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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램프 증후군’을 아십니까

부엌의 수납장을 정리하다 깜짝 놀랐다.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과 라면이 쓰레기 봉투 하나에 가득 찼다. 아까워라. 돈도 문제지만 음식을 버려야 하니 죄책감이 들었다. 날짜를 확인하며 채워야 했는데 그냥 사들이기만 했다. 이게 다 지진 때문이라는 핑계를 댄다. 작년 7월에도 7.1 강진이 남가주를 강타했고 그동안 자잘한 약진이 이어졌기에 남가주 한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남가주는 ‘빅원’이라고 불리는 지진이 곧 올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으로 공포와 걱정이 따라붙는다.

만약을 대비해 항상 병물과 통조림 그리고 부탄개스를 넉넉히 준비했다. 옆집에 사는 로울데스에게 만약 지진이 나면 손녀딸 분유를 탈 더운 물을 우리가 책임진다고 장담을 해 두었다. 얼마전 조카의 남편이 주재원으로 미국으로 이사를 왔기에 성탄절을 우리 집에서 보냈다. 차고에 쌓인 음료수와 물 그리고 통조림을 보고 조카는 작은 가게라며 놀라했다.

이 정도는 앞으로 있을 재난을 대비한 준비성을 이유로 포장이 되지만, ‘어떡하지?'하는 토를 달며 세상 걱정을 가불해서 하기에 자주 핀잔을 듣는다. 걱정도 팔자라고 아들은 불평한다. 밥은 먹었니. 비 오는데 운전 조심해라.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될 수 있으면 오늘은 집에 있어라. 총기사고가 빈번한데 사람이 많이 모이는 콘서트에는 가지 말아라. “엄마는 투 머치(too much)"라고 한다. 남편도 같은 말을 한다.

얼마 전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서 창밖을 보다가 보도 위의 유모차에 앉은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어머!”하고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놀란 남편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는 바람에 차 사고를 낼 뻔했다. 아이가 울까 봐, 놀랐을까 봐 걱정이 됐다는 내 말에 남편은 기막혀 했다.



'램프 증후군(Lamp Syndrome)’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에 대해 마치 알라딘의 요술 램프의 요정을 불러내듯 걱정을 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현상을 말한다. 걱정은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실제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마치 요술과도 같다는 점에서 램프 증후군에 비유된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쉽게 접할 수밖에 없는 정보로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는 세태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라고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가 말했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는 속담이 딱 맞는다. 마음에 여백이 없고, 실수 없이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불러오는 과잉 근심이 문제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가 현재를 불안하게 만든다. 더 많은 걸 소유하려 하고, 더 많은 관심을 받으려 하지만 내 마음조차 조절하지 못하기에 생기는 것이 걱정이다.

걱정에도 유통기한이 있어서 어느 정도 지나면 버려야 하니 미리 재워두지 말자. 세상 고민 혼자 해결하려는 듯 스트레스 받지 말고 적당히 내려놓고 설렁설렁 모자란 듯 살아야 한다. 이렇게 마음을 다지는 것도 괜한 걱정인데 나는 어쩔 수 없이 걱정도 팔자라는 말을 받아들여야 하나 보다.


이현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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