을 절실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대사 없이 구슬프게 흘러나오는 OST를 따라 몸을 맡기니 어느새 참았던 감정이 복받쳤던 명장면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진사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다면...' 이라는 독특한 생각에서 시작된 영화이면서 신인감독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힘든 명작품에 대해서 끄적여 봤는데 왠지 모르게 잘못 건드린 것 같습니다. 읽으시면서 '처음으로 이 영화를 보았던 순간'을 떠올리셨으면 하는게 제 작은 바람이네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지만 제 글솜씨로는 터무니없는 욕심이라 생각되어 시간되시면 다시 한 번 보시기를 부탁드려 봅니다.

 

 

 

모든 영화를 통틀어 최고의 멜로영화라고 극찬할 만한 작품입니다.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몸속 깊이 전해져 오는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작품 같습니다. 동선상의 아련함 때문인지 계절에 맞게 이 영화를 꼭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가도 항상 특별한 감성을 느끼게 해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정원과 한석규씨를 같은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신내린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차분하게 깔리는 내레이션의 목소리, 아버지를 두고 떠나는 아들, 좋아하지만 짐이 될 것 같아 말 하지 못하는 착한남자, 그리고 죽음이 두려워 어쩔줄 모르는 평범한 일반인까지 모든게 다 어울리는 한석규를 위한 영화였습니다. 꼭 꼭 숨기던 자신의 죽음을 친구에게 농담처럼 말하는 부분은 정말 가슴이 저렸습니다.

 

2013년에 재개봉을 했지만 다시 한 번 극장에서 볼 수 있을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허진호 감독이 격이 다른 로맨스 영화를 보여주어서 그런지 이 정도 급의 영화를 다시 보려면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네요.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의 연출을 맡으셨던데 어떤 느낌일지 기대반 걱정반이네요. 로맨스, 멜로 장르를 벗어난 허진호 감독의 연출도 만족스럽길 바랄 뿐입니다. 영화도 흥행했지만 한석규씨가 부른 '8월의 크리스마스'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정말 목소리 하나는 타고나신 분 같습니다. 대사가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서글픈 OST 선율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장면이죠. 그 장면을 볼때마다 '진정한 사랑은 이런거구나' 라고 마음속으로 읊조리면서 항상 울컥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가 끝이나고 밀려오는 여운이 끝내주는?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는게 느껴지죠. 극장에서 보는 것 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되실 겁니다. 저는 재개봉 했을 당시에 가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아직도 한이 되네요. 소극장에서 개봉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이 소원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영화 한 편 보러가자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는건 축복입니다. 물론 여자친구였으면 남다른 추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도 쉽게 경험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그런 특별한 친구분이 옆에 계신 분들도 드물겁니다. 농담이지만 여운이 깊은 영화를 봤는데 첫눈까지 내린다고 좋다고 난리 피울 정도면 완전 여성스러운 친구 같네요. 정말로 마음이 따스한 분일것 같습니다.


담담하게 슬프다는 걸 처음 알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한석규의 병명도 딱히 안 나오고 분위기와 둘의 진행만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나간, 그 당시에는 굉장히 특이한 구성이였던 것 같습니다. '접속'에 이어서 한국영화에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데 큰 몫을 한 영화라 생각ㄷ됩니다. 지금은 없어진 동숭시네마텍에서 썸 타던 여자애와 처음 봤던 영화라 더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그 때는 영화보다 옆자리의 여자애에게 신경쓰느라 영화는 절반밖에 기억이 안 나지만 나중에 다시 볼 때는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영화는 이성적으로 비평하면서 보게되지만 이 영화는 아마 평생 감성적으로 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굉장히 특이한 구성으로 느껴질 정도였다니 새삼스레 이 영화가 더 위대하게 보입니다. '접속'과 '8월의 크리스마스' 개봉시기가 4달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던데 연달아 이런 영화가 개봉했다니 놀랍습니다. (비교적 짧은 상영시간임에도) 이런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개봉했던 그 시절이 부럽습니다. '접속'은 내용도 일품이지만 OST의 여운이 더 오래갔던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히 이성적으로 바라보기에는 힘든 작품입니다. 보통 무슨 영화를 보던 한번쯤은 (평론가가 된 마냥) 이 장면 저 장면 탐구하려고 하는데 이 영화만큼은 그런 엄두초자 못 냈습니다. 워낙에 눈시울을 적시는 작품이라 결국에는 감성파가 되는 것 같아요. 그 당시 편지란 영화도 개봉했었는데 (물론 흥행은 편지가 더 잘 되었죠.) 그때 사람들 이야기로는 편지는 배우가 보이는 영화이고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감독이 보이는 영화라고들 했었죠. '8월의 크리스마스'보다 흥행을 했는데 '편지'는 배우가,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감독이 보이는 영화란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얼마나 돋보였으면 그런 소문이 퍼졌을까요.

 

안타깝게도 아직 군산에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가보고 싶은 마음은 절실한데 아직도 그 소원을 못 이루고 있네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날이 오면 무작정 즐기고 오겠습니다. 시에서 보존도 잘  해 놓았으니 제가 갈 때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겠죠? 감독, 배우, OST, 스토리 등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완벽주의'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한석규씨가 부른 엔딩곡을 제외한 나머지 연주곡들을 듣다보면
영화를 보지 않아도 그 음악이 흘러 나오는 장면들이 기억날 정도로 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장면 하나 하나 곱씹다 보면 한석규씨의 연기에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리모컨 사용법을 알려주는 장면은 정말 울컥하죠. 이 장면과 더불어 정원이 이불을 뒤집어 쓴 채 홀로 소리죽여 우는 모습을 아버지가 문 너머에서 바라 보는 장면도 굉장히 심금을 울렸습니다.

 

연기실력이야 믿고 보는 분이지만 최근 작품들은 흥행을 하지 못해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드라마에서 활약을 해줘서 다행인것 같습니다. 최근 생애 첫 의학드라마로 복귀를 하셨는데 아직 못봤지만 기대해봐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