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맨’ 고동완 PD “젊은 콘텐츠 비결? 후배 지적 인정할 줄 아는 용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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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2.04. 오후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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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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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에서 웹 예능 <워크맨>의 연출을 맡고 있는 고동완 PD를 만났다. 고 PD는 “재미만 있는 콘텐츠는 한계가 있다”며 “진정성과 공감이 더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구글코리아 제공


TV의 시대가 저물고 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 TV 앞을 떠난 시청자들이 몰려든 곳이 있다. 웹 예능 <워크맨>이다. 아나운서 장성규가 영화관·워터파크·야구장·PC방 등 다양한 직종을 경험하는 직업체험 채널로, 10분짜리 영상을 매주 금요일 오후 6시에 공개한다. 4일 기준 387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했으며, 특히 젊은 시청자의 반응이 뜨겁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에서 만난 고동완 PD(36)는 젊은 시청층을 사로잡은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방송사에선 컨펌(확인)이 위쪽으로 가잖아요. 저희는 달라요. 밑으로 가요. 후배들이 하는 거죠. 윗분들이 재밌다고 재밌는 콘텐츠가 아니거든요.”

<워크맨>의 타깃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아르바이트와 취업에 관심이 많은 ‘1824’(18세부터 24세까지) 세대를 공략했다. 직업 체험이란 흔한 소재를 다뤘지만, 풀어가는 방식이 남달랐다. 어느 방송도 공개하지 않던 시급을 있는 그대로 ‘까발렸다’. 1500만 조회수를 달성한 ‘에버랜드 알바’ 편에서 장성규가 5시간 동안 일하고 받은 돈은 4만2000원. 시간당 8400원으로 최저시급보다 50원 많은 금액이었다. 일당을 받아든 장성규는 고참 직원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며 어금니를 물었다.

1500만 조회수를 달성한 ‘에버랜드 알바’ 편의 한 장면. 아르바이트와 취업에 관심이 많은 ‘1824’ 세대를 공략한 <워크맨>은 어느 방송도 공개하지 않던 시급을 있는 그대로 ‘까발렸다’. 유튜브 캡쳐


고 PD는 “이런 게 <워크맨>의 진정성”이라고 했다. 그는 “재미만 있는 콘텐츠는 한계가 있다”며 “방송을 보면서 계속 웃을 순 없다. 웃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게 바로 정보다. 몰랐던 정보가 있으면 사람들은 (영상에서) 나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0초 단위로 터지는 웃음에 쏠쏠한 정보가 더해지자 시청층도 확대됐다. 고 PD는 “남성 시청자가 많은 다른 채널에 비해 <워크맨>은 시청자 성비가 비슷하다”며 “시청 연령대도 18세부터 35세로 예상보다 폭이 넓다”고 했다.

제작 인력은 5명의 PD가 전부다. 작가는 없다. 팀원들도 20대 중심으로 꾸렸다. 고 PD는 “기술적인 것은 내가 알려주지만, 내용과 공감은 이들이 내게 조언하는 식”이라며 “신조어나 이들의 관심사를 최대한 얻으려 하고 있다. 특히 90년대생 친구들은 잘못되거나 틀린 것에 대해 거침없이 말을 하는데, 이런 점이 오히려 좋다”고 했다. 그는 “보통 후배들의 지적이나 불만을 받아들이면 무능해보일까 무서워한다. ‘꼰대 마인드’를 내려놓고 인정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초 JTBC 웹 채널 ‘스튜디오 룰루랄라’에서 출발했으나, 3회 ‘야구장 맥주보이’ 편이 입소문을 타며 지난 7월 단독 채널을 오픈했다. 35일 만에 100만 구독자, 3개월 만인 10월 구독자 300만명을 넘겼다. 고 PD는 “성장이 가파를수록 영향과 책임이 따르면서 조심스러워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수위를 넘나드는 농담을 하는 ‘선넘규’(선 넘는 장성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지만 “그 ‘선’의 기준은 있다”며 “정치, 젠더, 종교 등 민감한 이슈는 피하려 한다. 최대한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고 있다”고 했다.

고동완 PD는 개인적인 목표로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을 꼽으며 “후배들의 지적이나 불만을 받아들이면 무능해보일까 무서워한다. ‘꼰대 마인드’를 내려놓고 인정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글코리아 제공


SBS <런닝맨> 조연출로 이름을 알린 고 PD는 중국에서 디지털 콘텐츠의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그는 “4년 전 중국에서 1년 정도 일했는데, 중국인들은 그때 이미 모바일로 예능을 보고 있었다. 이 흐름이 우리 쪽으로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숏폼 콘텐츠를 공부했다. 카메라 한 대로 여러 실험을 거치다 웹 예능 <뇌피셜>을 선보였고, 그 노하우가 <워크맨>으로 이어졌다. 고 PD는 “한국 아이들도 이제 밥 먹을 때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본다. 이들이 자란 뒤엔 TV보다 모바일이 훨씬 익숙한 플랫폼이 돼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고 디지털 콘텐츠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기는 이르다. 짧은 수명 때문이다. 고 PD는 “디지털 콘텐츠 수명은 짧으면 6개월이고 길면 1년”이라며 “수명이 짧다는 건 조회수가 안 나오면 수익이 안 된다는 말이다. TV 예능도 인기는 비슷하게 식지만, 바로 적자를 보지는 않는다. 유튜브는 조회수가 바닥이면 바로 적자다. 투자를 해서 끌어올려야 하는데 플랫폼의 벽이 낮다보니 그냥 방송을 접어버린다”고 했다.

플랫폼의 판도가 뒤바뀌는 과도기 속에 고 PD는 ‘롱런’하는 웹 예능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는 “3월 쯤 채널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며 “김민아 기상캐스터가 제철 알바로 등장하고, 또 출연자 두 명이 친구와 알바가는 컨셉의 직업 체험 콘텐츠를 기획 중에 있다”고 했다. 개인적인 꿈도 밝혔다. “우선은 꼰대가 되지 않는 것, 그 다음은 디지털 예능 쪽에서 PD 사단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후배들과 뜻을 모아서 재밌는 것 많이 만들고 싶어요. 이 사람들이 만들면 무조건 재밌고 유익하다는 말을 듣는 게 목표입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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