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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

복지 친화적이지만 안보는 강한 보수, 정책 아이디어 풍부 [2020년]
조충희 기자 choongbiz@businesspost.co.kr 2020-02-05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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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

유승민은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회 위원장이다.

개혁적 보수, 합리적 보수를 재건한다는 정치적 비전을 품고있다.

의원 8명의 새로운보수당을 이끌고 108석의 자유한국당과 보수통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1958년 1월7일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을 지냈고 한국산업조직학회 사무국장과 공정거래위원장 자문관을 역임했다.

김대중정부에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맡았으나 정부정책에 반기를 들어 연구원 경력을 지속하기 어려워지자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의 권유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의원이 됐다가 2005년 사퇴해 대구 동구을 보궐선거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이 지역구에서 3번 더 내리 당선됐다.

2005년에 한나라당 대표비서실장으로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보좌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으로 일하기도 했으나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고 대선에 도전했다.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손잡고 바른미래당을 창당해 중도와 개혁보수를 아우르는 정치연합을 시도했으나 내부 갈등과 지지율 정체로 분열됐다.

바른미래당에서 나와 7명의 의원과 함께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한 뒤 자유한국당과 보수통합을 논의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주장하는 등 보수진영에서도 상대적으로 강한 개혁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품격 있는 보수정치'를 추구한다.

경영활동의 공과
[Who Is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
▲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2017년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탄핵이 인용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뒤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개혁적 보수정당 정착 노력
유승민은 2017년 1월 새누리당 비박근혜계 의원 40여 명을 규합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지지부진한 지지율 속에서 친김무성계와 친이명박계 의원들이 이탈해 새누리당이 당이름을 바꾼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한 이후 안철수 전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합당해 2018년 2월 바른미래당을 창당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8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패배를 책임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바른미래당 당권을 쥔 손학규 대표와 대립하다 계파 의원들을 이끌고 탈당해 2020년 1월 새로운보수당을 세웠다. 현재 소속 의원 8명으로 세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주로 20~30대 남성층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당 지지율이 2% 선에 머물러 있다.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현재 자유한국당과 보수 통합논의에 들어갔으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대선후보 단일화 무산과 바른정당 탈당사태
2017년 4월 대선 당시 바른정당과 유승민이 여론조사에서 선거비용 보전도 받지 못하는 3~5% 수준의 낮은 지지율을 보여 선거에서도 지고 보수층의 마음도 붙잡지 못한 채 고사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왔다.

이에 따라 바른정당 내부에서 자유한국당이나 국민의당과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유한국당은 지지율이 높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중심으로 유승민 후보와 조원진 새누리당 후보까지 단일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유승민은 “단일화의 전제조건이란 둘 중 하나가 대통령이 돼도 좋다는 것”이라며 “홍 지사하고 단일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에서도 긍정적 메시지를 보였지만 유승민은 “박지원 대표 등 국민의당 많은 의원은 우리와 생각이 많이 다르다”며 국민의당과 연대 가능성도 일축했다.

바른정당 의원들은 보수 후보 단일화를 명분으로 유승민의 사퇴를 종용했으나 유승민은 끝내 거부했고 이에 따라 바른정당 내 김무성계 의원 13명이 탈당했다.

탈당파 가운데 한 명인 김성태 의원은 "후보 경선 과정에서 보수후보 단일화를 여러 번 약속했는데 갑자기 입장을 선회했다"며 "유승민으로서야 다음 대선주자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지만 정작 당은 만신창이가 됐다"고 비판했다.
[Who Is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
▲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가 2017년 4월 서울 상암동 엠비씨스튜디오에서 다른 정당 후보들과 생방송 토론을 시작하기 앞서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퍼포먼스를 하고있다. <연합뉴스>
△바른정당 창당과 대선후보로 선출
유승민은 2016년 12월27일 다른 비주류 의원들과 새누리당을 탈당해 개혁보수신당(이후 바른정당으로 확정)을 창당했다. 유승민은 바른정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올랐지만 야권 후보들과 비교해 지지율이 낮은 것이 약점으로 꼽혔다.

2017년 1월26일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경선에서 남경필 후보와 경쟁했다. 유승민과 남경필은 모병제와 사교육 폐지, 증세 등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펼쳤으며 경선 결과 유승민이 62.9%의 득표를 얻어 대선 후보가 됐다.

유승민은 ‘경제대통령’을 천명하면서 경제위기와 안보위기 극복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논의 주도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불거지자 유승민은 박근혜 대통령의 2선후퇴 등 정치적인 해법을 주장했으나 촛불집회에 100만 명 이상이 잇달아 모여 탄핵을 요구하자 “대통령도 당도 모든 것을 던져버려야 할 때”라며 박 대통령의 탄핵 추진으로 선회했다.

2016년 새누리당 내 비박근혜계 의원들을 이끌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며 "오로지 정의가 살아있는 공화국만 생각하며 탄핵 표결에 나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안에서 가장 큰 세력을 이끌었던 김무성보다 유승민은 상대적으로 계파 의원이 적었으나 박 전 대통령 탄핵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새누리당 공천학살 사태와 무소속 당선
2016년 2월 총선 공천 과정에서 유승민 등이 ‘공천 살생부’에 포함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해 3월15~16일 새누리당 공천 결과 친유승민계 의원들 상당수가 탈락했지만 유승민의 공천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2016년 3월23일 유승민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이날도 공천이 이뤄지지 않았다. 총선후보 등록일인 3월24일이 지나면 선거법상 무소속 출마도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결국 유승민은 23일 밤 11시에 “진박계가 부끄럽고 시대착오적 정치보복을 했다”며 새누리당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은 대구 동구을에 공천을 하지 않았다. 그 뒤 유승민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유승민계 의원들을 지원하면서도 선거 이후 복당을 신청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2016년 4월13일 총선에서 유승민이 대구 동구을 의원으로 당선했지만 그가 지원했던 친유승민계 의원들은 대부분 쓴잔을 마셨다. 4월19일 새누리당에 복당원서를 냈다. 새누리당 안에서는 유승민 등의 복당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어났지만 결국 6월16일 유승민의 복당을 허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치적 결별
한나라당은 2012년 2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는데 유승민이 당원들의 동의 없이 당이름을 바꿨다고 비판하면서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유승민은 당시 “박근혜 비상위원장과 대화할 때 한계를 느낀다”며 “쓴소리도 만나야 하는데 만나기는커녕 전화통화도 어렵다”고 말했다.

2012년 7월 당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캠프를 차렸는데 유승민이 빠지면서 사이가 이전보다 멀어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안철수 열풍’ 등으로 지지율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2012년 9월 선거대책위원회에 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당시 박 후보가 늦은 저녁에 유승민의 장모 상가에 직접 찾아가는 등 영입에 공을 들였다.

2015년 2월 ‘친박근혜계’로 분류되던 이주영 의원을 꺾고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됐을 때 ‘유승민의 승리가 아닌 박근혜의 패배’라는 평가가 일각에서 나왔다. 원내대표로 취임하자마자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법인세 인상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청와대의 인사쇄신을 요구했다.

2015년 5월 유승민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수정할 수 있도록 국회법 개정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공무원연금법안을 처리하기로 야당과 합의했다.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유승민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수정원안의 통과를 추진했고 결국 통과됐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 활동
유승민은 2005년 초에 한나라당 대표비서실장을 맡으면서 당시 박근혜 대표의 친정체제 구축에 한몫을 한 것으로 평가됐다. 2005년 3월 열린우리당에서 추진했던 행정도시특별법의 찬성 여부를 놓고 박 대표와 반대파 의원들이 충돌해 한나라당 안에서 내분이 일어났을 때도 박 대표의 뜻을 사실상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5년 10월 재선거 당시 비례대표 의원에서 사퇴하고 대구 동구을에 출마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사였던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맞붙으면서 ‘노무현 대 박근혜’의 대리전 양상을 보이게 됐다. 유승민이 이 전 수석과 접전을 벌이자 박 대표와 이회창 전 총재 등이 대구를 찾아 지지행사에 참여한 끝에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박 전 대표가 2007년 대선에 나섰을 때 핵심참모로 활동했다. 2007년 1월부터 자문그룹 8개를 이끌면서 그룹별 정책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8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경선에서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에도 박 전 대표의 측근인사로 남았다.

2008년 4월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계 인사들이 한나라당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을 때도 대구 동구을에서 다시 공천을 받았다. 박 전 대표 등의 지원을 받은 끝에 18대 국회의원으로 재선했다. 그 뒤 여당 의원인데도 혁신도시와 세종시 문제 등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잦았다.

2010년에는 박 전 대표에게 경제정책을 자문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11년 11월 한나라당에서 평생 맞춤형 복지와 무상급식의 단계적 확대를 뼈대로 한 ‘박근혜식 복지’를 당론으로 채택했는데 유승민의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됐다.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개혁 논의 등 경제학자로서 활동
유승민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경제학자로서 규제개혁과 공기업 민영화 등 보수적 정치철학에 따른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는 소신을 꾸준히 펼쳤다.

그는 1995년 한국산업조직학회 학술회의에서 "대통령직속의 규제개혁청을 신설해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규제개혁은 독과점을 방지하는 것이지 친재벌적 성격의 정책이 아니라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1994년 공기업민영화 토론회에서는 민영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와, 지배구조의 일원화를 주장했다.

1998년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설치,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의 두산그룹 인수를 통한 민영화, 2002년 한국정보통신공사(현 KT) 민영화 등에서 사회적 논의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재벌개혁을 위한 연구도 진행했다. 1993년 출자총액 제한제도, 채무보증 한도 축소, 기업분할 명령제도 도입 등 혁신적 재벌개혁 정책들을 제안하기도 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Who Is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
▲ 2018년 3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서울특별시당 개편대회에서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왼쪽)과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미소 짓고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은 개혁적 보수, 합리적 보수를 재건하겠다는 비전을 안고있다.

유승민은 원내 8석의 새로운보수당을 이끌고 108석의 자유한국당과 보수진영의 통합을 이끌어내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르면 2월 중 출범을 목표로 하는 통합보수신당(가칭) 내에서 의미있는 지분을 들고와 개혁보수 명분도 챙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수진영에서 박근혜계, 김무성계 정치인들과 경쟁해야 한다.

유승민은 그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자유한국당 내 친박근혜계 세력과, 우리공화당 등의 반감을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언급하기도 했다.

유승민 개인적으로는 2020년 4월 총선에 대구 동구을 지역구에서 5선고지를 넘을 수 있느냐도 보수진영의 대선주자로 부상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2016년 무소속으로 출마할 당시와 달리 현지 여론이 부정적으로 조사돼 반드시 통합보수신당 단일후보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 평가

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출신의 경제학자다. 학자로서 시장친화적 모습을 보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중도적이고 합리적 보수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시절 “재벌은 환란의 종범이고 주범은 시스템의 위험을 방치한 정부”라며 지배구조 개편 등을 통한 강력한 재벌개혁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의 직접적 개입은 반대해 보수주의 경제학자로 분류됐다.

기획력이 좋고 ‘마당발’로 소문날 정도로 친화력도 뛰어나다. 특별한 조직이나 팀을 만드는 것보다는 사안별로 인맥을 통해 접근하는 쪽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리력이 뛰어나고 정책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내 정치권에서 '책사' 역할을 주로 맡았다. 다만 2014년 이후 ‘할 말은 한다’는 이미지가 덧붙여지면서 보스형 정치인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나치게 학구적이고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을 한다는 시선도 있다.

한나라당 시절 원칙이 아닌 것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돼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을 때부터 측근인사였지만 그때도 박 대통령에게 직언할 만큼 까칠하고 꼿꼿한 면이 있다고 평가됐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요청으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 전 총재가 200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는 대선캠프에서 전략(정책공약담당)팀장으로 일했다. 당시 대부분의 정책공약을 직접 검토하면서 ‘이회창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으로 꼽혔다. 이 전 총재는 2017년 1월26일 유승민의 대선 출정식에 참여해 지지를 선언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을 때부터 대구경북(TK) 출신 정치인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때 감사원과 혁신위원회를 ‘무식한 기관’으로 표현하고 ‘한국판 뉴딜 정책’ 등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 진영에 섰을 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후보자격 검증을 촉구하고 독설을 자주 해 ‘저격수’로 불리기도 했다.

토론을 잘 한다. 유시민 작가가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2005년 3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유승민 의원은 상대의 말을 잘 이해하고 논지를 잘 펼치며 알면서 거짓말하는 방식의 논쟁을 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유시민 작가와 국회의원 시절 종종 부딪치기도 했다. 유 작가가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2005년 10월 유승민은 대구 동구을 재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때 유시민 작가는 국회에서 사퇴안을 의결하기에 앞서 “17대 국회의원이 17대 국회의원이 되려고 17대 국회의원직을 내놓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부결을 주장했다.

같은 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인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과 2007년부터 비슷한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환상의 혼합복식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도 절친한 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알려졌다. 유 부총리가 유승민의 서울대 경제학과 1년 선배다. 유 부총리가 유치송 전 의원의 장남이라 ‘정치인 2세’라는 공통점도 있다.

이준석 바른정당 당협위원장이 2004년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이준석 위원장의 아버지가 유승민과 경북고등학교 동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경환 의원,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강석훈 의원과 함께 ‘친박계 위스콘신 4인방’으로 불렸다. 4명은 모두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를 나왔다.

김인규 한림대학교 교수와 매우 친하다. 한국개발연구원 동료였으며 김 교수와 친분으로 유승민이 한림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국내 보수진영에서는 비교적 복지 친화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0년대 초에 한국 사회의 주류세력을 ‘중도보수세력’으로 규정한 적도 있다. 현재의 캐치프레이즈도 ‘따뜻한 보수’로 사회적 양극화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고 있다.

2011년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을 정치적인 동지로 부르는 등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다만 그때도 얼굴을 붉혀가면서 할 말은 하는 사람으로 평가됐고 결국 2012년부터 사이가 다소 멀어지면서 ‘탈박’으로 불렸다.

보수주의를 ‘지키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한국의 헌법 가치, 따뜻한 공동체를 세우고 붕괴를 막는 것, 안보 등 3가지를 보수주의자가 지켜야 할 가치로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에 소속됐을 때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태 등에서 북한에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도 안보만큼은 가장 보수적 인사로 자칭하고 있다.

반면 노동과 복지 분야에서 비교적 중도적인 성향을 나타내면서 야당 의원들에게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2016년 새누리당 내 비박계 의원들을 규합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1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그는 "아버지에게 ‘절대 비굴하지 말고 의협심이 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정치인으로서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고 말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2020년 1월17일 페이스북에서 통합 논의를 위해 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의 양당 협의체를 제안한 점을 놓고 "통합 3원칙을 (자유한국당이) 어렵게 수용했다면 더 이상 몽니 부리지 말고 통합 실무로 나아가 통합 신당을 창당하는데 협조함이 큰 길을 가는 정치인의 도리"라고 비판했다.

불교 신자다. 불교를 믿는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정각회’ 구성원이다.

좌우명은 ‘초지일관(初志一貫), 불요불굴(不撓不屈)’이다.

‘나누면서 커간다’(1996.03.01), ‘한국 기업의 운명을 바꿀 21세기 미래경영’(2000.04.25), ‘재벌 과연 위기의 주범인가’(2000.06.21) 등 책 3권을 저술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영국의 보수정치 이론가인 에드먼드 버크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들었다.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영국 사회가 혁명의 혼란없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방향을 놓고 고민한 점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대처 전 총리의 경우 정책보다는 지도자로서 보여준 강단과 의지를 존경한다고 했다.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시로 ‘서시’와 ‘별 헤는 밤’을 들었다. 가수 가운데 김광석과 조용필을 좋아한다.

사건사고
[Who Is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
▲ 2017년 4월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바른정당 부산 필승결의대회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대통령선거후보와 김무성 의원이 손을 들어 결의를 다지고 있다. <연합뉴스>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인사청탁 의혹
2018년 7월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안종범 전 수석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녹취파일을 공개하면서 유승민, 김무성 등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이 안 전 수석에게 인사를 청탁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유승민은 2014년 7월 안 전 수석에게 경북고 출신 지인인 조모씨를 대우증권 사장과 서울보증보험 사장 등에 내정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여러차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조모 씨는 같은 해 10월 한국벤처투자주식회사 사장에 선임됐다.

이와 관련해 유승민은 "당시 제 의도는 청와대가 미리 내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정된 인사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탁으로 비친 점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유담씨 유세현장 성희롱 사건
2017년 5월 대선에서 유승민의 딸 유담씨가 유세현장에서 지지자들과 사진촬영을 하던 가운데 성희롱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담 씨는 서울 홍대 부근에서 진행된 유세현장에서 지지자들과 인증샷을 찍던 도중 한 남성이 유담씨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얼굴을 밀착한 채 혀를 내미는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은 뒤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게시해 성희롱 논란이 불거졌다.

△김무성 수첩사건
2015년 1월 당시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의 비밀문건을 유출했다는 파동이 일어났을 때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에 ‘청와대 문건 파동 배후는 K와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메모가 있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그 뒤 K가 김 대표 자신, Y는 당시 다음 원내대표 후보였던 유승민으로 밝혀졌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과 음종환 청와대 홍보기획비서실 행정관 등이 2014년 12월18일에 술자리에 참석했는데 이때 음 행정관이 김 대표와 유승민을 청와대 문건유출 파동의 배후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음 행정관은 즉각 부인했지만 파문이 커지자 사표를 냈다. 음 행정관은 ‘친박 보좌관’으로 꼽혔다.

유승민은 즉각 “내가 청와대 문건유출 파동의 배후라는 보도는 근거 없는 소문을 기초로 한 것”이라며 “나는 문건유출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청와대 행정관이 유승민을 문건유출 파동의 배후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도 더욱 커진 것으로 평가된다.

△보좌관의 향응 문제
2013년 2월 새누리당의 전현직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대구 테크노파크로부터 골프접대 등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는데 유승민의 보좌관 박모씨도 포함됐다.

2월14일 박 보좌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문에서 “정치에 입문한 이래 13년 동안 깨끗한 정치를 해왔다고 자부했으나 보좌관의 처신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라며 “지역 주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논문 중복게재 의혹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승천 민주통합당 대구 동구을 후보가 유승민이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일하던 시절 논문을 중복게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똑같은 논문을 1989년 11월과 1992년 9월에 두차례 발표했다는 것이다.

유승민은 즉각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이후에 출판하는 책에 포함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흔한 일”이라며 “서울대학교의 연구윤리지침에도 ‘논문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를 모아 저서로 출간하는 경우는 이중게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고 반박했다.

△호남 비하 발언현장에 참석
2006년 11월 강동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신현덕 전 경인TV 대표 등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술자리에 함께 참석했는데 이때 강 위원이 “호남이 다 썩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야기에 휩쓸렸다”, “납치 사건 때 DJ를 죽이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 등 호남 지역을 비하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의 녹취록이 2007년 4월에 공개되면서 그 자리에 참석했던 유승민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녹취록에 따르면 유승민도 당시 현장에서 KBS의 관리직 노조가 법원의 판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듣자 판사의 이름을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에서는 강 위원의 사퇴를 요구하는 동시에 유승민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중립성 논란
한나라당 초선의원 시절인 2004년 10월에 유승민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및 소관연구기관 국정감사에서 본래 몸담고 있던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원인 장하원 박사가 열린우리당 정책실장으로 갔는데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휴직 중이라는 이유로 한국개발연구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김중수 한국개발연구원장은 국회의장의 요청에 따라 장 박사를 국회에 일시적으로 파견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승민은 “장 박사가 열린우리당의 핵심 당직에 임명된 것은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라며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데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사표를 받지 않은 채 무급휴직으로 처리한 점은 정치적인 중립을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하원 박사는 장하성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의 친동생이다.

△장하성 교수와 정책논쟁
2002년 10~11월에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으로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캠프에서 일할 때 이 총재와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의 경제정책을 놓고 장하성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와 논쟁했다.

장 교수는 2002년 10월에 언론기고를 통해 이 총재가 출자총액 제한, 증권집단소송, 계열분리 명령 등을 폐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점이 지나치게 재벌 친화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유승민은 장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재벌 출신인 정몽준 후보의 정책부터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가 2002년 11월에 다시 언론기고를 통해 유승민의 주장을 재반론하면서 논쟁이 지속됐다. 유승민은 조선일보를 통해 2차 반론을 내놓았는데 이때 "노무현 후보는 ‘재벌해체론자’"라고 주장했던 대목이 실제 지면에서 삭제돼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
▲ 2017년 1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바른정당 대통령선거 출마 기자회견장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대통령선거후보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왼쪽)를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2년~1983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으로 일했다.

1984년~1987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 조교로 근무했다.

1987년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됐다.

1993년 행정쇄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94년~1995년 한국산업조직학회 사무국장으로 재임했다.

1996년~1997년 미국 UC샌디에이고 IR/PS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보냈다.

1998년~1998년 공정거래위원장 자문관으로 일했다.

1998년~1999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2003년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일했다.

2003년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연구교수을 근무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이 됐다.

2004년~2005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2005년 제3정조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05년 대구 동구을 국회의원 당선됐다.

2005년 박근혜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내경선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았다.

2008년 한나라당 제18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008년 혁신도시건설촉진 국회의원 모임 간사를 맡았다.

2008년 국방위원회 한나라당 간사로 일했다.

2008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9년 군용비행장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에 가입했다.

2010년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2010년~2011년 대구시당 위원장을 맡았다.

2011년 한나라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2년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2015년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5년 국방위원회 정보위원회 위원으로 의정생활을 했다.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았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7년 바른정당을 창립했다.

2017년 바른정당 대선후보에 올랐다.

2018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9년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을 결성했다.

2020년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다.

2020년 새로운보수당 인재영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20년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학력

1970년 삼덕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3년 대륜중학교를 마쳤다.

1976년 경북고등학교 졸업했다.

1982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했다.

1987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아버지 유수호 전 의원과 어머니 강옥성씨의 2남1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유승정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다.

유 전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대구 중구에서 제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16년 11월에 타계했다.

누나로 유진희씨가 있다. 김진기 전 대구고등법원장이 유승민의 매부다.

배우자 오선혜씨 사이에서 아들 유동훈씨와 딸 유담씨를 뒀다.

◆ 상훈

198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공로상을 받았다.

1991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1991년 경제기획원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5년 머니투데이 제1회 대한민국 최우수법률상을 수상했다.

2015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 기타

'나누면서 커진다'(1996), '재벌 과연위기의 주범인가'(2000), '한국 기업의 운명을 바꿀 21세기 미래경영'(2000)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2017) 등의 책을 썼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19년 3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해찬의 재산은 2016년 기준으로 37억 원이다.

육군 병장 만기전역이다.

어록
[Who Is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
▲ 2007년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통령선거후보캠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혹시라도 중국 눈치 보기 때문에 우한 폐렴의 확산을 제대로 막지 못한다면 분명히 심판받아야 한다. 우한 폐렴이 지난 연휴 내내 우리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정부의 뒷북치는 보건 행정으로 국내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하고 얼마나 퍼질지 모르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있다." (2020/01/28, 청와대 앞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검찰보복인사 규탄 기자회견에서)

"보수 정치권이라고 할 것도 없이 정치권 전체가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맞다. 박 전 대통령이 겪고 있는 고초에 대해 인간적으로 너무나 가슴이 아프지만, 정치인으로서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하며 탄핵은 보수가 미래로 나가기 위해 역사에 맡겨야 한다." (2020/01/19, 새로운보수당 경북도당 창당대회 기자회견에서)

"30년 동안 안 입은 청바지를 새로운 보수당의 당론을 지키기 위해 오늘 입었다. 우리가 이 길을 지키자. 가다가 죽으면 어떤가. 제가 죽으면 제 후배가 그 길을 갈 것이다. 한 사람씩 가면 대한민국 정치가 바뀔 것이다. 적진에 들어갈 때 내가 제일 먼저 그 땅을 밟고 제일 마지막에 나오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새로운보수당에서는 지키겠다." (2020/01/05, 새로운보수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광주의 딸 권은희 의원은 광주에서, 부산의 아들 하태경 의원은 부산에서, 제일 어려운 대구의 아들 유승민은 대구에서 시작하겠다. 지금부터 우리는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죽음을 불사하고 전진하는 결사대다." (2019/12/08, 변화와혁신 중앙당 발기인대회에서 대구 출마를 선언하며)

"땀흘려 노력해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룰 때 거기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이러한 신뢰 위에 우리는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이 최소한의 믿음이 무너지고, 권력을 잡은 저들이 그토록 배척하던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는 사회라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는 거다." (2019/08/22, 페이스북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 관련 의혹을 비판하며 )

"역사와 주권은 타협할 수 없지만 경제와 안보를 위해서 협력해야 할 이웃이 일본이다. 일본과 관계에서 국익을 위해 과감하고 대담한 변화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아베와 만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촉구한다." (2019/07/14, 페이스북에서)

"당시 제 의도는 청와대가 (인사를) 미리 내정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내정된 인사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탁으로 비친 점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2018/07/27,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인사청탁 의혹을 해명하는 보도자료에서)

"지난 1년 동안 잘못된 경제정책의 핵심에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환상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 경제가 잘못되고 있는 것은 이 정부의 경제정책 철학, 기조, 정책 수단 등 모든 것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정부에 레드카드를 꺼내야 한다." (2018/05/29, 바른미래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하며)

"처절하게 무너진 보수 정치를 어떻게 살려낼지 보수의 가치와 보수 정치 혁신의 길을 찾겠다. 개혁보수의 길만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보수가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다. 눈 앞의 이익에만 매달려 적당히 타협하지 않겠다." (2018/06/14, 바른미래당 대표 사퇴 기자회견에서)

"두 사람은 양당의 대표로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통합개혁신당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의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힘을 합쳐 더 나은 세상, 희망의 미래를 열어가는 통합개혁신당을 만들겠다." (2018/01/18,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단일화를 하려면 둘 중에 누가 돼도 좋다는 전제가 성립돼야 하는데, (홍 후보는) 그 전제조차 성립이 안 되는 무자격 후보다. 인위적인 단일화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보다는 국민들께서 어느 후보가 자격이 있고 보수를 대표할 수 있는지를 봐주셔야 한다." (2017/04/03,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대통령이 된다면 기자회견을 아마 자주 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언론에 나서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밝힌다. 나는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아니다. 있는 대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질문을 중간에 자르지도 않고 끝까지 다 받는다. 그런 부분은 지금까지 충실하게 해 왔다.” (2017/02/08,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2005년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일했을 때는 대통령이 되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당시 정책적 능력은 부족하지만 기본과 원칙은 잘 잡혀 있으며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 때문에 국가의 지도자로서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그때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서 경선을 끝까지 도왔고, 그 이후부터 멀어지게 됐다.” (2016/02/02, JTBC ‘썰전’에 출연해 유시민 작가, 전원책 변호사와 대담하면서)

“학생들의 꿈이 건물주가 되는 것인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 이제 우리는 한국을 ‘창업하고 싶은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 고시학원이 실리콘밸리와 같은 창업의 요람이 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2017/02/05, 창업활성화에 중점을 둔 ‘혁신성장 1호 공약’을 발표하면서)

“많은 대통령 후보들 가운데 경제전문가는 내가 유일하다. 경제위기를 막는 대수술을 하는 의사가 되겠다.” (2017/01/26, 대선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영국의 보수정치 이론가인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이라는 게 올바른 관습이나 전통, 질서까지도 다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영국이 어떻게 프랑스 대혁명 같은 것을 피하면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것이 보수의 정신이다.” (2017/01/02,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2007년 대선캠프에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으로 참여했을 때 연설문을 미리 써서 줬는데 완전히 다른 연설을 한 경우가 있기는 했다. 2007년에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 선언문이 그랬다.” (2016/10/31,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손봤다는 사실을 놓고)

“대구는 눈이 귀한 곳인데, 그저께 눈이 왔다. 봄이 곧 올 것이다. 앞만 보고 뛰겠다. 결과는 대구 시민, 동구 주민들이 결정해 줄 것이다. 거리에서, 시장에서 주민들의 손을 잡으면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무거움을 절감하고 있다.” (2016/02/01,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4.13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소감을 밝히며)

“신부님과 신자 앞에서 거짓말 절대 안 한다. 나는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다. 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많이 했다는데 다 세어보면 몇 번 안했다. 내가 좀 까칠하고 말할 때 덜 굽히고 매너가 부족하며 말이 거칠 수는 있지만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고 말한 것으로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하겠다.” (2015/10/16, 대구 계산성당에서 열린 ‘대구, 개혁의 중심이 되자’ 특강에서)

“거취 문제의 혼란으로 국민이 실망하게 만든 점은 내 책임이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는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지만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 (2015/07/08,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사퇴하면서)

“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벌을 받고 있다.” (2015/06/24, 동아일보 기사에서 동료 의원들과 식사하던 도중 했다고 나온 말, 박근혜 정부의 최대 과제로 꼽혔던 공무원연금법안을 처리했지만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수정을 위한 국회법 개정안도 함께 통과시켰다가 청와대와 갈등을 빚자)

“현장에 다녀보면 대기업과 재벌의 논리대로 따를 수 없다. 폐지를 주워 팔아 겨우 먹고사는 어르신들을 지역구 현장에서 보면 ‘어떻게 정부가 이렇게 방치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2015/02/07,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부터 노동과 복지 이슈에서 ‘좌클릭’을 하게 된 이유로)

“"증세를 만약 한다면 당연히 가진 자한테 세금을 더 부과하는 증세가 돼야 한다.” (2015/02/03,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과거보다는 조금 멀어졌지만 대통령에 대해 정치적, 인간적으로 신의를 지키고 있다. 퇴임 이후 등 어떠한 경우에도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2015/01/04, 영남일보와 인터뷰에서)

“국가안보실장, 외교장관, 통일장관, 비서실장이 다 모여서 기껏 짜낸 꾀가 이것밖에 안 되나, 그렇게 나이브(순진)하나. 우리가 북한 측에 대통령의 면담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어떻게 대통령의 면담 카드를 그렇게 싸게 쓰느냐, 잘못된 것이 아니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대통령의 예방 문제와 관련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순진하게 제안을 하고 무시를 당하느냐. 보좌하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 아니냐.” (2014/10/08, 국정감사에서 북한 측 ‘실세 3인방’이 남한에 왔지만 청와대 방문을 거부한 점을 놓고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국가안전보장회의 구성원들을 비판하면서)

“이거 누가 하는 건가.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건가? 지금이라도 국방부나 외교부 등을 중심으로 박근혜 정부가 일관된 국가안보전략을 작성해야 한다. 그런 것이 없으니 대통령이 미국에 갔을 때 ‘중국 경도론’ 관련 자료가 나온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 관련된 한국의 포지션은 넣었다 뺐다 장난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2014/10/07,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뉴욕 유엔총회 방문기간에 발언자료로 사전에 배포됐다가 박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아 취소된 ‘중국 경도론’과 관련된 내용을 비판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주변 사람들이 잘못된 정책으로 대통령을 잘못 이해시키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다 하고 있어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를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시점도 놓쳤다. 이제는 비판하면 총구를 거꾸로 하고 내 편을 쏘는 것처럼 되버려서 한 마디도 하기 힘들다.” (2013/12/29, 머니투데이 기사에서 당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반대하며)

“김대중, 노무현 진보정권 10년을 겪은 뒤 이명박 대통령이 쉽게 당선됐다. 이명박 정부 5년이 성공을 못하고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은데, 그럼에도 보수에 5년간 더 기회를 준 것이다. 국민들이 ‘박근혜’라는 새 인물에 대한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다시 이명박 정부 5년과 같은 실정을 되풀이할 경우 이번이 지나면 보수는 끝이다. 또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48%의 목소리를 포용하고 통합하라, 이런 것도 국민의 명령이다. 48% 중에 상당수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정치, 정책이 매우 중요하고, 그게 성공의 키가 될 것이다.” (2013/01/01, 영남신문과 인터뷰에서)

“박근혜 후보의 텃밭인 대구에서조차 소위 친박계나 박 후보의 주변이 부패해 있고 낡은 이미지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는 반발이 있다. 반전을 위한 모든 카드를 백지상태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박 후보 스스로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2012/10/04, 매일신문과 인터뷰에서 당시 박근혜 대선후보를 제외한 당 지도부 등의 사퇴를 요구하며)

“이번 출마 선언문은 박 전 위원장이 직접 쓴 흔적이 역력하다. 2007년에는 보수 성향이 짙었지만 이번에 제안한 경제민주화에는 진정성이 깃들었다고 할 수 있다.” (2012/07/23, 주간동아 기사에서 당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7월10일 내놓은 대선출마 선언문을 평가하며)

“종북, 친북, 좌경화 세력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하되 너무 ‘수구꼴통’처럼 보이지 않도록 전향적인 의견과 대책을 제시해 새누리당을 믿도록 만들겠다.” (2012/07/06, 국회 국방위원장으로 당선된 뒤 소감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보면서 민주당이 얼마나 비민주적인 정당인지 절감하고 있다. 만약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처음 추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저렇게 할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1/11/14,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처리를 반대하는 민주당을 비판하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내 관계는 내가 그동안 할 말을 다했고 쓴소리도 다 했던 관계다. 내가 무슨 박 전 대표의 대리인이나 하수인과 같은 관계가 아니다.” (2011/06/28, 한나라당 당대표선거를 앞두고 열린 내부 토론회에서 지나치게 ‘친박’이라고 지적되자)

“옳은 길이라면 민주당을 따라하는 것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민생 문제에 좌우가 있을 수 없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중산층 이상과 대기업만을 옹호하는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됐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친서민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한나라당이 막대한 재원이 드는 4대강이나 감세 문제를 밀어붙이면서 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생활자 지원 문제 등을 등한시하니 국민들이 실망을 느낀 것이다. 한나라당이 서민들의 편이라는 것을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2011/06/23, 한나라당 당대표선거에 출마했을 때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4대강 사업에 22조원을 쓰면서 결식아동과 비정규직을 위한 예산이 없다는 것은 보수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내 공약에 관해 큰 틀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공감할 것이다.” (2011/06/21, 한나라당 당대표선거에 출마했을 때 내일신문 기사에서)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일 경우 외교적·국제법적 검토는 외교부나 통일부에서 하고 국방부는 군사적 제재·응징 수단을 검토하는 게 상식적인 나라 아닌가.” (2012/04/15, 국회 국방위원회에 있었을 때 천안함이 침몰한 뒤 북한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당시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 군사적인 조치를 요구하면서)

“노무현 정권에서는 행복도시, 혁신도시가 지방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닐지라도 고육지책으로 그것이라도 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08/11/01, 이명박 정부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추진하자 반발하며)

“12월 대선까지는 내 이미지에 신경쓸 생각이 없다. 내 장사는 안 한다. 대선 승리가 중요하다. 정치판의 3D(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업종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은가.” (2007/07/21, 중앙선데이와 인터뷰에서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의 대선후보 검증에 앞장서면서 ‘정책통’ 이미지가 훼손됐다고 지적받자)

“대운하 공약은 누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공약이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낙동강 바닥을 파고 시멘트를 발라서 운하를 만드는 방식으로 21세기 한국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이다.” (2007/04/25,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운하 공약을 비판하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이제 대답을 해야 한다. ‘예스’든 ‘노’든 대답을 해야 국민의 의혹이 해소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끌고 갈 것이며 언제까지 계속 웃기만 할 것인가.” (2007/02/21,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국회의원 시절 비서였던 김유찬씨에게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을 받자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하는 권력이양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편 가르기에 ‘도사급’인 인사가 무슨 연정을 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2005/07/28,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의하자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박심’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당이 난리인데 박근혜 대표가 움직이면 어떻게 되겠느냐.” (2005/03/07, 한나라당의 2005년 3월11일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의중이 작용할 가능성을 기자로부터 질문받자)

“재정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지출 확대보다 감세가 필수적이다. 단기적으로 불가피한 세수감소는 예산편성과 연계해 풀어나가면 된다.” (2004/08/09,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경제 관련 3개특별위원회 합동 기자간담회에서 적극적인 예산편성을 요구한 것을 반박하며)

“노무현 정권이 우리 경제에 해를 끼친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노 대통령이야말로 악정(惡政)의 굿판을 거둬야 한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수도 이전은 가장 악랄한 형태의 지역주의이자 포퓰리즘이며 분열주의에 불과하다. 이제는 충청까지 지역주의의 포로로 만든 게 바로 수도 이전이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이런 얼빠진 초대형 토목공사에 국력을 탕진한 나라치고 잘된 나라가 없었다.” (2004/07/13,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면서)

“섭섭한 것은 순간이지만 실리는 오래간다는 생각에서 전국구를 받았다.” (2004/06/14, 매일신문과 인터뷰에서 아버지 유수호 전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중남구에 출마하는 대신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 당선된 이유로 공천 과정의 아쉬움을 들며)

“시장은 부실기업을 이미 판정했다. 연쇄도산과 실업 증가 등의 후유증이 있겠지만 정리할 것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2000/11/02, 김대중 정부에서 퇴출기업을 발표하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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