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베트남전쟁 당시 파병된 한국군이 벌였던 확인된 전쟁범죄와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 읽기전 주의사항 ※
월남파병의 측면에서 학자들마다 한국군의 역할과 전쟁범죄에
대해 각각 다른 견해와 연구를 바탕으로 주장하고 있으며,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에 나돈 "한국군의 만행" 과 같은 식의 글들에
서술된 내용의 경우 사실과 맞지않거나 개인의 주장인 경우도 있으며
공식적으로 집계된 내용은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글을 보시고 이 글을 보시거나 혹은 이 글을 보시고
다른 글을 보셨을때 생길 수 있는 모종의 오해와 엇갈리는 부분은 서술
적 자료적인 차이 또는 완벽하지 않음을 아시고 어디까지나 참고용으로
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보배드림은 글을 쓰는 분량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너무 길게쓰면 오류발생)
단도진입적으로 주요점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글을 읽기전 이해할 내용 )
월남파병 한국군의 경우 북베트남군 (월맹군) 과 직접적인 교전 사례는
적었고, 일반적으로 베트콩 이라 불리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과의
교전이 대다수였습니다.
이들은 베트남의 민족통일을 위해 결성되어 북위 17도 이남 즉 남베트남에서
활동한 공산주의 게릴라 조직으로써 많은 분들이 월맹군=베트콩 으로 아시지만
실제로는 다른 집단입니다.
한국군은 주로 남베트남 내에서 치안유지와 대민지원 활동을 펼치거나
위에 설명한 베트콩을 섬멸하는 것을 주로 하였습니다. (연인원 부분 해석주의)
(위 사진에 나타나있는 내용 중, 청룡부대와 맹호부대의 상륙지가 다릅니다.
청룡부대는 깜란만에 상륙했고 맹호부대가 꾸이년에 상륙했습니다)
총 32만명을 파병했다고 하여, 완전 침공군이나 용병과 같이 묘사되곤 하나
사실 의료원단 포함 평시에는 5만명을 상한선으로 두고 파병해 1년주기로
교체하여 8년간 총 중복으로 누계 32만명을 파병했다는 것입니다.
한국군은 미군의 용병이다 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데 당시 한국군의 참전
요인은 용병 즉 이익을 얻으러 가는 참전이 아닌 주한미군의 이탈과
베트남 전쟁에 군사력을 집중투입하는 미군의 모습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 대다수고,
한국군의 월남파병은 국제적으로도 승인받은 "남베트남 (베트남 공화국)" 의
동맹국으로써 참전했기에, 이 여러 사상과 세력확장과 냉전의 특수성을
가진 전쟁에 함부로 누가 용병이고 악이다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이외에도
파병된 모든 국가는 비슷한 성격을 띄어도 용병이나 침략군이라는 명시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김대중대통령 이 98년도와 01년도에 베트남을
방문해 회담을 가진 후, 베트남측에 사과하고 양국간 포괄적 동반자관계
즉 외교 경제적인 동반자 (바로 위가 동맹이라 일컫는 전략적 동반자관계)
를 맺는데 좋은 역할을 하였는데,
이미 베트남은 미국을 이기고 북베트남 주도로 공산주의 통일을 하였고,
한국의 경우 월맹군과의 충돌은 현저히 적고 절대다수가 베트콩과의 교전에
서 그쳤으며 한국군 자체가 북베트남 영역에 직접 작전을 수행하지
않고 대부분의 정규전은 미국이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실 한국의 모든 행위가 용서받았다기 보다는 승전국과 목표인 통일이
이루어진 말 그대로 민족해방이 된 베트남 입장에서 과거사에 쿨하게 연연
하지 않겠다는 제스처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의 사과도
완벽한 용서와 배상완료로 받아들이시면 안됩니다.
제 견해이자 몇몇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바로 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베트콩)
과의 교전과 충돌을 통해 우발적인 학살과 대민범죄가 함께 일어났거나
정글에서의 장기적인 교전과 상해로인한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로 아침에는
논일을 하다가 밤에는 총을들고 국군과 미군을 사살하거나 민간인으로 위장해 수류탄
공격이나 첩보를 하였던 베트콩과 같은 게릴라전 중심인 베트남전쟁을 봤을때,
민간인들 까지 베트콩이나 위장한 게릴라라고 오인해 사격한게 뒤늦게 민간인으로
확인되 학살극이 된 경우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엽제와 더불어 이런 민간인 공격과 학살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으로
자살하거나 심각한 PTSD 로 사회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아군사살과 상관살해
등을 일으킨 국군,미군 참전용사들이 지속적으로 나왔음을 주의해야합니다.
즉, "학살" 이라는 개념에서 봤을때 가해자 피해자의 개념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지만 베트남전쟁의 특성과 전쟁자체의 문제 그리고 여러 사상과 전투가
얽히고 섥혔다는 점 총을든 개인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전투와 작전지내에서의
오판으로 오인사격이나 우발적인 학살이 일어났을 수 있음을 고려해야합니다.
(그렇다고 의도적이 학살이 없었다고 단정지으면 곤란합니다)
1971년 미국 상원 청문회 에서 미국의 베트남 학살과 중앙정보부(CIA) 의 개입
내용 그리고 정글에서의 수색/탐지/격멸 위주의 전투방식과 그로인해 탄생된
미국자체가 만든 "전략촌" 의 내용에 따라 확인된 지역을 벗어난 곳에
있는 모든 거수자 혹은 민간인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베트콩) 소속의
적으로 간주해
학살하거나 사살하고 이게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아닌 전략적
방위적으로 당연시한 행동으로 여겨지는게 가능했음을 주의해야하고
제가 이 문단에서 하고 싶은말은 무조건 "학살" 이라는 점만 논하지 않고
정치,외교 같은 부분과 개인의 PTSD 혹은 베트남 전쟁과 더불어 전쟁 자체의
양상과 평시와 같은 치안 및 안전보장이 힘들다는 것을 고려하여 우발적
범죄와 확인되지 않은 내용 역시 무수히 많이 나올 수 있음을 아시고 중립적인
자세로 해석하셔야 합니다.
( 한국군의 학살 내용 )
( 공식이 아닌 자료를 통한 주장입니다 해석 주의바랍니다 )
첫번째 내용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발생했던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꽝응아이 성 의 빈호아 에서 발생한 "빈호아 학살사건" 입니다.
이 내용에 관해서는 글이 너무 길어지고 서술이 다르기 때문에, 그나마
중립성을 지키는 위키피디아 등의 문서 링크로 대체 하겠습니다.
( 일부 블로그나 개인이 집필된 내용은 너무 과장되거나 축소해 근거가 없음 )
https://ko.wikipedia.org/wiki/%EB%B9%88%ED%98%
B8%EC%95%84_%ED%95%99%EC%82%B4
두번째는 청룡부대 가 꽝남성 디엔반현 하미 마을 에서 130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불도저등으로 매장한 사건입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5%98%EB%AF%B8_%EB%A7%88%
EC%9D%84_%ED%95%99%EC%82%B4_%EC%82%AC%EA%B1%B4
( 위는 위키피디아 아래는 헤럴드 경제- 해석주의 )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50225000046
세번째는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퐁넛 전략촌 에서 청룡부대 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특히나 민간인 확인이 보장된 전략촌내에 우호적인 사람들을
상대로 했다는 내용이기에, 더욱 충격적입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0%81%EB%8B%88%C2%B7%ED%90%8
1%EB%84%9B_%EB%A7%88%EC%9D%84_%ED%95%99%EC
이게 대표적인 한국군 학살의 근거가 있는 사건들입니다.
이외의 소규모나 너무 대규모로 계획적으로 자행되었다 주장되는 문건은
신빙성이나 증거가 불충분하기에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 문제점 )
(사진은 한국군이 아니라 남베트남군 입니다)
일단, 2차대전 나치와 일본군이 자행한 의도적인 인종청소와 제노사이드와
다른 개념인데도 미국,프랑스,한국,남베트남을 넘어서 베트남전의 전쟁범죄가
이토록 심각하게 기록되는 이유는,
고엽제 등의 사용과 전후스트레스로 인한 기강저하와 범죄 그리고
낮에는 논일을 하고 밤에는 기습을 해 온 국민들이 참여하는 "인민전쟁" 의
양상을 띈 게릴라 형식의 베트남전쟁 특성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미군이 지정한 "전략촌" 이 크게 작용하는데,
어차피 적들은 게릴라 위주의 전투를 하고 습지와 정글이 많아 기습매복
및 추격할 경우 위험성이 있기에 아예 민간인으로 확인된 사람만 이름만
마을인 "전략촌" 에 쏟아넣고 그 이외지역에 다니는 민간인은 모두 거수자와
적으로 분류해 공격대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한데, 이게 왜 문제가되냐면 전쟁에는 여러
첩보전과 심리전이 나돌면서 적이나 아군이 해당 전략촌에 간첩이 있다거나
마을 전체가 적과 내통한다거나 중부지역이나 월맹군 인접지역의 경우 전황이
바뀔때 마다 전략촌 역시 의미가 없어져,
처음에는 우호적이여도 저런식으로 한번 뒤바뀌면 말 그대로 학살극이
일어나는게 일도 아닌 시스템입니다.
게다가 소규모 학살극에 대한 내용 역시 미국측,프랑스측 등의 학살과
전쟁범죄 내용을 볼때 우발적으로 야간에 지나가던 민간인을 쏘거나 우호적인
마을에 전투로 인해 뜬금없이 학살을 하는 등 서술과 내용의 차이가 있고,
대규모 학살의 경우 파병군인의 복무신조나 위수지역과 외박/부대이탈을 엄격하게
했던 한국군이 계획적으로 자행했다고 하기에는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공식문서나 기록이 없고 있다고해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측
뉴스나 전쟁기록마냥 너무 과장되어 서술되었거나 참전군인이나 종군기자가
개인의 감정을 이용해 주관적 서술을 한 경우도 있으며,
따라서 검증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이건 은폐나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다가
아니라, 애초에 전쟁자체의 문제이자 베트남전 양상의 문제로 기록과
확인이 어렵고 "진실규명" 을 외쳐도 확인할 방법이 사실상 없습니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 이나 노무현 대통령 이 베트남에 방문해 사과나 회담을
하였을때, 베트남 전쟁 공동조사와 배상을 제의하고 특정 사건에 대한 사과가
아닌 "불행한 전쟁으로 인해 베트남인에게 고통을 주어 죄송하다" 라는
포괄적인 뜻을 언급한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국군 역시 소규모 학살과 알려진 학살에 대해서는 부정하고있고 그런 기록이
없다고 하였으며 대한민국 법정 의 단위로 학살로 인정받은 것은
김종수 소위 학살사건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김종수 소위가 야간매복 도중
지나가던 6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으로 후에 사형이 선고되었다가 15년형으로
감형 되었는데, 이 마저도 야간에 베트콩이 지난간 걸로 판단하고 쏘았기에
억울하다는 내용까지 있습니다.
이 글에 베트남전쟁에서의 한국군이 자행한 전쟁범죄는 모두 서술되지 않고
그렇기엔 자료와 증거가 불분명하며 베트남전쟁 한국군 학살내용 역시 "공식" 이
아니고 증언과 주장을 토대로 기정사실화 까진 아니어도
"그러했다고 주장되다" 정도입니다.
학살은 분명히 있었으나, 근거와 증거가 부족하고 과장되었던 것도
많고 이걸 정치나 주관적인 생각으로 왜곡되 서술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거짓에 가까운 학살내용 )
물론 과장과 오해로 엮여진 사건도 존재하는데, 바로 고자이 마을 학살사건 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병사를 맹호부대 라고 주장하며, 구덩이에 민간인들을 가둬놓고
수류탄으로 죽이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해당마을에 세워진 증오비의 벽화입니다.
일단, 이 벽화에는 오류가 있는데, 한국군은 오른쪽이 아닌 왼쪽 어깨에
부대마크를 착용하고,
해당 군복에 보이는 호랑이 위장무늬인 "타이거 스트라이프" 는 당시 남베트남군
이 채용해 사용하던 위장복 입니다. 한국군은 해병대를 제외하면 거의 민무늬전투복
만을 사용했고, 위장무늬 역시 옛 특전복인 덕헌터 형식의 점박이무늬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부대마크의 호랑이 역시 맹호부대인 수기사는 호랑이가 포효를 하는
옆모습인데, 저건 호랑이라기 보다는 표범의 정면모습입니다.
따라서 이건 오히려 남베트남의 특수부대인 ARVN 베트남 레인저 일 가능성이
매우매우 큽니다.. 당시 맹호부대는 누가봐도 타이거 스트라이프 위장복에
검정색 알철모를 쓰고다닐 일이 없습니다. (애초에 맹호부대의 목적은 전시복구와
대민지원 및 구역내 게릴라소탕)
부대마크 역시 정면을 보고 울부짓는 붉은 표범의 모습을 한 것은 베트남 레인저의
마크와 일치하고 맹호부대는 좌측을 보고 표효하는 호랑이입니다. 물론 맹호부대
마크는 현재와 좀 달랐지만 저 구도에서 달라진것도 없고 디테일이 살아난거
빼면 그대롭니다.
사실 교차검증과 증거가 아닌 오래전의 목격담과 구전으로만 전해받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잘 알려준 사례이고, 무작정 사실규명을 외치지 않게된
이유 중 하나가 이 고자이마을 학살사건 인데,
한국군이 1966년도에 폭격기와 헬기를 동원해 마을주민들을 학살하고 다녔
다고 말하는 신문 인터뷰 수기내용이 주장되건 사례를보면 아시겠지만,
한국군이 주한미군으로 부터 전군에 헬기운용을 한 시점은 1967년 이고,
애초에 한국군은 창군이래 폭격기 운용경험이 없습니다. 그리고 맹호
부대는 육군입니다...
이건 1~2년차이가 뭐가 중요하나 싶겠지만, 이번에 도입하는 아파치헬기
만 봐도 알 수 있듯 무기사와서 조종사 훈련받는다고 끝이아니라
수 많은 적합여부 시험을 거쳐 수년간 테스트를 받아와서 도입하는 물건이고,
운용교범에 전술까지 줴다 익혀야 군장비를 도입할 수 있습니다.
이는, 흑표전차건 아파치건 한국형 전투기건 FA-50이건 개발과 도입이
10~20년씩 걸리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는건, 미국 폭격기나 헬기에 미국조종사와 같이 맹호부대가 가서
학살을 했다는건데, 현실이었으면 양국 합동조사에다 치명적인 외교문제로
주범자와 관련자와 방관자까지 연대처벌해서 사형과 아예 군대근처에 얼씬도
못하거나 최소 옥살이입니다.
즉, 정치적 목적의 과장이나 자극적인 내용만 보고 사실관계 확인을
안하면 이렇게 된다는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후에 독가스를 사용했다고 정정했다는데, 아시다시피 독가스는
사전에 제작해 이미 보급이 되야하고 그걸 가져와서 쓰려면
제독부대 마냥 방독면에 외피까지 다 차려입고 써야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믿기싫으면 안믿어도 되는 국군 월남파병 문서 외 어느문서를
찾아도 한국군이 월남에서 민간인이나 적을 향해 화학무기를 사용해
학살을 자행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 학살 외 다른 전쟁범죄 )
현실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성폭력이나, 사실혼 혹은 현지
인과의 매춘으로인해 탄생된 일명 "라이따이한" 이라 불리는 한월 혼혈 2세입니다.
물론 베트남에 국군만 간것이 아니라 월남특수 경제 가능성 을 보고 그쪽에
진출한 민간인,노동자,기업투자 등도 있었고 추산시 전성기 최대 2만명 에 가까
웠습니다.
그럼 평시에 총 5~7만명가량의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활동하며 매춘과 사실혼
관계로 지내다가 임신이나 전쟁이 종전된 후 한국으로 그대로 도망가는 경우도
생기고,
무엇보다 참으로 부끄러운 것은 라이따이한 문제에 공통적으로 "군인에 의한 전시
강간"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엄격한 부대통제에도 맹호부대 분대 중 하나가 전시강간 혐의로
군법재판에 회부된 적이 있고, 위 사진에 나온 수기에 내용 역시 김종수 소위 사건 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확하지는 않지만 강간/사실혼/매춘 등으로 탄생한 라이따이한은
부산일보 추산 최소 5000여명~3만명 으로 추정됩니다.
이게 필리핀의 한필혼혈인 "코피노" 보다 더 심각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여행도중 무분별한 성매매를 하거나 사실혼을 맺고 한국으로 도망가는 등의
행위로 인해 남겨진 혼혈아와 미혼모의 "아빠찾기" 혹은 "생활비 소송" 등의
가정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는데 비해서
명백한 군인에 의한 "전시강간" 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 수가 1건이건
100건이건 명백히 포함되어 있고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는 것이죠.
현재 이들에 대한 국가단위의 배상 및 해결방안에 관한 정책은 없는 실정이지만,
현지에 진출한 우리측 교민이나 종교단체와 시민단체로 부터 한국어 교육과 라이따이한
학교등을 세워 생활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것 역시 정부차원이 아니고 개인/단체차원인데다 라이따이한이 아닌 현지
베트남인들을 무분별하게 지원의 대상으로 포함하고 그걸 그대로 라이따이한
복지=라이따이한 수 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것역시 정부차원에서 제대로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게 잘 집계가 안되는 이유중 하나는, 라이따이한의 개념 자체가 군인
뿐만아니라 베트남에 진출한 노동자들 사이에 탄생한 혼혈아를 뜻하고, 이후 현재에
이르러 베트남여행을 가서 무분별한 성매매나 강간등으로 탄생한 혼혈아 및
미혼모까지 여기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 영역이 매우 넓어진터라 제대로
가늠하기 힘들고 현재도 지속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십만명이나 혹은 수백명규모로 집계된 경우는 이런 내용을 함께 담거나
오해가 섞였거나 과장/축소된 면이 있으므로 주의해야합니다.
현재에도 민간인 학살과 각종 전쟁범죄에 대한 내용은 완벽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이 여러 사상과 요인이 얽힌 사태에 대해 명예로운 전쟁이라는 이름과 월남용사라는
이름하에 쉬쉬하거나 오히려 무조건 악으로 취급해 과장을한다면 이 사태를
제대로 규명하고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수 많은 시민단체와 인권단체가 베트남전쟁 한국군 범죄에 대한 진실규명과
배상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규모의 학살은 과장되었거나 오해가 있다하더라도 한국군의 학살과 범죄는
엄연히 사실임이 분명함 을 잊지마시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로 비판
하는 자세를 갖추고,
"불과 60~70여년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당해오고 민족의 한으로 삼아왔던 것을"
우리가 그것도 무력집단인 군을통해 똑같이 자행했다는 것을 우리는 머리숙여
반성하고 인정하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부탁드립니다.
잘못한건 무조건 반성하고 정식으로 사과 해야 하는게 맞습니다. 우리가 안하는데 일본에 어떻게 사과를 받겠습니까!
베트남전도 박정희씨가 한거죠?
몇달전에 업무반 여행반으로 호치민에 다녀온적이 있습니다. 현지 한국중소기업 대표분께서 여행가이드를 붙여주셨고, 이분이 라이따이한 여성분 이셨는데..한국어를 제법잘하시는 40대 여자분 이셨죠. 우리나라에도 여러번 방문하셨드라구요.ㅎㅎ
낮엔 여행지를 둘러보고 저녁엔 숙소근처 맥주집에서 한국어로 대화도 많이 나누어 봤습니다.
그 당사자는 아버지가 한국인 이라는것과 가족에대한 무관심에 섭섭함을 표현했지만 지금은 다 지나간얘기고,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고 얘기하면서 오히려 한국인들에 성실함과 자상함을 칭찬하시드군요. 그리고 본인 어머니에게 어릴때부터 들어온 얘기는 월남전 당시 확인안된 무분별한 사건사고를 들어봤다, 하지만 한국군이 남베트남 국민을 위하여 여러가지의 대민지원도 훌륭하게 완수하였다....마지막으론 "월남파병 한국군은 베트콩들에겐 잔인했고, 두려운 존재였다 아니, 치를떨게 만들었다 그렇치만 일반시민들에겐 따뜻한 군인들이었다" 라는 말씀을 하시드군요...그 말을 들은 우리일행은 부심을 가져야할지 아니면 고개를 숙여야할지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리잘된글 잘 읽었습니다^^.
청룡부대는 월남 동북부 캄란만에 상륙하고 뒤이어 맹호부대가 꾸이년(퀴논)에 상륙했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적도 없고, 오로지 인터넷으로 배워서 오히려 잘못 알고 있던 내용 역시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셔서 군사지식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어두운 역사 인데 잘못을 분명하게 배우고 반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옆나라 일본의 행태를 보면 잘못은 철저히 은폐, 왜곡 하여 교육을 하고 있으니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현실에 ... 거짓으로 왜곡 은폐하여 만들어 낸 역사를 진실로 믿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까지 동급의 인간들이 되려고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듭니다. 지금 추진중인 국정교과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한,베트남 정부가 손잡고 진실규명하여 제대로 역사 교육 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일본의 위안부 성범죄와 우리나라가 베트남전때 한 행위나 무슨차이가 있냐? 라는 말을 하더군요, 일본군은 침략자이고 국가가동원하여 인권유린을 한것이고 베트남전은 침략전쟁을 한것도 국가에서 베트남 여자를 강제 동원하여 인권을 유린한것이 아니다.하니 이해를 하더군요. 지금은 국사가 필수과목으로 된걸로 아는데 지금 20대들 조선왕조 계보조차 알지 못한더군요. 한숨만 나옵니다
즉 일본의 위안부는 국가가 모집하고 관리한겄이지만 베트남의 전쟁강간은 개인의 범죄입니다..
강간할경우 체포되어 수감되며 사회적으로도 매장이죠...그리고 실질적으로 베트남 전쟁은 말은
통일전쟁이지만 양상은 테러형태죠....그러니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민간인인지 모르는사항에서
신분 확인이 안되면 무족건 적이라 간주하고 사살부터하는 사항....
그러나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저지른 비인간적인
수많은 사례들이 같이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베트남군은 민간인을 안죽였을까요?
글에도 있지만 베트콩은 게릴라 입니다.
당연히 더 비정상적인 전투가 많았지만 거기에 대한 언급은
이제 호치민에는 없습니다. 올여름 갓다옴.
승전국의 논리로는 패전한 상대국의 치부만 보여주게 됩니다.
미군과 한국군의 참상들만 보여주고 베트남전을 이해하도록 하고 잇지요.
중요한건 여행중 만난 어느 베트남인도 지난 전쟁을 기억하며
우리들을 대하는것 같지 않았다는것 입니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과 관련한 상처들이 완전히 잊혀지지는 않겠지만
많은사람들의 노력으로 아물고 있는 시점에
일부 이상한 인간들이 편향된 시각으로 그것을 들추고 다니는것에 짜증이 납니다.
글에도 언급된 필리핀이 좋은 예가 되겠군요.
전쟁이 없어도 인적교류가 이루어지면 혼혈이 생길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세대가 지나갔는데 다른사람들이 책임감을 가져야된다는게.... 말이 되나요?
군인 강간건에 대해서는 확인되는경우 반드시 정부가 배상을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추천
어떠한 이유로도 전쟁범죄이며 재판에 회부됩니다...군인이 군인을 수천을 죽었다라고 하면 영웅이지만
군인이 단 한명의 민간인이라도 알고 죽이면 살인자에요....
사실은 그전에 먼저 파병된 전투 부대가 있습니다.
바로 이기자부대 입니다.
1965년 1월 10일 비둘기 부대가 창설 됩니다.
동년 3월16일 사이공에 도착했죠.
이 비둘기 부대에는 127공병대대와 101경비대대가 있었는데,
101경비대대가 이기자 부대 입니다.
101경비대대는 알아도 그것이 이기자라는 것은 잘 모르는것 같아서요 ^^;;
맹호부대 소속이셨고 작전사령부 계셨었습니다.
월남전 관련 영화 나오면 꼭 챙겨보시고 그 외전쟁 관련 영화 보실때면 꼭 중간에 눈물을 훔치십니다.
수십년동안 아버님과 아버님 전우분들에게 월남전 얘기를 들어온 바, 우리가 편히 앉아서 학살이네 뭐네 감히 건방지게 떠들어 댈 것은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전쟁은 장난이 아닙니다. 먼저 안죽이면 내가 죽습니다. 저 당시 베트남에서는 베트콩과 민간인 구분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었습니다. 앞에서는 웃고 뒤돌아서면 베트콩으로 변해 총질합니다. 낮에는 민간인. 밤에는 베트콩.
민간인 희생없는 전쟁은 없습니다. 전쟁은 그 자체가 불운이고 최악입니다.
월남전 참전 한국군 전사자 수가 5천명이 넘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아버님 얘기로 실제 함께 작전 나갔던 전우가 전투 중 죽고 돌아오지 못하고 이런 일의 연속이었다 하십니다. 옆에서 전우가 죽어 나가는데 베트콩이 내가 베트콩이요 하고 이마에 써있는 것도 아니고 베트콩만 골라 죽이는 건 불가능.
월남전 참전했던 많은 어르신들이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계십니다.
당장에 제 아버님도 고엽제로 인해 각종 질병에 시달리시며 수술도 여러번 하셨습니다. 수시로 병원에 다니시고 하루에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수 많은 약을 복용하고 계십니다. 그런 아버님을 아들인 제가 옆에서 보고 있자면 안타깝고 가슴 아픕니디.
전쟁터 다녀와서 손이 잘리고 다리 잘리던지 아니면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어야 그나마 돈 몇푼 주는 나라가 대한민국 입니다.
월남전 참전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국방부에서는 줬다 거짓말하지만 실제로는 박정희 정권에서 다 닦아 먹었습니다. 월남전 참전으로 벌어들인 외화(67억불)는 국내 경제 발전에 큰 버팀목이 되었죠. (그 당시 대한민국 수출액 1억불)
나라를 위해 헌신, 희생하신분들을 위해 대접은 못해드릴 망정 깎아내려셔야 되겠습니까.
민간인 학살 떠들기 전에 우리나라를 위해 타국의 전장터에서 고생하고 돌아 오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한번 이라도 해 본 적 있습니까? 글쓴분께 묻고 싶군요.
베트남에서 전사한 수 많은 한국군인들. 유해발굴도 채 못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걱정에 앞서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위해 묵념이나 기도 부터 하시길
하지만 회원님 말씀이시고 또 저의 생각대로 게릴라전이 주체가된 베트남전쟁에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오고 방금까지 옆에있던 선량한 시민이 소매자락에서 수류탄을 꺼내 던질지 모르는 상황에 민간인이냐 베트콩이냐 구분하지 못하고 죽일 수 있다는걸 저도 충분히 알고있습니다. 혹여나 그로인해 억울하게 학살극에 연루됬거나 큰 죄책감과 스트레스장애(PTSD)로 정신질환과 후유증을 앓고 정글에서 피를 버려가며 싸우다가 고엽제와 네이팜과 총폭탄에 몸이 찢어지고 영원히 흉터가 남도록 나라의 미래와 동맹을 위해 조국을 위해 싸우셨고 또 그만큼 충분히 명예로운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글에서 주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파월국군을 악으로 묘사하거나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자세가 아니고 어떤 사정이 있거나 문제로 의도적인 학살과 전시강간을 자행한 사례는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전쟁은 그런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지만, 그런것에 대해 숨기기만하면 명예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감정적이지 않고 중립적인 서술을 위해 일부러 근거나 주장과 제대로된 통계가 없는 학살의혹은 모두 빼고 대표적인 내용들만 언급했고, 이들역시 어디까지나 학자와 목격자와 후손들의 주장일뿐 실제로 자행되었는지는 모릅니다.그렇다해도 국군이 분명 월남파병을 통해 일부 폐급장병들이 그러한 행위를 했고 또 사실로 밝혀진게 있습니다.
머나먼 이국에서 명예롭게 싸우신 전사분들을 욕되게 할생각은 한치도 없습니다. 절대로 그런 분들은 같이 파월가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인간들과 같은 급에 묶여서는 안됩니다.인정할 것은 해야하고 그 만큼 사과를 해야합니다. 그걸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회원님의 아버지와 같은 명예로운 분에게 욕보이게 될 일은 한개도 없습니다.
해당구역은 몇일 몇시부터 작전하니 출입하지 마라 합니다. 그래도 보면 들어가는 현지인들 있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잠재적 베트콩으로 인식 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수사한 뒤에 무고 밝혀지면 풀어줍니다.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하라' 이것이 주월한국군 사령관(채명신) 지휘서신 1호 입니다. 그렇게 한국군은 현지 민간인 보호를 위해 힘썼습니다.
첫째가 교전국의 정규병이 아닌 사람이 무기를 들고 적대행위를 할 경우 베트콩의 월남내 게릴라를 말합니다
국제법에서도 즉시 총살 할 수 있습니다 범죄성립 안됩니다
둘째가 비인도적인 행위인데 제노사이드라는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입니다
전시에 민간인이 가장 많이 죽습니다 전쟁의 잔인함이 여기에 있는데...그러나
생면부지의 타국 죽이지 못하면 죽는 전지역이 전투지역인 사지에 보낸 국가가 책임을 지면 몰라도
국가의 명을 받고 출전한 군인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소소한건은 당연히 있을거란 일반적 상식선에서 말씀드린겁니다
말씀하신것 전쟁범죄 맞습니다
다낭의 꽝남성,추라이,투이호아,호이안에 주둔해서 주로 월맹 정규군과 전투를 치뤘습니다
주로 헬기로 군수,보급을 받는 지역에 있었는데 주변 민가가 대부분 전략촌이라는모호한 지역이어서
남쪽 지역보다는 피아구분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외???한국군에게는 우호적일까요???분명 침략자라고 인식하고 무력충돌이나 우리군인들의 범법행위가 없다..
라고는 힘들겠지만 우리 군은 대민봉사를 위주로 하죠...학교나 병원 도로 건물등등등....우리가 어려운시절
원조로 살다보니 어떠한식으로 도와주는게 답인지 알고 있으니..절대는 아니지만 대부분 물건보다 기반시설에
역량을 집중하죠..그래서 베트남에서도 우리 국민이 관광이나 여러이유로가도 홀대가 별로 없죠....
잘못한건 무조건 반성하고 정식으로 사과 해야 하는게 맞습니다. 우리가 안하는데 일본에 어떻게 사과를 받겠습니까!
베트남전도 박정희씨가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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